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아무나 손 못 대는 문화유산(?), 아파트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건축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다. 너무 좋아서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까? 아니면 싫은데 별 선택이 없어서 그냥 살까? 어떤 생각을 할 여지는 있는 사실 그걸 잘 모르겠다. 별 다른 선택이 없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싫어도 별 다른 선택이 없으면 왜 싫은지에 대해 잘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때로는 열과 성을 다해 아파트를 미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몸에 배인 생활습관을 비난하는 듯한 기분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계의 분위기를 두루 꿰뚫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냥 .. 더보기
통큰 치킨과 비뚤어진 치킨 사랑 치킨 때문에 장안이 떠들썩하다.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까지 한마디 하실 정도니, 이만하면 상황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치킨의 원가에서부터 유통, 기타 온갖 잡다한 문제들은 벌써 많은 매체에서 다뤘으므로 딱히 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까지 들먹이는 화제가 아닌가. 그러나 의외로,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음식으로서의 치킨에 대한 가치나 그에 얽힌 사항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은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맛’이 중심요소인데, 이 끝도 없는 치킨 논쟁에서 맛에 대한 부분은 쏙 빠져있다. 치킨을 사서는 껍데기만 뜯어 먹고 살은 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우.. 더보기
잠들지 못하는 도시와 빛 공해 아무 생각 없이 서울 시내에 나갔더니 온 시내가 반짝반짝했다. 원래도 휘황찬란한 도시지만,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느라 그 반짝거림이 한층 더 했다. 축제 분위기 같은 것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조명 장식들에 회의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아 그래, 뭐 전기는 결국 화석 연료를 태워 만드는 거니까 에너지 위기와 지구 온난화 따위를 숭고하게도 걱정하시느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조금 다른 문제이다. 환경디자인 인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Green Bulding Council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LEED'라고 일컫는다. 'Le.. 더보기
닭고기 하나로 따져보는 다양성의 부재 닭가슴살이 인기를 누린지도 꽤 오래 되었다. 따지고 보면 맛보다는 그 효능 때문이다. 사실 효능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거나 보다 좋은 몸매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나도 냉장고에 거의 언제나 닭가슴살을 모셔두고 가끔 먹는다. 그러나 딱히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닭가슴살 자체가 원래 딱히 맛있는 단백질이 아닌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닭은 흔히 ‘빈 캔바스(Blank Canvass)'라고 불리는데, 이는 돼지고기, 아니면 쇠고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닭고기 자체의 두드러지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념의 맛을 잘 받아들인다. 게다가 닭가슴살은 운동을 하지 않는 근육이라 운동을 하는 다리살에 비해서 더더욱 맛.. 더보기
건축 여행이라는 이름의 고행 즐거워야할 여행이 고행으로 바뀌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라는 일종의 강박관념, 또는 서글픔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같은 곳을 복수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것들을 기억, 또는 그 보조수단인 카메라에 담고자 걷기 위해 발을 디딘 길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도시며 거리, 건축물은 어디로 떠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떠날 뿐이지만 그 모든 서글픔이 거기에서 비롯된다. 지난 10년 동안 이런저런 여행을 다녔다. 일단 그 목록을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동/서부 종단, 주요 대도시(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시애틀, 샌디에고 등) 유럽: 영국(런던),.. 더보기
포장으로 보는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의 현실과 정체성 경기도 남부의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오는 고속버스를 많이 보게 된다. 버스가 버스인지라, 옆구리에 붙은 광고판들은 상당수 지방 또는 그 특산물의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이런 광고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유심히 볼 수도 없이 독창성이 딸리거나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없는 듯 영세한 느낌을 준다. 듣기로 지자체가 홍보를 통한 차별화, 또는 차별화된 홍보를 위해 고심한다던데 광고판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말 고심하는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마케팅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게 현실이데,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을 보면 판매를 통한 이득은 물론이거니와 상품의 존재 자체를 알리는 것조차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사진의 .. 더보기
