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4) 강희근 - 내 속에 사는 C 시인에게 강희근 | 시인 후배 C시인! 그간 뜸했어요. 들리는 말로는 지각을 흔드는 감동적인 시를 쓰느라 문을 닫아 걸었다는데 좋은 결실이 있기를 빕니다. 오늘 나는 이런 자리를 빌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씁니다. 나는 C시인도 관심을 보여주고 애정으로 조언을 해준 ‘제5회 이형기문학제’(진주시 주최, 6월1~3일)를 무사히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 행사의 특징 있는 프로그램으로 1박2일간 진행하는 ‘체험시 백일장’이 있지요. 내가 설명을 해주었을 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맞장구를 치며 좋아해준 그 백일장 말입니다. 백일장이 갖는 즉흥성을 극복하기 위해 ‘체험 공간 지나가기’를 통해 사색의 기회를 넓혀 주자는 의도이지요. 그리고 이형기문학상은 연중무휴로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 시상하..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3) 권지예 - 넌 참 많은 걸 주고 떠났구나 권지예 | 소설가 오늘 오후에는 네 사진을 보았어. 낡아서 이제는 희미해진 작은 흑백사진 안에 너와 내가 집 대문 앞에 서 있구나. 이 사진 기억나니? 우리 두 사람은 햇빛 때문에 살짝 찡그린 얼굴로 차렷 자세를 하고 있네. 아마도 난 열 두 살, 너는 아홉 살. 참 촌스럽긴! 나는 단추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고 너는 스웨터에 바지 차림이야. 나보다 반 뼘쯤 키가 큰 네가 입은 줄무늬바지를 보니 지금도 가슴이 아프네. 키는 작아도 내가 너의 언니라서 너는 늘 내 옷을 물려 입었지. 키가 큰 동생이 언니의 헌옷을 물려 입은 탓에 복숭아뼈가 도드라진 가는 네 발목이 껑충하게 드러나 있네. 거기다 오래 입어서 무릎이 나온 탓에 굵은 줄무늬가 꽈배기처럼 꼬여 다리가 개다리처럼 우스꽝스레 보인다. 너 떠난 지 3..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하나뿐인 아들아 ! - 김별아 소설가 자유와 침묵의 시간이 가까워 온다. 모카신을 신은 듯 발자국 소리도 없이, 솜씨 좋은 도둑처럼 가만히 남은 생애를 훔치러 다가오고 있다. 미립이 트이기 전 세상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그 순간을 수없이 상상하곤 했다. 두렵기에 더욱 똑바로 바라보려 한다. 뒷걸음질하지 않기 위해 한층 바싹 다가선다. 애초에 예행연습이라곤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끝없이 나 자신을 잡죄고 다그친다. 고단하다. 그때라면 푹 쉴 수 있겠지. 혜준! 내 하나뿐인 아들! 어리석고 약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욕망을 떨칠 수 없다. 그처럼 불가항력의 미련과 회한을 예상해 거듭 마음을 다잡아도 내게 남은 마지막 욕망, 그리고 미련과 회한은 오로지 너에 대한 것이다. 너를 잃어야 한..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1) 안정효 - 오랜 낚시친구 한광희에게 안정효 소설가 환갑을 채우지도 못하고 한광희 전무가 광탄농장에서 세상을 떠난 때가 2002년 1월이었으니까, 서로 얼굴을 못 본 지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군요. 그곳 하늘나라는 요즈음 얼마나 평화롭고 조용한지요? 내가 사는 이곳은 이렇게 시끄럽고 살벌하지만 말입니다. 난 작년 말에 구기터널 근처로 이사를 해서, 한 전무가 살던 평창동의 옛집과는 훨씬 거리가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녹번역 근처를 지나다니며 한 전무가 일하던 정비공장 자리에 들어선 소방서 옆 성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우리들이 낚시를 다니느라 자주 그곳에서 만나고는 하던 날들을 아쉬워하고는 합니다. 1987년 11월 우리 둘이서 추자도 푸랭이섬으로 갯바위 낚시를 하러 들어갔던 일이 생각나는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