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옛날 냉면집에 갔다 옛날 냉면집에는 종이로 술을 만들어 매달았다고 하는데, 그 종이술이 국숫발을 의미한다고 했다. 직관적 광고물로 그만한 게 없지 싶다. 내가 기억하는 냉면집은 빨간색 바탕색에 흰 글씨로 ‘냉면 개시’라고 써 붙였다. 임시로 판다는 뜻이었다. 찌개 팔고 탕 끓이는 집은 여름에 손님이 줄어드는 법이라 한철 메뉴로 냉면을 추가했던 것이다. 그다지 품질 좋은 냉면이었을 리가 없다. 메밀을 쓴 냉면이라면 기계도 있어야 하고, 그걸 솜씨 있게 다루는 발대꾼이며 기술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만든 면을 풀어서 그럭저럭 만든 육수에 얼음 깨어 넣고 제공했다. 이 계절에 흔한 수박이며 토마토가 올라가기도 했다. 서울식 임시 계절 냉면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데, 뜻밖에도 그런 냉면을 서울 밖의 냉면집에서 만나기도 했.. 더보기
단것 당기는 시간들 당 권하는 사회. 한때 매운 음식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당이다.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가 매운 음식과 당을 요구한다는 사회적, 의학적 연구 결과를 내놓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느낀다. 비록 설사를 할지언정 미친 듯이 매운 닭발을 뜯고 떡볶이를 흡입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다. 속은 쓰리지만 머리꼭지가 벗겨질 것 같은 쾌감이 몰려온다. 문제는 ‘혈중 매운 농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매운맛의 마력이 뚝뚝 추락하고 나면 허탈해진다. 그래도 땀 한번 흘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다. 매운 것도 먹었으니, 자 이제 한번 또 해보자고, 이러면서. 우리는 늘 그렇게 막막한 세상에 부딪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설탕도 그렇다. 매운 것 못.. 더보기
먹는 일의 계급 영화 에 나오는 라면이 화제다. 이른바 ‘투뿔등심 짜파구리’다. 두어 해 전에 유행했던 음식이다. 라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 아닌, 일종의 번외의 ‘오덕’ 레시피였다. 좀 뜬금없이 등장하는 음식 같기도 한데 감독은 ‘부자들은 같은 걸 먹어도 다르게 해석한다’는 여지를 부여했던 것 같다. 짜파구리 같은 인스턴트 라면에 어울리지 않게 ‘투뿔등심’을 얹어 먹는 설정을 만든 것을 보면. 그 라면이 그다지 맛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빈대떡에 캐비어 얹은 것 같다. 서로 별 상성이 없다. 그것조차 감독의 의도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계급적으로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짜파구리를 먹는다. 영화 속의 설정이 아니라 대체로 가능한 일이다. 6000원짜리 저가 냉면집 앞에 고급 외제.. 더보기
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언젠가부터 중국집 짬뽕이 대체로 부실해졌다. 값은 거의 못 올리는데 해물 같은 재료비는 치솟았기 때문이다. 오징어 빼고 변변한 해물이 안 들어간 지 오래다. 그나마 그 오징어조차 질이 좋지 않다. 어획이 좋지 않아서다. 한때 오징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어부들이 출어를 포기하던 90년대가 있었다. 잡아봐야 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연근해 어황이 나빠져도 짬뽕은 별문제가 없었다. 더 먼바다로 나가서 잡아올 수 있었다. 선동이라고 부르는, 큰 배에서 잡아서 급속 냉동을 하면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가 먹어왔던 짬뽕의 오징어는 대부분 이런 물건이었다. 솜씨 좋은 중화요리사가 팬으로 볶고 끓여내는 짬뽕 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지만, 손에 붙인 기술의 총화가 만드는 게 바로 .. 더보기
차마 그리운 비빔국수 1947년 여름, 몽양 여운형은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총에 맞았다. 자택에서 기계면으로 만든 비빔국수를 점심으로 들고난 후였다. 이듬해인 1948년, 어느 신문 기사는 아마도 몽양의 식탁에 올랐을 당시의 유행 음식인 기계국수를 언급하고 있다.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배급된 미국제 건면 조리방법은 냉수를 부어가며 속까지 익히고 삶은 후 찬물에 5분간 담가두었다가 장국이나 비빔국수를 해먹으면 좋다.” 일제강점기에 제분시설이 속속 한반도에 세워졌고, 몽양의 그 ‘기계면’도 이미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잔치국수가 바로 기계면의 일종이다. 제면기로 눌러 뽑는 국수가 흔했던 우리 전통 국수 문화에 이종(異種)이 이식된 셈이다. 가게에서 사들여 삶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기계면은 충격적이었으리라. .. 더보기
새벽 음식 배송 시대 새벽 음식 배송 시장에 전쟁이 붙었다. 몇몇 선발 업체들의 성공에 고무된 기존 인터넷 오픈마켓들까지 뛰어들었다. ‘고무된’ 것이라기보다, 어쩌면 울며 겨자 먹기인지도 모른다. 안 쫓아가면 큰일 날 것 같아, 사업 참여나 일단 해보는 수준이다. 선발 업체들도 실제로 이익을 내는 것 같진 않은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고도 하겠다. 이런 새벽배송 음식의 상당수가 간편식(HMR)이다. 셰프가 만드는 음식이 새벽에 당신 식탁에 오른다는 슬로건을 꺼내든 업체도 많다. 시중의 유명 식당 음식도 물론이다. 배달이 불가능한 음식이 거의 없어졌다. 요리사들은 불안하다. 이 시장이 어떻게 될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180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근대적인 식당사업, 그러니까 홀과 주방을 마련하고 .. 더보기
