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하이볼’이 싱거운 오사카 최근에 일본의 술집 여행 책을 한 권 냈다. 한 기자와 출간 인터뷰를 했다. 책의 주제는 일본에 가면 싸게 파는 술집 밥집이 많다. 뭐 이런 거였다. 기자가 “일본은 자기 점포에서, 그것도 국가연금을 받는 부부가 음식을 싸게 파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값이 싼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좀 해설을 달자면, 자기 점포이니 월세도 없겠다, 연금도 받으니 생활 걱정도 없겠다, 나이 든 부부는 음식을 싸게 판다는 것이다. 즉, 이런 가게들이 있어서 일본의 음식 가격이 낮게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질문이었다. 그렇다. 일본의 술과 밥 가격은 1990년대 거품 경기 시대에 멈춰 있다. 그때 우동과 메밀국수, 돈가스 가격이 20여년 동안 별로 오르지 않았다. ‘자가 소유 점포, 연금, 부부.. 더보기
노포를 부술 것인가 최근에 한국방문위원회 사업에 참여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의 노포를 탐방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국적이 망라된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언어별로 통역이 제공됐다. 여담이지만, 중국어 팀은 중국, 대만, 홍콩 사람들이 묶였다. 참가자들은 서울에 노포가 있다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가졌다. 그들이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얻는 음식점 정보라는 건 역사성까지 담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루트는 피맛골의 청진옥에서 시작해서 열차집, 을지로 3가의 조선옥으로 이어졌다. 평균 업력 80~90년에 달하는, 서울의 식당 역사를 보여주는 집들이다. 청진옥에서 서울의 노동 음식과 심야 생활의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나무와 물건을 배달하던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을 해장.. 더보기
만두 없는 나라 . 최근에 나온 한국 화교에 대한 책이다. 한국에서 피차별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화교사 연구서이다. 저간의 이야기야 깊고도 슬프다. 화교 당사자들로서는 가슴 쓰린 기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화교는 조선 말기에 이미 우리 이웃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짜장면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강력한 음식의 추억일 것이다. 나는 짜장면보다 만두야말로 더 화교다운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짜장면은 한국인이 사먹는 음식이었고, 그들의 주식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만두가 있었다. 40~50여년 전, 동네에 화교가 살았다. 그들의 주식은 만두였다.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먹고는 크게 실망했다.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소 없는 만두였다. 원래 중국 만두란 소가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 더보기
돼지고기 ‘판’을 갈아야 할 때 이미 작년의 일이지만, 돼지고기 가격(돈가) 하락이 심각하다. 원래 돈가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구제역 등이 없다면 조금씩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계절도 탄다. 이상하게 작년 여름, 돈가가 안 올랐다. 휴가철 특수가 있는데도 삼겹살이 남아돌았다. 어느 신문에서는 “황금돼지해, 돼지값 싸져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돈가를 안정시킨다고, 여기에다가 주요 무역국과의 교역 문제 때문에 수입돈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돼지고기가 많이 수입되면 가격이 내려가서 소비자(국민)도 좋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위의 신문 기사가 그런 논조다. 그렇다면 축산가는 국민이 아닌가. 그동안 축산 농가는 이런저런 당국의 불편한 처사에도 입을 꾹 막고 살았다. 수입 .. 더보기
장래 희망은 요리사 어떤 조사인지는 몰라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장래희망 직업에 요리사가 모두 10위 안에 들었다. 초등학생은 심지어 4위였다. 응답자들이 직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결정한 후에 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요리사가 요즘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힌트였다. 옛날에 의사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고, 아마도 PC통신을 통해 의사들의 감상평이 돌았다. 하나같이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레지던트들이 언제 저렇게 연애하고(드라마에 연애가 빠질 수 없으니까) 얼굴이 반들반들하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밖에 못 자서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까치집이며, 연애는 고사하고 외박도 거의 나가기 힘든 저연차 레지던트들의 악성 근로환경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그러거.. 더보기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페이스북이 5년 전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머리엔 머플러를 친친 동여매고 입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걸치고 시장 바닥에서 떨며 밥을 먹는 여인들의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 사진을 자갈치시장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는 짧게 사진의 제목을 달았다. “이런 장면에 ‘삶의 현장’ 따위의 설명을 붙이지 말자.” ‘삶은 이어진다’ 같은 것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럽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것이 일상이라고. 그것을 운명이라든가 국외자의 시선을 실어서 감상적인 말로 수식해서는 곤란하다고. 언젠가 한 요리사 친구가 실직했다. 그야말로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 라면도 떨어졌다. 어느 날 밤에 귀가하는데, 집이 컴컴하더란다. 요금 체납으로 전기도 끊긴 것이다. 인터넷이 거의 없던 시절.. 더보기
