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주요 갈등은 빈부격차다. 그 핵심은 공간이다. 대칭과 비례가 맞는 신전 같은 박 사장(이선균) 집과 무질서해 보이는 반지하 기택(송강호) 집의 대조는 후반부로 갈수록 도드라졌다. 그 격차를 좁히는 것은 ‘제시카송’으로 대표되는 기택 가족의 거짓말이 아니라 음식이었다.
<기생충>의 스토리는 박 사장 집의 지하실 문이 열리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전까지 기택과 박 사장 가족의 음식은 100% 달랐다. 기택의 식구는 동네 피자를 먹고 가장 싼 캔맥주에 양으로 승부하는 기사식당을 다녔다. 음식은 또 돈을 벌고(피자박스), 경쟁자인 문광(이정은)을 쫓아내는(복숭아) 수단이기도 했다. 박 사장 집의 정찬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와인냉장고를 갖춘 널찍한 주방과 형형색색 과일 접시를 보면 그들의 식탁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문광(이정은)이 돌아오던 날, 음식의 구분은 깨진다. 짜파구리 덕분이다. 짜파구리는 인스턴트 짜장 라면에 맛은 다르지만 면발 굵기만 비슷한 해물맛 라면을 조합한 ‘B급 음식’이다. 한우 채끝살을 넣었다지만 ‘B급’은 ‘B급’이다. 인스턴트 북엇국과 미역국에 캐비어를 넣는 격이다. 이런 취향은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의 ‘영 앤드 심플’한 존재감을 상징한다. 영화 내내 박 사장은 부인 연교를 부하 직원처럼 다그치고 연교는 순종한다. 박 사장 부부의 삶 역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처럼 뭔가 굴곡이 있다는 암시다.
기택 가족 전원은 박 사장 부부에게 끝없이 사기를 쳐 돈을 뜯어낸다. 그렇지만 그들은 돈을 번 뒤에도 반지하에 앉아 전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맥주만 일본 맥주로 바뀌었을 뿐이다. 박 사장 가족의 음식을 빼돌려 끼니를 해결하는 문광 부부의 음식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세 가족의 음식 취향은 차이가 없다.
영화에서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공간의 수직구도는 음식의 수평구도와 충돌한다. 관객들은 이 충돌로 양극화 문제는 빈자나 부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파멸하는 이유는 수백년 동안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살 수 없는 집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음식으로 대표되는 취향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교육의 축적으로 형성되는 문화적 자본이 결여됐다. 살인 후 스스로 지하실에 갇힌 기택과 그를 돈을 벌어 꺼내주겠다는 환상을 품은 기택 아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비극의 원인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배달음식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현대인은 누구도 이 무지에서 자유롭지 않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음식의 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구나! 달고나커피 (0) | 2020.05.08 |
---|---|
전염병이 바꿔놓을 식탁 (0) | 2020.04.10 |
육식본능, ‘착한 소비’가 바꾼다 (0) | 2020.03.20 |
권력의 식탁 (0) | 2020.02.07 |
소년, 2022년의 음식을 꿈꾸다 (0) | 2020.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