식빵의 추억 옛날에 엄마가 해주시던 간식은 아주 다양했는데, 간혹 놀라운 것도 있었다. 카스텔라나 도넛(도나스라고 불렀다)이었다. 카스텔라는 그저 완제품으로 된 가루에 계란과 설탕, 물을 붓고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전기밥솥에 찌는 방식이었다. 그다지 맛이 없었던 것 같다. 맛있었다면 지금도 살아남아 있을 테니까. 도넛은 아주 초보적인 방식이었는데, 요즘 전문가게에서 파는 걸 상상하면 안된다. 시장에서 파는 옛날식이랄까, 그런 모양과 맛이었다.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부풀려서 돼지기름에 튀긴 후 그냥 설탕만 묻힌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발효를 이해한 것 같진 않아서, 부풀리기나 식감이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 달콤함 더하기 빵이라는 조합은 훌륭했다. 70년대는 분식의 시대였.. 더보기
서해안에 갔다 요리사 후배들과 종종 산지 재료 기행을 간다. 실은, 한잔 마시자는 목적이 더 크다. 들과 산과 바다에는 제철이 있다. 많이 잡혀서 제철이고, 맛이 좋아서 제철이다. 둘 다 해당되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금상첨화다. 아무래도 바다를 가게 되는데,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해산물을 보는 기쁨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서해안 어디든 두어 시간 안짝에 닿는다. 무슨 무슨 축제를 한다는 항구는 가급적 피한다. 인심이 아무래도 들쑥날쑥하고, 번잡스럽다. 조금씩 움직여서 인근의 작은 항구나 작은 도시의 장터를 찾는 게 요령 있는 장꾼과 술꾼의 비밀이다. 주중에 시간 내기 어렵겠지만, 값은 한다. 주말보다는 주중, 번잡한 곳보다는 한산한 어항으로. 간재미라고 부르는 작은 가오리를 먹는 맛이 우선이다. 가오리라고 .. 더보기
아프리카 돼지열병 돼지고깃집을 하는 친구가 있다. 연초에 들렀더니 표정이 어둡다. 돼지고기가 너무 싸서 그렇단다. 싸게 팔면 남는 게 적으니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위로했다. 그게 아니란다. 들여오는 돼지고기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연초면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바닥을 칠 때였다. 생산비 이하 가격에 팔렸다. 축산가는 비명을 질렀다. “싸다고 좋은 게 아니야. 너무 싸면 폭등할 수 있어. 당장 모돈 도태시켜서 생산가를 맞추라고 당국은 요구할 거고, 그러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 고깃집도 피해를 볼 거야.” 올 초에 이어진 돼지고기 가격 폭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비 부진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 고깃집 장사가 잘 안된다는 뜻이다. 고기가 잘 안 팔리고 싸면 축산가에서는 재고 부담을 안는다. .. 더보기
멍게와 해삼 횟집에 가면 늘 나오는 기본 안주가 있었다. 해삼과 멍게다. 얼마나 흔했던지 ‘리필’도 잘해주곤 했다. 30여년 전, 서울은 횟집이 별로 없었다. 일식(日食)도 아니고 ‘日式(일식)’이라고 써놓고 장사하는 한·일 절충식 일식집 아니면 회다운 회는 아주 드물었다. 광어와 우럭이 흔하게 양식되던 때도 아니었고, 이른바 강원도식 물회라는 ‘물가자미 막회’ 같은 요리들을 하는 가게도 막 서울 중심부에 열릴까 말까 하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민물회도 많이 먹었다. 이스라엘 잉어인 속칭 향어와 얼마나 잘 잡혔던지 막 퍼주던 붕장어가 세트였다. 붕장어는 일본말인 아나고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가까운 인천 연안부두의 어시장에나 가야 좋은 회가 있었고, 서울내기들은 회를 잘 먹을 줄 모르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도 멍게와 해.. 더보기
벨기에 한식당 ‘먹자’ 애진 허이스(41)라는 친구가 있다. 그이의 국적은 벨기에. 입양자 출신이다. 애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벨기에로 떠날 때 가지고 있던 이름이다.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그이를 만났었다. 벨기에 제3의 도시 겐트에서 ‘먹자’라는 팝업식당을 한다고 했다. 팝업이란 비정기적으로 임시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 먹자는 한식을 파는 팝업인데 겐트에서 아주 유명하다. 애진이 언젠가 사진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한국의 삼겹살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미지다. 드럼통과 불판에 현지인들은 베이컨으로나 먹는 삼겹살을 구워서 쌈장에 찍고 상추를 싸서 먹는다. 뭐 하나 해준 것 없는 조국이 뭐 좋다고, 애진은 이 나라에 종종 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무엇보다 음식의 기억이 혀에 붙어 있.. 더보기
노량진 쇼핑 노량진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주 간다. 하나는 수산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길 건너 고시촌에 볼일이 있어서다. 머리도 깎고 밥도 먹으러 간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괜찮은 품질에 최저가의 서비스를 파는 동네는 없다. 한때 재수생이 많았던 이곳은 이제 ‘종합 공무원 공채시험 준비 타운’이 되었다. 속칭 ‘고시’다. 왕년의 고등고시부터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이르던 말인 고시가 이제는 공직에 입직하는 모든 시험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노량진 고시촌은 불안한 젊음의 현주소로 종종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다루고 있다. 고용시장은 엉망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그나마 ‘공직’은 안정된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화라고 할 비정규직, 계약직의 차별이 가져다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