=====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11) 이만열 - 아내의 진학을 막다

이만열 | 숙명여대 명예교수
 
팔불출 하면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른다. 때로는 팔불취(八不取), 팔불용(八不用)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거의 자식이나 마누라 자랑을 할 때 사용된다. 국어사전에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우리 아들 자랑 좀 해야겠다”라든가, “팔불취가 아니고서야 자기 아내 자랑을 그렇게 하겠어?”라는 예문(例文)까지 등장시킨 것은 이 때문이다.
 
팔불출이라는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맨입으로는 내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를 말하자니, 아예 팔불출로 자처하고 꺼내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그 ‘한 가지’는 약 35년 전 아내가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말했을 때 흔쾌히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결혼 초부터 나는 아내더러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아내는 대학 졸업 후에 신학교에 진학, 공부를 계속하다가 잠깐 쉬는 사이에 나와 결혼했다. 이 때문에 내게는 아내의 학업에 대한 부채 같은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중매결혼이 그렇듯, 앞날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교환하지 못한 채 결혼했다. 그랬던 만큼 공부와 관련된 계획에 대해서도 거의 일방적인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첫 아이가 생기고 3년 터울로 둘째까지 갖게 되었다.

그 무렵 아내는 새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적기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 나는 뒷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용기없는 남편은 어려운 시기가 도전의 때임을 직시한 아내의 용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일 후에 아내는 더 이상 공부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나 또한 아내의 공부에 대해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묵묵히 두 아이를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한정시키는 동안 세월은 훌쩍 달아나고 말았다. 유교 가문에서 성장한 아내의 성품을 알았다면 내가 다시 공부 이야기를 꺼내 격려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다.

뒤에 알았지만, 새로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아내는 지원하려는 대학의 교수로부터 내락을 거의 받은 상태였다. 당시만 해도 교수의 내락은 진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담보하는 것이었다. 그런 정황도 모르고 내 판단만 앞세웠으니 후회스럽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상황파악을 위해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갓 전임이 된 나로서는 아내와 대화하기보다는 서재에 틀어박히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했다. 그 뒤 처가 식구로부터 대학 졸업 무렵에 아내의 해외유학이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지만 돌발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되었다는 것도 들었다. 나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 아내의 학문에 대한 열망은 매우 진지했고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이었다.

아내가 공부하고 싶다고 의사 표시를 했던 그 유일한 기회를 제때 도우지 못한 후회는 늙어갈수록 더하다. 한 인간의 자기성장 가능성이 결혼 때문에 막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계속 짓누르고 있다. 결혼이란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도와 인간적인 가능성을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구실이 되었던 셈이다. 남편의 사회적 활동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는 희생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고정관념이 내 가정에도 그대로 묵수되었으니 그 또한 후회스럽다.

따져보면 인생이란 후회로 점철되는 도정이다. 매일 아내를 대하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이 후회는 아내를 제대로 배려하지 않았던 미숙함이 가정조차 일방적으로 꾸려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으로 연결된다. 70줄에 들어서서 두 아들이 자기 배우자와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벙어리 냉가슴’은 더욱 고조된다.

이런 후회는 아내에 대한 성찰 부족에서 왔고, 남성적 아집이 낳은 결과다.
배우자의 잠재적인 능력이 때로는 자신보다 앞선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 결혼은 배우자의 잠재력을 가능성으로 도출해내는 기제가 되어야 한다. 남은 삶이라도 아내의 잠재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활성화하도록 도와야겠다고 다짐한다면 너무 늦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