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Concert Review] KBS 교향악단 카네기홀 공연

추석을 기념하여 예정되었다던 KBS 열린음악회 카네기홀 공연이 무산이 되면서, 그 날짜와 장소에 KBS 교향악단의 공연이 펼쳐지게 되었다. 바이올린 협연자로 사라 장이 나서서 인지, 티켓 구하기가 무척 힘든 공연이었다. (티켓이 전석 선착순 배부였다고 함.)    

사라 장의 연주가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이기는 했지만, 지난 7월 KBS에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함신익씨가 취임 이전 내정 단계에서 단원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기에, 이 분이 취임 이후 3개월간 어떻게 이 오케스트라를 갈고 닦아 무대 위에 올리게 되었을지가 궁금했다. 아울러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작곡가 김지영씨의 곡 <Heros>가 세계초연이 될 것이라고 하니 매우 흥미로운 음악회가 아닐 수 없었다. 

 

카네기홀 홈페이지에서 발췌해온 이날의 프로그램


연주회는 김지영의 곡 <Heros>로 시작되었다. 2002년 월드컵 게임의 수원 경기를 위해 썼던 작품을 이번 연주를 위해서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공연 이전, 작곡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아리랑 목동'의 후렴구를 주선율로 삼았다"는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작곡가의 곡 설명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해외에 있다보니,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을 때, 앵콜곡으로 아리랑이나 민요 선율이 들어간 오케스트라곡 편곡을 종종 듣게 되는데, 너무 화려하기만 하거나, 너무 서양스러운 관현악 스타일을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서양음악스럽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라기 보다 조금은 진부한 서양 관현악의 요소들로 우리 민요들을 뻥튀기 해놓은 것 같아서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연주를 들어보니, 작곡가는 진부한 어법들을 적절히 이용도 하고 벗어나기도 하면서, 화려하고 풍부한 음색의 관현악의 장점을 잘 이끌어내었다. 익숙한 선율에 입혀진 다채로운 변주가 공연의 시작으로 잘 어울렸다.      

이어진 연주는 사라 장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협연이었다.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사라 장은 이 협주곡을 1악장부터 3악장까지 한 숨에 연주해냈다. 완벽하게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긴 듯, 빠른 3악장을 연주할 때는 마치 춤이라도 추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제스처가 느껴졌다.(사라 장의 '사계' 연주가 몇년 전 평론가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이유가 이런 과도한 제스처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이런 제스처가 쇼맨쉽이라기 보다 완벽한 음악에의 몰입처럼 느껴져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음악은 그녀와 함께 너무나 생기있게 살아났다.(It really rocks! 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너무나도 유려하게 이 어려운 곡을 연주해 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명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3악장. NHK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장면. KBS와의 공연에도 이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연주했다.

 

인터미션 이후 연주된 곡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앞선 두 곡의 연주를 보며, 함신익 지휘자와 KBS 교향악단의 연주가 좋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 곡을 통해 지휘자와 관현악단으로서의 역량을 뉴욕의 청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장장 50분에 이르는 대곡을, 지휘자와 단원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잠시도 긴장을 잃지 않고, 섬세하고도 파워풀하게 연주했다. 
      

워낙 뉴욕시 안의 모든 공연장에서 사진 찍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블로그의 포스팅을 위하여 도촬했다. -.-


 개인적으로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이 7-8년 전 쯤 되는 것 같은데, 그때에 비해서 여러모로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몇년 전 서울시향의 공연이 카네기홀에서 있었을 때, 서울시향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이제 훌륭한 젊은 단원들이 많아져서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도 이렇게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새롭긴 한데 뭔가가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옛 동네를 갈아 엎은 신도시의 느낌이랄까.
그런데 오늘 KBS 교향악단의 공연을 보면서 그런 아쉬운 점이 덜했다. 연륜있는 단원들과 젊은 단원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안정적인 연주를 만들어 낸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연주 후 단원들에게 손을 뻗어 독려하는 지휘자


연주 후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지휘자는 열광적인 환호에 앵콜곡으로 화답했다. '과연 민요 혹은 가곡 편곡이나 애국가를 연주하여 교민들에게 어필할 것인가, 아니면 서양 클래식곡으로 미국관객들을 상대할 것인가?' 스스로 내기를 걸었다. (사실 전자의 경우가 크게 불만스러운 건 아니지만, 한국의 좋은 연주자나 단체를 보면 외국인들이 더 많이 잘 알아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다보니, 한국인들만 아는 곡을 연주해서 교민 행사로 연주회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던 듯..)
지휘자가 참 영리한 분이구나 깨달았다. 둘 다를 연주하셨다. ^^ 첫 곡은 Leonard Bernstein의 Candide Overture, 두 번째 곡은 민요 메들리.

10월 22일에는 UN본부 총회장에서, 10월 24일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회가 더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KBS 교향악단의 모습이 더욱 더 기대가 되는 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