한잔 들게 옆자리 어른이 술을 권한다. 외지 사람이 잔을 받는다. 드르륵, 낡아서 삐걱거리는 알루미늄 문이 열리고 노인 손님이 몇 패 들어온다. 찌개를 끓여서 막걸리를 돌린다. 미지근한 막걸리다. 여그는 차게 안 마셔. 최근 광주에 다녀왔다. 부도심 곳곳의 전통시장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남광주시장, 양동시장, 대인시장. 토요일마다 야시장이 열리는 곳도 많다. 청년과 예술가가 결합해서 시장의 분위기를 바꿔 놓기도 한다. 시장의 힘이 아직은 느껴지는 도시다. 이 시장에는 대폿집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한 바퀴 돌면서 대폿집들의 면모를 쓱 살펴본다. 어떤 집은 “시장에서 파는 무엇이든 가지고 오면 요리해 드린다”고 써 놓았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 무렵, 전라도 해안.. 더보기
뜨거운 국물의 힘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훌훌 뚝딱 말아먹고, 식의 표현이 흔하다. 노동하는 음식, 간편식의 골자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식생활에서는 국과 국밥의 역사가 그랬다. 국밥의 대표격인 설렁탕이나 곰탕은 싸지 않았지만, 속이 든든하고 오래 허기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깃국이었기 때문이다. 국밥이 노동 음식이었다는 근거는 토렴을 든다. 밥을 말아내어 들이마시듯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토렴은 밥알의 온도를 적당하게 해주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식사 속도를 높여주어서 환영받았다는 뜻이다.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시대에 토렴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지혜였다. 특히 한국처럼 대륙성의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술.. 더보기
우리의 맛, 조선간장 우리 외식업을 지탱하는 조미료 중 하나는 공장에서 생산한 산분해 간장이다. 공장에서 만들었다고 달리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간장을 찾으려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업소용 재료를 파는 대형 시장에 가보면, 조선간장이나 양조간장은 찬밥이다. 값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재료비가 올라 힘들 식당 사정은 모르지 않되, 간장에 대한 이해가 애초부터 부족하거나 전무하다. 오래된 ‘노포’ 식당의 다수도 다르지 않다. 양조간장이 소량 들어간 이른바 ‘산분해 간장’을 거의 100% 쓴다. 오래된 노포의 맛, 고향의 맛이라는 근저가 실은 산분해 간장이라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원가 분석을 해봐도, 양조간장(우리가 전통적으로 만들어 쓰는 조선간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양조한 간장)을 쓴다고 해.. 더보기
동물 고통 덜어주는 요리법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먹는다. 먹는 행위에 대해 논란도 많다. 개고기며, 고래고기 섭취 같은 것들이다. 개별적인 집단의 오랜 문화와 새롭게 동물을 보는 시선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도 요즘 크게 확장되고 있다. 유럽의 몇 나라는 랍스터를 산 채로 삶는 조리법을 금지했다고 한다. 랍스터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은 문어는 어쩌나 싶다. 문어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이 종이 아주 영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산시장에 가면 문어들이 답답한 망에 갇혀 수족관에 들어 있다. 그들의 지능이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문어를 삶을 때 대개는 산 채로 넣는다. 그것이 표준 요리법이다. 아마 문어와 비슷한 낙지도 지능이 높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산낙지 투하’라는 검색어를 넣어.. 더보기
일회용품 예전 어느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고른 장소는 놀랍게도 한 햄버거 체인점이었다. 그와 점심을 먹고 나니 쟁반 위에 온갖 일회용품이 가득했다. 그를 만나 나눈 얘기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쟁반 위에 쌓여 있던 알록달록한 쓰레기는 이미지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일회용품을 거침없이 쓴다. 심리적으로 찜찜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 며칠 전에 한 행사에 갔더니 도시락을 나눠줬다. 먹고 나니 역시 한 보따리의 일회용품들이 남았다. 일회용 수저, 그 포장지, 국물을 담는 그릇, 반찬도 각기 다른 일회용 그릇에 담겨져 최종적으로 역시 일회용품인 ‘틀’ 안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모두 담는 별도의 비닐포장지까지. 거기에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 더보기
이북식 만두, 북한 만두 옛글에 명절에는 만두를 빚는다 하였는데, 어디까지나 한수 이북의 일이다. 남쪽의 만두는 중국인들의 몫이었다. 동네에 화교가 좀 살았는데, 명절에 푸짐하게 만두를 빚었다. 엄밀히 말하면 파오츠(包子)였다. 만두(만터우)는 화교들에게는 속을 채우지 않는 일상의 밀가루 음식이었다. 발효시켜 부풀린 후 쪄서 밥으로들 먹었다. 그걸 얻어먹어본 적도 있다. 짭짤한 나물과 채소 볶은 것을 그 밀가루 만두, 실은 빵이라고 할 음식에 얹어 먹었다. 소 없는 만두란 참 심심했지만, 부풀린 반죽이 씹히는 결이 인상 깊었다. 그 만두를 잊지 못해서 대림동 상가에 종종 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진짜 ‘만두’를 판다. 거대하게 부풀려서 왕만두라고 해야 할 밀가루 빵을 팔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 정주지는 바꾸어도 음식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