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Films on Musicians] <바흐 이전의 침묵> Die Stille vor Bach (The Silence before Bach)

(2년 반 전에 적어두었던 영화 감상기입니다.)

논문 프로포절 미팅 때문에 정신이 없어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던 차, 며칠 전 한 피아니스트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이 영화를 보러가자 그랬다. 이 영화를 만든 79세의 포르타벨라라는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비디오로도, DVD로도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이렇게 극장에서 상영할 때를 놓치면 영화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의 논문 주제가 바흐의 음악이 슈만에게서 어떻게 해석되어 그의 창작방식에 스며들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인지라, 요즘은 바흐 이름만 들어도 무조건 관심이 가는데, 이런 영화까지 나온 줄 모르고 있었다. (이건 정말 나를 위한 영화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날 밤 9시경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그날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상영일이었고, 그 날의 마지막 상영 시간이 10시였다.

이 영화를 알려준 친구와 당장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 미친듯 눈과 비가 흩날리는 악천후를 해치고 하우스톤 스트리트(Houston Street)에 위치한 영화관까지 가서 겨우 마지막 상영을 사수했다.  


영화 Die Stille vor Bach 포스터

 

영화는 바흐로 인해 창출된 다양한 세상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트럭모는 운전사 아저씨에게 바흐 음악의 의미빈 갤러리에서 연주되는 자동연주 피아노, 악기 상점주인에게 있어서의 바흐, 오늘날을 사는 음악가의 삶에서의 바흐라이프치히(바흐가 활동했던 도시)에서 여행 가이드로 살아가는 아저씨의 이야기, 그곳에서 음악교수로 살고있는 사람, 바흐를 발굴한 멘델스존의 이야기...등등 바흐가 후대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한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non-narrative 형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한 고서적상 주인의 말이었다.--'바흐가 아니었다면신은 3류였을꺼라는...' 바흐의 음악이야말로, 세상에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는 가장 큰 근거라는 소리였다
실제로 라이프치히 음대 교수가성 토마스 교회(바흐가 활동했고, 그가 묻힌 교회)의 성가대에 아이들을 가입시키고자 하는 부모들과 입학(?) 상담을 하는 과정이 나오는데많은 수의 아이들과 그 부모가 이 성가대에 들어올 때는 특별한 종교 없이 성가대에 와서 노래를 시작하지만, 성가대의 일원으로 노래를 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져 대부분 세례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신의 존재와 위대함을 증명해주는 한 근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음악으로 인해, 그것도 '바흐의 음악'으로 인해, 신의 존재가 인간의 삶에서 (3류 정도가 아닌) 이렇게까지 중요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Die Stille vor Bach> 
트레일러


전반적로는 매우 예술영화스럽기도 하고
,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었지만음악학자의 관점에서 좀 딴지를 걸자면, 멘델스존의 바흐 발굴 일화를 다루는 부분이 지나치게 야사 위주로 만들어져서, 전체적인 영화의 수준까지 잠시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속 야사를 설명해 보자면멘델스존의 집사가 고기를 사왔는데 정육점 주인이 그 고기를 싸 준 종이가 바흐의 '마태 수난곡' 악보였고, 멘델스존이 그 종이를 보고 이 곡을 발굴하여 연주하여바흐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사가 정사처럼 서술되고 노래 가사로 축약되어 "노래의 날개 위에 (멘델스존 작곡)" 노래에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배경에 깔린다. 말하자면, '노래의 날개 위에' 선율 위에, '멘델스존의 집사가 어느날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사왔다네, 그런데 그 종이 위에는 어떤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네~' 이런 가사가 붙여져 화면의 배경으로 흐른다
다큐멘터리 필름이 아니므로, 당시의 정황에 픽션이 가미될 수는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 왜 이리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노가바'라는 방식을 택해 우습게 압축시켜버린 것인지 좀 아쉬웠다학자들에 따르면 멘델스존은 베를린 징아카데미(Singakademie)의 젤터라는 스승과 가까이 지냈는데, 이 젤터의 서가에서 멘델스존은 많은 바흐 자료들을 접했고, 이를 발굴하여 지휘자로서 실제로 연주를 시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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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수난곡>의 경우도 이런 과정을 거쳐 베를린에서 19세기 초연이 이루어진다. (1829년 베를린 징아카데미에서의 <마태수난곡> 연주는 19세기 바흐 부흥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뿐 만 아니라, 멘델스존 가문이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에 바흐를 좋아했던 가족들은 바흐의 필사본 악보들도 많이 사들여서 집 안에 바흐 콜렉션을 이루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기 싸온 신문지(악보이야기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흐 가정의 모습 재연
Christoph Friedrich Bach (바흐 아들)가 클라비코드로 평균율 1권의 1, 프렐류드를 치고 있고, 부인 막달레나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크리스토프의 연습을 듣던 바흐가 아들 곁으로 가서 이 곡을 어떻게 연습해야 할 지를 지도한다.이 장면은 얼마만큼 사실이고 얼마만큼 픽션일까?


파편적인 이야기들 중에
,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장면은 빈 갤러리에서 울리는, 기계로 제어되어 연주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마도 기계로 연주되어도 그만큼 괜찮은 소리가 나는 음악이 없지 않겠냐는 주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바를 해석해 보자면, 바흐 이전의 시대(before Bach)가 침묵(silence)이라면, 바흐에 의해서 그 침묵은 깨졌고, 그 이후의 시대에 바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형되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영화의 의도도 좋았고, 유럽 예술영화답게 멋진 장면들도 종종 있었다.
(
그 중 최고는 바다에 빠지는 피아노! 사진을 보려면 여기 링크로-->   http://movies.nytimes.com/2008/01/30/movies/30sile.html  New York Times 기사에 함께 실려 있다.)

파편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이라 영화 중간에 보는 이의 집중력이 떨어질 위험성이 없지 않지만무엇보다 바흐의 유명 레퍼토리들을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하게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는 않은 영화였다. DVD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나, 감독님께서 자신의 영화가 비디오나 DVD로 복제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니... (나중에 찾아보니 지역코드가 맞지 않는 스페인어 DVDamazon.com에 나와있기는 하다.) 그나마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 듯!

2/18/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