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29) 박범신 - 영훈과 다희에게 박범신 | 소설가·상명대 석좌교수 이상해. 날이 갈수록 자꾸 너희와 너희의 이십대 한 시절이 생각나. 기울어가던 1970년대, 그 불안하고 쓸쓸하고 어두웠던 나날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환영처럼 눈앞을 스치는 거야. 내가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이라는 낱말에 처음 머물렀던, ‘풀잎’과 ‘칼날’의 상반된 이미지 사이에서 고통받았던. 너희가 지금의 나를 알아볼까. 벌써 34년 전에 너희를 냉혹하게 떠나보낸 나를. 서른두 살의 젊은 작가로부터, 이제 억지를 부려 70대를 바라보는 ‘늙은 청년작가’로 살아가는 나를. 그래. 나는 바로 너희의 이야기를 이라는 제목에 실어서 세상 속으로 떠나보낸 작가야. 사람들은 을 내가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말해.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너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아주 기..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8) 서용민 - 밴드 장미여관께 서용민 | 제일기획 CD 그러니까 아마 짓궂게도 어린이날이 아니었나 싶소. 불타는 금요일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자상한 아빠 코스프레로 지친 몸을 누인 5월의 토요일 밤이었소. 그날은 내가 애정하는 밴드가 경연에 나온다고 해서 신혼 때 장만한 배불뚝이 브라운관 앞에 앉아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휘두르며(케이블에 가입하지 않으면 서울에서도 공중파가 잘 안 나옵디다)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소. 기다리던 밴드들이 지나가고 댁들이 나옵디다. 삼촌들을 설레게 하는 소녀들로 정화된 시신경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주얼의 당신들 말이오. 한마디로 경악했소. 어릴 적 극장에서 보던 리사이틀 앞 공연이 펼쳐지는 듯했소. ‘동남아 순회공연을 막 마치고 돌아온’ 듯한 세탁소 정장에 선홍빛 코르사주라니. 무농약 무관심, 유기농으로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7) 김종해 - 동화작가 내 친구여 김종해 | 시인 Y형, 모처럼 자네에게 편지를 쓰네. 동화작가 내 친구, 한번도 지방의 생활권을 떠나본 적 없는, 평생 초등학교 평교사로 지내며 정년퇴임한 동화작가 내 친구를 위해, 젊어서 자주 주고받았던 편지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오늘 실로 오랜만에 이 편지를 쓰네. 만약 내게 죽음이 먼저 이르러 이승을 떠나기 직전에, 하느님이 한 사람과 마지막 한 통화를 허락해 준다면,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전화하리라. 그간 문학이란 화두를 내세워 55년간 쌓아온 우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넉넉하게 한국의 산수화 같은, 낯익은 모국의 흙과 바위 같은 익숙한 눈빛의 그대에게 나는 묵언(默言)의 작별을 고하리라. 정년퇴임 후에도 남해 남지섬에서 혼자 밭을 일구어 해마다 철이 되면 친환경 농법으로 기른 탱자며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6) 구경미 - 카멜레온 K에게 구경미 | 소설가 1993년이었어.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가을축제 때 공연할 연극 때문이었지. 나는 연주자로, 너는 조연배우로. 연주자라니까 되게 쑥스럽네. 글벽이라고 기억나니? 고작 회원 네 명이 전부인 국문과 소설 동아리. 그때 우리 네 명이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었거든. 연출을 맡은 선배한테 징발된 거지. 연극연습 때문에 아마 두 달 가까이 매일 저녁마다 모였을 거야. 그때 처음 알았어. 네가 시를 쓴다는 거. 그것도 꽤 잘 쓴다는 거. 어느 날 저녁 시 노트를 보여주며 봐달라고 했었잖아. 네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글쎄, 지금처럼 이렇게 친해졌을까. 내 친구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네 친구들이 질투할 정도로 오랜 시간 둘이서 문학 얘기만 했었으니까. 함께 서울로 온 것도 문학 때문이었지. 내겐 소설을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5) 박상우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박상우 | 소설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라는 자부심으로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내가 나와 한 몸일 거라는 확신과 자만심, 심지어 오만함까지 부둥켜안고 살았다. 하지만 인생의 파노라마 속에서 나는 나와 매순간 불화하고 갈등하며 별달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안아주고 싶은 순간에도 외면하고, 위로가 필요한 시간에도 질타하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세월을 함께 살아온 것이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걸 깨친 것은 세상을 40년이나 살고 난 뒤였다. 소설 쓰는 일에 지쳐 심신을 충전하기 위해 산천을 떠돌던 시기에 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를 만나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를 망상자아와 근본자아라고 불렀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4) 김다은 - 사서함 100호의 주인에게 김다은 ㅣ 소설가 유언장은 아니지만 마지막 편지라고 여겨질 절실한 편지를 써달라는 요청에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십수년 동안, 귀한 편지들을 받아왔지만 차마 답장을 하지 못한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당신은 항상 사서함을 통해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주소지는 청주·안동·전주·안양 등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신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었는데, 사서함 100호는 수많은 당신들의 대표 사서함 번호로, 제가 선택한 임의의 주소입니다. 처음에는 편지를 매우 간헐적으로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져 몇 주에 한 통, 급기야 서로 다른 도시의 서로 다른 당신으로부터 같은 날 편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편지가 가장 많이 밀려온 때가 공지영씨의 소설 이 출간되고 2006년 동일한..