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Concert Review] 리게티의 오페라 <Le Grand Macabre>

리게티의 유일한 오페라가 뉴욕필에 의해서 semi-staging으로 연주되었다. 현대음악 오페라 연주회 표가 과연 얼마나 팔릴까 방심하고 있었는데, 3일 공연 티켓 모두 매진. 결국은 공연 전날 아침에 있었던 오픈 리허설로 볼 수 밖에 없었다. 

먼 곳에 계신 리게티 전문가 선배님께, 이 오페라가 어떨지를 여쭤보고 갔는데, 선배님 말씀이 이게 일종의 블랙 코미디인데 독일 프로덕션은 여러모로 너무나 심각하게만 표현이 되어서 작곡가의 의도를 잘 살려내지 못했었다고....미국의 프로덕션이 오히려 그 의도를 잘 살려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 하셨다.

 


<뉴욕필의 Le Grand Mabacre 트레일러>


공연이 semi staging이라서, 오페라처럼 배경무대가 다 설치되어있는 것이 아니었고, 무대 위에 뉴욕필, 애니매이션 세트 스태프들, 성악가들이 다 같이 올라와서 연주를 해야 했다. 배경무대가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무대 위에 거울같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거기에 바로 같은 무대 한 켠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미니어쳐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full staging이 아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이 무대 위 스크린의 애니메이션이 더욱 재미있게 채워줬다.
이 전체 구성을 디자이너 겸 예술감독 덕 피치(Doug Fitch)가 고안했다고 하는데, 이 스크린에 띄워진 애니메이션이나, 전체적인 무대 구성, 무대를 뛰어 넘어 객석까지도 무대 장치의 일부로 활용하는 그의 아이디어가 꽤나 재미있고 신선했다.
무엇보다,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가 음악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별로 의미가 없었을텐데, 음악과 참 잘 맞아 떨어졌던 듯 하다. 애니메이션이나, 의상들에서 팀 버튼 감독의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했지만......(하긴 팀 버튼 만큼 기괴함을 시각적으로,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 인물도 드물고, 그의 스타일만큼 이 "Grand Macabre"의 내용과 어울리기도 쉽지는 않겠다 싶기는 하다.)

http://www.wqxr.org/articles/q2-music/2010/may/25/doug-fitchs-macabre-world/slideshow/ 
<덕 피치의 Le Grand Macabre를 위한 스케치를 볼 수 있는 곳>

독일 프로덕션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뉴욕필 공연에서는 코믹한 느낌이 잘 살아났고, 성악가들 하나하나 어찌나 능청스레 노래들을 잘 하던지, 오페라의 주제인 '죽음'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전반적으로 넘 유쾌하고 신이 났다. 리게티 전문가 선배님 말씀대로, 미국인들의 정서가 이 블랙 코미디를 표현하기에는 더욱 적합했던 듯...
 
이 작품은 음악사적으로나 오페라역사적으로나 할 얘기가 너무나 많을 문제의 오페라였다. 작곡가 리게티는 이 작품이 어떤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불려도 되도록 했으며 (언어를 넘어서는 음악의 힘!), 과거 작곡가들의 음악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20세기적인 다양한 음향을 끌어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마주하면서, 리게티가 참 대단한 작곡가란 걸 새삼 깨우칠 수 밖에 없었다.

리허설 말고, 실제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모든 티켓이 다 팔렸다니 아쉬울 따름. 뉴욕필에서의 첫 시즌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알란 길버트(Alan Gilbert)가 아무래도 한 껀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다소 뒤쳐지고 있던 뉴욕필이, 새로운 지휘자로 인해 얼마나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고민하는 새로운 것 그리고 미국적인 것이 세계의 음악계에 어떤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뉴욕필의 앞날에 대한 많은 기대를 가져다 준 공연이었다.

5/26/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