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41) 마광수 - 너를 사랑해, 미치도록 마광수 | 연세대 교수 오늘은 수요일. 어제 예기치 않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되어 꾸물꾸물하다 보니 학교에 안 가고 그냥 집에 있게 되었다. 한여름의 수요일이라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는데도 덥기만 하고, 왠지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워진다. 요즘이 한창 휴가철이라서 손에 손을 맞잡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젊은 연인들 쌍쌍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하긴 학교 연구실에 나가 있어봤자 고독감이 덜해질 리 없겠지. 학생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 캠퍼스 안이 텅 비어 있을 테니까. 지금은 저녁 8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화면 속에 나타나는 것은 온통 너의 얼굴뿐이다. 왜 이리 우리는 마음껏 뭉칠 수 없는 걸까?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40) 김미화 - 웃으며 보내다오 김미화 | 방송인 애들아, ‘그날’이 오거든 엄마가 살던 공간에 들어와 엄마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즐겁게 웃었으면 좋겠다. 에 나오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흘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먼 훗날 엄마가 떠난 후 아이들이 발견했고 매우 아름다워 소설로 다시 탄생했듯이, 애들아 너희도 그렇게 엄마의 부재를 슬퍼하지만 말고 지난날 엄마의 삶을 아름답고 흐뭇하게 바라봐줬음 좋겠다. 엄마는 누가 흉볼까봐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미리 준비할 생각은 없단다. 내가 정한 내 묘비명 ‘웃기고 자빠졌네’처럼, 물론 좁은 땅에 무덤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그저 어느 한 구석에 내가 살았던 흔적을 추억하며 작은 비석에 이 글귀를 새겨줬음 좋겠다.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서 열정을 다해 웃기다가 자빠지고 싶은 내 바람이 이루..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9) 신춘수 - 나의 벗 라만차의 기사에게 신춘수 |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작가는 상상력으로 글을 쓰지 않고 단지 기억으로 글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난 기억의 파편을 모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감성을 모아 당신에게 글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 만났기 때문이지요. 우선 우리가 어떻게 만났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에 당신을 만납니다. 순식간에 당신에게 빠져 함께 여행을 떠났지요. 어린 나는 당신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풍차를 향해 돌진하고, 모험에 뛰어들고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졌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주 가끔 당신을 생각하곤 했지만, 나의 청춘은 온갖 세상 관심사로 향해 갔고, 정신 없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죠. 이런 젊..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8) 손숙 - 나의 대통령님께! 손숙 | 연극배우 그 무덥던 8월의 어느날 대통령님은 떠나셨습니다. 병원에 계시던 내내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공연이 임박해서 정신없이 연습 중이었는데 무대에 있던 제게 방금 대통령님이 서거하셨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고 저는 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냥 머릿속이 하얗기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온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던 노 대통령님을 보내는 것 하고는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두 분의 아버님이 계십니다. 제 친아버님은 워낙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서 그냥 절 낳아주신 분 정도일 뿐, 육친의 정이라든가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절 한번 안아주신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7) 서하진 - J에게 서하진 소설가 내인생 마지막 편지, 라는 꼭지의 청탁을 받았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았어. 생을 마감하는 마당에 남기는 편지라니, 그간 써 젖힌 글 나부랭이로도 차고 넘치지 않는가 말이야. 마지막이라는데 누굴 원망하는 건 좀 그렇고 감사를 할라치면 열 손가락으로는 모자랄 터이니 말이지. 너를 떠올린 건 나로서도 뜻밖이야. 우리의 인연은 고작 이년 남짓, 친구, 연인, 동료… 그 어떤 이름으로도 부르기 마땅찮은 사이였으니. 그럼에도 나는 결국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오래전 어느 날. 그날 너는 잿빛 셔츠를 입고 있었어. 셔츠의 빛과 닮은 너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지. 잘 지냈지, 잘 있었어, 그런 안부가 오가고 너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끝내 아무런 말없이 떠났어. 여름날이었..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6) 백가흠 - ‘조 대리의 트렁크’ 조 대리 백가흠 | 소설가 당신, 잘 지내시오? 실제로는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도 그대의 모습이 선명하다오. 당신도 나를 본 적 없을 테지만 당신 안에 내 모습 있을 테니, 그리 낯설지 않겠거니 짐작해보오. 이렇게 불쑥 편지를 전하게 되어 내 마음 민망함으로 그지없소. 허나 그대를 잊은 적 한번도 없으니 그간의 무심함 용서 바라오. 이해심 많은 사람이니 잘 이해해 줄 것으로 믿으오. 나는 그간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었소.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고, 불안정한 나날이 몇 년간 계속되었소. 여러 일을 하느라 일상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간이었다오. 무엇을 좇아가는지조차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이었소. 무슨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갖고자 욕망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소. 