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3) 정끝별 - ‘내 처음 아이’에게 정끝별 ㅣ 시인 서울 다녀오신 아버지가 사다준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넌 일곱 살이야. 검정 반달 구두에 흰 양말을 신고 한껏 멋을 내고 있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에 가느다랗게 치켜뜬 눈은 영락없는 시골 아이야. 넌 어젯밤에도 내내 내 병실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어. 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아침에 간호사에게 부탁했어. 저녁 식사 후 먹는 약에 수면제를 늘려달라고, 푹 자고 싶다고. 이 세상이 저편으로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고 있어. 그 저편에서 너는 ‘엄청나게 행복하게 믿을 수 없게 가깝게’ 달려오곤 해. 그럴 때면 간호사는 이렇게 말해, “할머니, 또 예쁜 일곱 살 됐네”. 내 안엔 내가 너무 많았고 너무 많은 나로 내 안은 늘 아우성이었지만, 일곱 살의 너는 내 안의 저편에서 슬픔의 싹처럼 자라곤..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2) 김백겸 - 칼리(Kali) 여신에게 김백겸 ㅣ 시인 등불이 켜지기 전에도 존재했고 등불이 꺼진 후에도 살아있는 당신. 당신의 사랑과 관심으로 시작된 내 인생의 그림풍경을 전합니다. 딸 넷을 낳고 절망한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새벽에 백일기도를 해서 낳은 외아들을 기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네 무당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 예언해서 어머니의 자부심과 환상이 마당의 키 큰 가죽나무처럼 무성했지요. 나는 대전시 대흥동에 있는 충남도지사 관사의 후문 뒷골목에서 이웃인 도지사의 권력을 동경하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네모 눈금이 그어진 신체 측정판을 배경으로 알몸으로 찍은 내 사진이 있습니다. 가늘고 약한 사지와 머리만 큰 소년이 겁먹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 설사를 해서 바지와 하체를 버리고 울고 있..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1) 안현미 - 시에게 안현미 | 시인 불을 켠다. 오랫동안 캄캄했던 컴퓨터 모니터, 먼지가 뽀얗게 앉은 스탠드 그리고 생의 마지막으로 불멸의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 더 이상 무언가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오래된 불안을 향해서도 불을 켠다.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빛이리라. 그런 후에는 다시 최초의 어둠을 향해 가는 건가? 스물아홉. 나는 어둠 속에서도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적외선 잠망경 같은 전쟁 무기를 수입하는 무기 수입 에이전시에 다니며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뒤늦게 들어간 대학 마지막 학년 전공 수업을 듣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그해는 분단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6·15 남북공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모처럼 남북 간 관계는 역사 이래 유례없이 상생과 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20) 윤대녕 - 타클라마칸 사막에 쓴다 윤대녕 ㅣ 소설가 1995년 2월 하순의 일이었지. 나는 그대에게로 가기 위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혼자 집을 나섰지. 마치 영원히 이 세계를 떠나는 기분이더군. 유년기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막, 그대에게 가는 길은 이처럼 비감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어. 1994년 봄에 첫 소설집을 내고 나서 나는 채 일 년도 안되는 동안 두 권 분량의 소설을 써댔고, 일종의 공동(空洞) 상태가 찾아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고(故) 박찬 시인이 전화를 걸어와 실크로드를 함께 여행하자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대뜸 물었지. 그럼 사막도 가게 되나요? 그는 노인처럼 조용히 웃으며 타클라마칸의 검붉은 모래언덕을 질리게 보게 될 거라고 하더군. 그 말을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18) 정이현 - 보고 싶은 채팅방 친구들 정이현 | 소설가 안녕, 친구들. 지금이 몇년도인지 때때로 실감나지 않아. 얼마 전, 새로 나온 책에 저자 서명을 할 일이 있었거든. 이름 밑에 습관적으로 날짜를 쓰다말고 갑자기 손이 얼어붙었어. 조금 전 내가 휘갈긴 그 아라비아숫자들을 멍하니 들여다봤지. 그래. 참 멀리 왔구나 싶더라. 이상하기도 하지. ‘멀리’라고 생각할 때 그 기준점이 되는 시간은 언제나 1994년과 1995년, 1996년 그 언저리야.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우리들이 알게 된 건 1994년 여름이었어. 참으로 무더웠던 그해 여름을 어젠 듯 또렷이 기억해. 얼굴을 보기 전에 이미 서로의 PC통신 ID에 익숙한 사이였지. 채팅방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무렵이야. 그런 식으로 ‘가볍게’ 만나서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17) 채정호 - K, 진심으로 보고 싶소 채정호 | 가톨릭대 교수 K, 당신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망치로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았소.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더군. 내 넓적다리보다 더 굵은 팔뚝을 가진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 반 이상 뛰고, 하얗게 밤을 새워도 끄덕하지 않을 만큼 그 누구보다도 강건했던 체력을 가진 당신이 의식불명이라니. 20분밖에 주지 않던 면회 시간이 너무 야속합디다. 삐삐거리는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이 얼마나 춥고, 쓸쓸했소. 차라리 정말 아무 의식이 없었던 것이라면 모르겠소. 하지만 혹시 다 알아들으면서 눈동자도 손가락도 까닥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목메어 울먹이고 머리를 쓰다듬던 당신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못하고 당신의 발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