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8) 김창완 - 늘 못마땅했던 나

유난히 키가 작았던 나는 등굣길에 놀림을 받았다. 

“가방이 땅에 닿을라고 그런다. (가방이) 창완이를 학교 데려다주는구나.” 

그렇게 놀리는 동네 할머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걸어가며 나는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저 쭈그렁바가지 할멈 거울 속에는 아마 달걀귀신이 들었을 거야. 그리고 그 달걀 안에는 새카만 고양이가 있지. 그 고양이는 나 같은 애들을 골탕 먹이려고 늘 엿보고 있지…. 나는 저 할멈 속에 고양이가 있는 걸 알지.”
 
<경향신문 DB>

놀림을 당할 때마다 나도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 할머니보다 키가 더 컸던 기억은 없다. 어린 시절 나는 늘 키가 작았고 그게 불만이었다. 키가 작으면서도 생쥐같이 동작이 빨라 축구도 잘하고 달리기도 큰 애들한테 뒤지지 않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키도 작은 데다 굼뜨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방과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지르는 소리가 흙바닥을 달릴 때 피어나는 먼지처럼 뽀얗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땅을 보며 걷고 있었고 가방이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중이었다. 

“공, 고옹~”

나는 야구하는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타자가 홈을 떠나 1루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캐처는 일어서 있었고 수비수들이 공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다들 자리에 서서 “공, 고옹~” 하며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예뻤다. 그때 매 한 마리가 쥐를 보고 돌진하듯 야구공이 날아오는 게 얼핏 보였다. 보였다기보다는 보이기 전에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학교 운동장은 넓다. 야구공은 조그많다. 이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공이 내 머리에 맞을 확률은 너무나도 낮다. 공을 확실히 보기 전에 눈을 감았는데 확률 계산도 끝나기 전에 확실하게 공이 머리에 부딪혔다. 아이들의 조롱소리가 들려왔다. 

“쟤 진짜 대단하다. 야구공을 머리통으로 받네. 깔깔깔….”

나는 운동신경이 비둘기처럼 느렸다. 그러니 축구나 배구처럼 편을 갈라서 해야 하는 게임에서는 내가 속한 팀은 사기가 뚝 떨어져서 축구 경기 같은 경우에는 한두 골 정도는 먹고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키가 작고 운동은 지지리 못하고 게다가 성적도 고만고만이었다. 내 앞에는 늘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열댓명은 됐다. 

나는 밥숟가락만 놨다하면 졸음이 쏟아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걔네들은 잠도 안자고 운동도 공부도 하는 듯했다. 

그런 내가 늘 못마땅했다. 키가 작아서 불만이었고, 게을러서 마음에 안 들었고, 용기가 없어서, 수줍어서, 성적이 안 올라서, 주먹질을 잘 못하는 걸 친구들한테 숨겨야 돼서 내가 못마땅했다.
 

<경향신문DB>

그 시절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던 김 박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요즘 잠자기 전에 외우는 걸 물었다. 

“중국의 4대 미인하고 사람들 별명이 뭐였지?”

“양귀비(楊貴妃),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또 하나가 누구였더라?”

“물고기가 가라앉았다는 그 여자?”

“아니 그건 서시고.”

“왕소군은 그 여자 구경하다 기러기가 떨어져 죽었다며, 양귀비는 꽃이 부끄러워서 오무라들었대잖아. 달이 부끄러워서 숨었다는 여자. 그 여자 맞다.”

“그래 폐월(閉月) 초선(貂蟬)…. 낄낄낄….”

이제는 사람 이름 몇 개 외우기가 참 힘들다. 이제는 내 키 높이에서 뛰어내리지 못한다. 이제는 단어 몇 개 외우기가 이전 같지 않다.

그러나 옛날엔 달랐다. 그런 건 밥숟가락 드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그럼에도 나는 늘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내 꿈을 접게 만든 건 내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