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우리 입에 고기 한 점 동물복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법률 이름에도 쓴다. 특히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개에 관한 논의가 많다. 사람 눈에 잘 띄고, 오랜 애호 역사가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기르던 개를 잡던 시절에도 차마 제 손을 쓸 수 없어서 먼 곳의 개와 바꾸기도 했다. 개 식용 논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대부분의 식용 개는 음식이 될 목적으로 처음부터 사육된다는 점이다. 하나 축산 관련법에는 빠져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와중에 이들 사육견의 고통은 말도 못한다.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대부분 최소한의 사육 환경을 지키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킨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이것은 법률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양심의 한계를 의미한다.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인간의 연민 같은 걸.. 더보기
상처입은 복숭아 맛 요즘은 농사법이 발달해 제철 개념이 많이 사라졌다. 찬 바람 불면 농익은 포도가 맛있는 때인지라, 아는 농민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7월에 출하를 마쳤단다. 시설 재배로 바꾸면서 출하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철을 앞당기면 작물값이 좋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여러 이점도 더 있다. 유기농 재배하기도 편하고(인근 밭에서 벌레가 넘어오기 어렵다), 재배와 수확에 편리하게 환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바람이 싸늘해지고, 대낮에도 긴팔을 입어야 할 때 먹는, 잘 익은 과일의 맛을 생각하면 전통적인 제철이 그립기는 하다. 복숭아도 제철이 당겨진 듯하다. 포도야 넝쿨처럼 자라고, 키 작게 기르기 좋아서 일찌감치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치지만 복숭아도 그럴 줄 몰랐다. 복숭아도 이젠 시설 속에서 키우는 게 어려운.. 더보기
속풀이 해장 파스타 한국에 언제 파스타가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열강의 공사들이 궁에 들어오고, 그들을 접대하느라 파스타가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서양 음식물을 수입한 해관(세관) 자료가 있다. 와인과 샴페인, 과자류와 국수의 수입이 있었다.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근대식 호텔이 서울에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물자는 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수입했다. 파스타는 서양인에게 중요한 음식이었다.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요리도 간편했다. 당시 어떤 조리법을 썼을지 궁금하다. 100년 넘게 흐른 지금, ‘모든 재료’가 파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된장이나 간장 파스타가 있었을까. 아마도, 서양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니 서양 재료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토마토소.. 더보기
불판을 바꿉시다 유럽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후배가 귀국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재미있는 대목. “그쪽 사람들이 농 반 진 반으로 한국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 유럽 베이컨(삼겹살이 재료다) 값을 올렸다는 거다.” 한국은 세계 삼겹살의 20% 정도를 소비한다. 인구 대비 엄청난 양이다. 세계 17개국 내외에서 수입한다는 것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돼지를 대량으로 기르는 나라는 웬만하면 한국에 수출한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비교우위에 있는 모든 부위가 해당한다. 족발, 목살, 갈비, 등뼈 등이다. 한국에선 비싼데 외국에선 헐값인 부위다. 한때 수입 삼겹살 구분법으로 ‘오돌뼈가 붙어 있느냐’를 보라고 했다. 이젠 의미없다. 한국 기호에 맞춰 뼈를 함께 잘라 정형해서 수입한다. 수입은 냉동이라고? 아니다. 냉장도 꽤 된다. .. 더보기
이 청년들을 어찌할 것인가 서울시 인구 1000만명에 식당 숫자는 12만 개가 넘는다. 식당 한 개에 80여명의 인구가 물려 있다. 서울시에 그토록 식당이 많은 건 대부분 생계형 영세업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떡볶이집, 김밥집, 분식집, 삼겹살집, 호프집, 치킨집이 다수를 차지한다. 알다시피 이런 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레드오션의 절정이고, 이른바 ‘인테리어가게 돈 벌어주는’ 조기 폐업이 다수다. 흔히 도시 노동자들의 이동 순서가 회사-삼겹살집이나 치킨집-말단 노동이라고 한다. 회사의 고용에서 밀려나면 더 가혹한 개인 경쟁상태로 내몰리고, 그마저 폐업하면 일당 노동자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월급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전통적 업종들이 폐업하는 것도 이런 계층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지물포, 페인트가.. 더보기
서귀포 시장의 동태 할머니 제주 서귀포에 잠시 다녀왔다. 제주의 변화는 국토 중에서 아마도 가장 극적일 것이다. 고립, 격리 같은 낱말이 떠올랐던 세기를 지나 일종의 거대한 카오스 상태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다수의 제주 사람들이 도시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젠 도 전체의 땅값이 폭등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안 와도 경기는 여전히 좋다. 저비용항공사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비행편이 국내 여행객을 열심히 실어나르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공항이 포화상태여서 공항 건물에 브리지를 대기 힘들다는 뜻이다. 제주도 남쪽 서귀포를 들렀다.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시장으로 유명한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올레 걷기 운동의 영향으로 시장 이름까지 바꾼 곳이.. 더보기
