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솔로몬의 위증’과 세월호 이후의 학원물

교내 경시대회가 한창 진행 중인 고등학교, 무거운 적막을 뚫고 비상 사이렌이 울린다. 시험장을 빠져나온 한 아이가 ‘Exit’ 조명이 홀로 빛나는 어두운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이윽고 옥상 끝에 선 아이는 교정을 내려다보고, 까마득한 아래로 무언가가 ‘쿵’하고 떨어져 내린다. 2013년 방영된 KBS 학원드라마 <학교 2013> 속 한 추락 시퀀스는 한국 청소년들의 비관적 현실을 그대로 압축한 그 해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청소년 자살률, 불행지수, 무지막지한 학업시간 등 부정적 지표에서만 세계 최상위인 나라, 비상 사이렌은 그 출구 없는 미래에 대한 경고음이며 추락의 이미지는 막다른 절망의 표현이었다.


최근 드라마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한국 사회를 향해 울리는 학원물의 비상 경고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의 학원물 안에서 학교는 단지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얼룩진 폭력의 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압축한 지옥도로 묘사된다. <학교 2013>의 후속 시리즈인 KBS <후아유-학교 2015>는 학교폭력이라는 기존의 주제를 이어받으면서 훨씬 어둡고 잔혹해진 폭력의 풍경을 그린다. 폭행, 성추행 등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이 이어지는 경남 통영이나, 은밀한 심리적 따돌림이 행해지는 서울 강남의 학교는 이미 어디에나 폭력이 편재(遍在)된 ‘헬조선’의 축소판이다. 같은 해 방영된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역시 다섯 소녀들이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명랑 시트콤 같은 외피 안에 집단따돌림, 시험부정, 연쇄 성폭력, 낙태, 동성애 혐오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복합적으로 담아냈다. 동시기에 방영된 MBC <앵그리맘>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엄마가 학생으로 위장 잠입해 사학재단 비리를 파헤친다는 스토리 안에는 영화 <내부자들> 못지않은 검은 권력의 커넥션에 대한 고발극이 담겨 있다.


JTBC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의 한 장면.


이 잔혹한 지옥도 안에서 아이들이 무수한 유령이 되어 떠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후아유-학교 2015>에는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실종되고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 <선암여고 탐정단>에는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의 그림자가 극을 관통하고 있다. <앵그리맘>은 아예 살해당하고 그 진실을 은폐당한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해 재단의 탐욕으로 인한 부실공사 건물 붕괴사고까지 다룬다. 이쯤 되면 최근의 학원물은 흡사 재난 스릴러처럼 보일 정도다. 공교롭게도 모두 2014년 후반기 이후 등장한 이들 작품의 비극적 분위기에는 필연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 <앵그리맘>은 기획 의도에서부터 명백하게 세월호 참사를 은유했다. 대한민국 부정부패의 종합축소판으로서 세월호와 학교, 그 아래서 많은 희생을 당한 10대들의 이야기는 세월호 이후의 학원물이라면 이제 분리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제일 주목할 만한 학원물은 JTBC 금·토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이다.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과 그 파장을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한국판은 1990년대 발표된 원작을 현재의 우리 사회로 가져오면서 보편적 성장기를 세월호 세대의 비극으로 각색했다.


배경부터가 한국의 학벌 구조와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가 압축된 명문 고등학교로 바뀌었고, 부패한 기성세대와 학생들의 대립구도가 부각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학원물 가운데 세월호 세대의 분노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가령 <앵그리맘>에서는 분노하는 엄마가 영웅적 해결사로 나섰고, <선암여고 탐정단>은 학생들이 사건 해결의 주체였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실질적인 시나리오 설계자 하연준 교사(김민준)의 각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솔로몬의 위증>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 한 아이가 죽었다. 늘 교실 뒤에서 조용히 방관하는 듯했으나 때때로 학내의 모든 모순을 꿰뚫어보는 듯한 이소우(서영주)라는 아이였다. 학교는 그의 우울증 경력과 부적응 행동을 들어 쉽게 자살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그와 같은 반이었던 몇몇 학생들은 여기에 의문을 품는다. 소우는 죽기 전 정국고의 폭군으로 군림하는 최우혁(백철민)과 충돌했고, 그에게 일방적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몰렸다. 징계 전 학교 측을 냉소하며 스스로 교정을 떠났던 그가 크리스마스에 학교 옥상에서 추락한 채로 발견된 것이다. 그와 우혁이 벌인 싸움의 목격자였으나 증인으로 나서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던 모범생 서연(김현수)은 어느 날 그가 우혁에게 살해당했다는 고발장을 받고 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서연과 친구들이 이소우 사건을 밝히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그동안 이 비극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던 어른들이 급기야 ‘이렇게 된 건 모두 너희 탓’이라고 비난하는 모습까지 봤기 때문이다. 순종적이던 서연이 교사의 침묵 강요에 저항하며, “여태까지 우린 어른들 말만 들으며 가만있었어. 도와주겠지. 해결해주겠지. 기다리고만 있었어…. 나는 이제 우리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아무도 안 알려주면 직접 알아내서라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가 밝혀내자”라고 반 아이들을 움직이는 장면은 바로 지금 세월호 세대가 광장에서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분노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학생들이 진실을 파헤치는 형식이 재판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이들의 재판은 때마침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이 정국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위증을 행하는 현실의 어른들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솔로몬의 위증>은 ‘가만히 있으라’는 기성세대의 억압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적 항변이다. 이제 기성세대가 ‘가만히’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