디자인이라는 것의 현실과 이상, 그 사이의 괴리 “건축학 전공의 교육목표는 건축사 양성에 있다. 건축사는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법률적 자격을 지닌 사람이나 그 자격 자체를 의미한다. 건축사가 되기 위하여 학생들은 건축설계에 필요한 풍부한 지식(건축역사, 설계이론, 건축계획, 기술공학, 문화예술, 법률제도 등)과 다양한 경험(실무, 관리 등)을 습득해야 한다. 학생들은 최소 5년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는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는 건축사의 기본적 자격 요건이다. 본 전공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건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건축공부에 대한 현실적인 측면을 화제로 삼았는데, 이번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의 단계를 뛰어넘어 직업의 울타리 안에서 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오랜만에 모교 홈페이지를 뒤져 과.. 더보기
요리 프로그램의 전문성 결여 텔레비전에 얼마나 많은 요리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끔 우연히 EBS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요리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서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걸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킬 때가 있다. 그런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전문가’라는 것이 어떻게 정의 내려지고 있는지, 그걸 헤아릴 수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네이버 사전은 전문가를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많이 알아서, 그 또는 그녀의 의견이 권위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문제는 지식과 경험인데, 이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지식보다는 경험만으로 다.. 더보기
댁의 자녀가 건축과 진학을 고려할 때 따져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써야 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내일이 수학능력시험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한 번쯤 다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댁의 자녀가 건축과에 진학하고 싶다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만 할까? 돈을 비롯한 아주 현실적인 측면에서부터 자녀의 재능계발과 이상실현에 이르는 아주 이상적인 측면까지, 판단에 필요한 요소가 무수히 많다. 시간을 두고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 시작으로 가장 현실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물론 여기에서 ‘건축과’라고 하는 것은 설계를 위한 5년제 과정임을 미리 밝혀둔다(사실 5년제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을 .. 더보기
누가 자장면을 능욕하는가 며칠 전, 모든 것이 비싼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간자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으로 선택한 메뉴는 따로 있었지만,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서두르다보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집에서 먹게 된 상황이었다. 메뉴에는 두어가지의 자장면이 있었으나 거의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삼선 간자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메뉴에는 없지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메뉴에서 가장 비싼 자장면이 7,000원이었으니, 특별 주문한 삼선 간자장은 무려 8,000원이나 했다. 그쯤 되면 맛에 상관없이 뒷맛이 써야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달았다. 요즘 세상에 망가진 음식이 한둘이겠느냐만, 그 가운데 짜장, 아니 자장면이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사랑을 받았으므로, 그러한 가격대 .. 더보기
실내공간이 된 아파트 베란다에 대한 생각 기억하는 한, 그리고 우리나라 땅을 밟고 사는 한 쭉 아파트에서 살았던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취를 하며 다세대 주택 같은 데서 살기도 했으니 사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꼭 그런 것처럼 아파트는 주거 생활에서 절대적으로 지배적인 기억으로 언제나 자리잡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아파트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우리 삶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말하면 간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품으로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꾀한 전략적 차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생산자가 분석해서 반영하느냐, 아니면 생산자가 공급하는 것에 소비자가 맞추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도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 더보기
팔자 기구한 피자를 위한 자구책-집에서 피자 만들어 먹기  앞의 글에서 아주 높은 열의 오븐으로 피자를 굽는 법에 대해 언급했다. 가정용 오븐에서 이런 정도의 온도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단 한 가지 비책이 있기는 하다. 오븐의 청소 모드에서는 온도가 섭씨 480도까지 올라가는데, 이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단, 이 경우 안전을 위한 오븐의 온도 센서를 망가뜨려야 한다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런 방법으로 피자를 위해 가정용 오븐의 온도를 올리는 방법은 사실 제프 바라사노 혼자만의 비책은 아니다. 내가 번역한, 의 저자인지의 음식 평론가 제프리 스타인가튼 역시, 그 나름대로 집에서 최고의 피자를 구울 수 있는 비법을 찾기 위해 벽돌 화덕을 적외선 온도계로 찍으며 고심하다가 이러한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된다. 진정 궁극의 피자를 원한다면 이 정도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