함흥냉면도 있다 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우선은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냉면은 냉면일 뿐 ‘물냉면’이란 없다. 냉면은 당연히 육수가 시원하게 들어가는 것이므로 굳이 ‘물’이란 접두어는 사족이라는 뜻이다. 함흥냉면은 냉면 아니냐고 하면 슬쩍 이런 말을 흘린다. “원래 함경도에서 비빔국수로 먹던 것을 전후 평안도 실향민의 평양냉면에 맞서 함흥냉면이라고 작명했다.” 아마도 이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냉면이 아닌 것도 아니다. 얼음처럼 이가 시린 냉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운 면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의 함흥냉면과 비슷한 것이 북한에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명태회국수다. 함경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이것과 유사한 음식이 강원도 속초에서 명태 고명을 얹은 함흥냉면으로 남아 있어서 그.. 더보기
음식과 노동 음식 관련 책의 출간이 아주 많아졌다. 관련 책만 내는 전문 출판사가 있을 정도다. 새로운 개념의 판매술과 별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일본의 한 서점에는 제일 좋은 자리에 음식 책을 배치한다. 음식 책도 카테고리가 세분되고 있다. 주로 조리법을 담은 책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인문과 사회과학으로 음식을 다룬 책의 비중이 커졌다. 역사에서도 음식사, 음식사회사와 문화사 책도 많다. 음식을 통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에서 이 분야의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 몇몇 박사급들이 배출되고, 외국 유학 가서 전공하는 이가 생겨날 만큼 음식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먹는 일은 즐겁지만, 그 이면의 불편한 진상(眞相)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보기
기스면과 울면 중국집도 변화를 탄다. 임오군란 이후에 화교들이 들어오고, 호떡집으로 시작한 중국집 역사는 이제 100년을 훌쩍 넘는다. 부침도 심했다. 한때 최고급 요릿집,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누는 요정 같은 중국집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고급 중국식당은 호텔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화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늘 여러 가지 제한으로 영업에 부담을 줬다. 중국집에서만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한 적도 1960년대에 있었다. 한국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중국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 세대는 배달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같은 식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지만. 우선 사라진 메뉴가 많다. 먼저 우동. 달걀을 살짝 풀고 파와 양파, 갑오징어를 넣은 맑은 국물의 우동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우동.. 더보기
‘진짜 평양냉면’은 없다! 다시 냉면이다. 작년 여름, 냉면에 관한 여러 논쟁이 있었다. 진짜 평양냉면이 무엇이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 치면 ‘맛치(痴)’인가 하는 자문과 엉성한 자답이 있었다. 엉성하다고 표현한 것은, 냉면은 결국 대한민국(남한)의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뜻한다. 속칭 면스플레인(면+익스플레인[explain])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냉면 먹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행위에 대한 힐난이었다. 그러던 중에 올봄 남북 예단 교류를 통해 이른바 붉은 다대기(양념장)까지 넣어서 나오는 북한 냉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겨자와 식초조차 치지 말아야 한다는 냉면 순수파(!)의 코가 납작해져버릴 일이었다. 나는 왕년에 1960년대에 나온 북한 요리책을 좀 보았다. 중국에서 입수한 책을 공항으로 가져오다가 .. 더보기
치킨제국 치킨공화국이라는데, 나는 치킨제국 같다. 군림하는 황제와 복종하는 신하들이 있을 뿐이다. 먹는 이들도, 치킨을 튀기는 일선의 장사꾼들도 제국의 신하들 같다. 복종은 길고, 말은 짧다. 치킨값과 재료값은 제국이 정하는 대로다. 경기가 나빠서 치킨이 더 팔린다는 분석이 있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다. 외식비가 없어 배달 치킨으로 만족하는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치킨 튀기는 이들도 쏟아졌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월급 반 토막에 직원 수 반 토막이었다. 나가라, 나가라, 다 나가라였다. 그때 우리는 치킨 맛을 깊게 혀에 들였다. 뭐든 물건 잘 팔아서 부자 되고 떵떵거리는 거야 뭐라 할 게 못 된다. 그러나 강남 요지에 불쑥불쑥 솟은 치킨 회사 사옥을 보면, 늘 신문을 장식하는 갑질 기사가 떠오른.. 더보기
냉면에는 남북이 없다 방북 예술단이 귀환했다.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9년’은 참으로 길었다. 그 시간을 뛰어넘어 걸그룹 멤버들이 냉면 먹는 장면의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그것은 달라진 세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유통되었다. 한때 남북관계 호시절에는 평양에서 ‘진짜’ 평양냉면을 먹어본 인사들이 많았다. 맛에 대한 평들도 다양했다. 그 도시의 냉면이 더 이상 화제도 아니었다. 정치나 사업 하는 이들 중에서 옥류관 냉면 한번 못 먹어본 사람은 끝발 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평양 왕래객이 많았다. 평양에 가지 않더라도 대안이 많았다. 금강산 관광 가서도 평양냉면을 사먹을 수 있었다. 북한의 설명대로라면 ‘평양과 똑같은 냉면’을 팔았으니까. 방북 예술단은 많은 화제와 후일담을 생산하는 중이다. 단연 대중의 관심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