그저 나는 흘러가는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5) 유정아 - 내가 살던 동네 화곡동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화곡동이다. 담이 없던 화곡동 마당에 혼자 앉아 털바지 안에 인형 다리를 넣어 아이처럼 업고 벽돌을 빻으며 소꿉놀이를 했다. 진짜 엄마가 되었을 땐 정작 아이를 업고 그렇게 밥하고 빨래하고 “여보, 밥 드세요” 같은 짓을 많이 하지 않았건만, 어릴 때 나는 앙큼하게도 그러고 놀았다. 담이 생기고 옆집에 정수라는 아이가 살게 되었을 때 그 아이와 난 인생의 첫 친구가 되었다. 큼지막한 미끄럼틀이 있는 길 건너의 놀이터에도 함께 다녔고 우리집 안방 장롱의 거울 앞에 서서 사진도 같이 찍었다. 어느 해 비가 많이 와서 개천이 넘쳤던 날엔 흐르는 물에 조리 한 짝을 잃어버려 울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엄마가 시집 가 처음 살다가 나를 낳았던 집은 갈현동이..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4) 이문재 - 김자, 정자, 임자, 선생님 이문재 | 시인 미국 동부 폭염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며칠 전 전화하셨을 때 제대로 받지 못해 죄송합니다. 보이스피싱 탓입니다. 앞자리 전화번호가 낯설었습니다. 이튿날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오길래 한참 뜸을 들이다가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음성인데도 0.1초 사이에 선생님인 줄 알았습니다. 저한테 전화를 걸어 “문재니?”라고 운을 떼는 사람은 지구상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인천 주안역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못 알아 뵈었을 겁니다. 그 사이에 30년이 흘렀다는 사실을 저는 놓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40대 초반으로 접어든 것만 생각했지, 선생님께서 50대 중반으로 진입했다는 ‘현실’은 까맣게 잊..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3) 이순원 - 나의 별친구 예하님께 이순원 | 소설가 예하님.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햇수로 벌써 17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는 예하님이 서른 무렵, 그리고 제가 서른아홉 살 때, 아직 이 땅에 인터넷이 시작되기 전 PC통신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하님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대략 미루어 짐작하는 나이와 그것이 본명이 아닌 게 분명한 예하라는 닉네임뿐입니다. 돌아보면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로 ‘하쿠타케’라는 이름의 혜성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혜성 소식을 듣던 날 저는 어떤 책의 서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북쪽 끝 스비스조드에 높이와 너비가 각각 1마일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인간의 시간으로 천 년에 한 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카롭게 부리를 다듬..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2) 이명랑 - 저녁 여섯시경의 그녀에게 이명랑 | 소설가 그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갈 집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고, 얇은 겉옷과 닳아빠진 양말 사이로 악착같이 헤집고 들어와 기어이 상처를 내고 마는 겨울을 이 악물고 버텨보던 그녀는 저녁 여섯시 무렵이면 그렇게 되곤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무너져 내리고 싶었지요.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교정 한쪽에 줄지어 서 있던 학우들, 발을 동동 구르거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그들은 어쨌거나 모두 돌아갈 곳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들과는 사정이 달랐고, 재빨리 등을 돌려 한 그릇의 저녁밥을 향해 내달리곤 했습니다. 그 풍경 속의 그녀는 배고픔이었을까요? 그랬습니다. 차도 옆 인도 위에 플라스틱 바구니 몇 개를 늘어놓고, 그녀는 스물아홉..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1) 조영남 - 58명 여친 중 한명에게 조영남 | 가수 문제는 58, 쉰여덟이라는 숫자다. 그렇다. 58은 현재 내 여친(여자친구의 준말)의 숫자다. 너무 많아서 놀랄 일도 아니고 너무 적어서 흥분할 일도 아니다. 잘난 척 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평소 여친의 숫자나 헤아리고 앉아 있는 쫀쫀한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나한텐 그만한 사연이 있다. 본 신문 칼럼 담당자가 몇주 전 ‘내인생 마지막 편지’를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을 해오는 바람에 ‘그거 재밌겠다’ 하면서, 그럼 나는 누구한테 마지막 편지를 쓸 것인가 궁리하게 되었다. 이런 때 아내가 있었으면 딱 좋았으련만 아내 없이 살아온 지도 꽤나 오래됐고 그렇다면 장차 내 아내가 되어줄 사람한테 쓸까,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급기야 그럼 내 아내는 장치 누가 될 것이냐, 그렇다면 현재..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0) 구효서 - 와꾸 선생님, 당신을 부릅니다 구효서 | 소설가 두려울 뿐입니다. 마지막 순간, 저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동안 긴긴 회한의 밤들을 보냈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왔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은커녕 고통만 안겨준 바보스러운 생을 뉘우치고 또 뉘우쳤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 모든 이들이 또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맘껏 한탄하고 맘껏 그리워하던 그 날들마저 사치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땅에 닿을 만큼의 시간밖에 저에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두려움의 명징한 맨얼굴과 맞닥뜨려 꼼짝 못합니다. 그것은 더해지지도 빼지지도 않습니다. 밀리지도 당겨지지도 않습니다. 두려움은 그 자체로 요지부동이며 세상에 유일합니다. 저는 죽습니다. 두렵습니다. 비명처럼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와꾸 선생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