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반지하에 사람이 산다 전국에 반지하 셋방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 역사가 오래된 건 아니다. 1970년대에 도시는 팽창했다. 낡은 단층 슬래브 집들이 다세대라는 묘한 이름의 주택으로 바뀌었다. 의미로 보자면 아파트도, 호화빌라도 다세대이지만 다세대는 독립적으로 슬픈 이름 다세대다. “다세대 사는 애들과 놀지 말라”는 엄마들이 있던, 가난과 멸시의 상징. 봉준호가 주목한 건 바로 이 멸시가 아니었을까. 더 많은 ‘가구수’를 공급해야 했던 당국과 건폐율을 더 받아서 차익을 바라던 건물주의 이익이 만들어낸 다세대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한 층이라도 세대를 더 만들면 얼마나 이익이 늘겠는가. 주차장이나 창고로 써야 할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살았다. 완전히 지하가 아니라고 해서, 그나마 햇빛이 일정 시간 들어온.. 더보기
굴, 지금이 진짜 꿀맛 독자들께 살짝 팁을 드리자면 지금이 진짜 굴 철이다. 굴은 지금부터 맛있다. 찬바람 불면 맛있다 했으니 11월이 아니었어? 아니다. 11월의 바람은 차지만 바닷물은 미지근하다. 개인적으로 1월과 2월의 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굴은 대개 1년생으로 출하한다. 겨울을 처음으로 넘기게 된다. 앗, 추워. 겨울을 맛본 굴은 영양을 더 몸 안에 응축한다. 그러면서 11월보다는 더 성숙한다. 1월의 굴은 종종 더 진한 빛깔을 띤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1월과 2월의 굴은 농익어서 향도 맛도 진하다. 굴을 잔뜩 사들여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젓 담그는 일이다. 천일염 넉넉하게 쳐서 짜게 담그면 경상도 내륙식 굴젓(구젓)이 된다. 굴이 삭도록 두었다가 입맛 없는 여름에 북어포, 고춧가루에 버무려 밥반찬 .. 더보기
스티로폼 찌개 예전 시장에서는 스티로폼 사용량이 적었다. 수산시장에서는 나무 상자가 많이 쓰였고, 채소시장에는 종이상자나 나무상자가 주력이었다. 이제는 스티로폼이 많이 쓰인다. 냉장, 냉동에 스티로폼만큼 싸고 좋은 재질이 없기 때문이다. 요새는 새벽배송이라고 하여 저마다 아침 일찍 음식이며 재료를 배달해대는데, 포장을 끌러보면 기가 탁 막힌다. 내용물보다 훨씬 큰 스티로폼 상자에 재활용 수거도 안되는 보냉재, 어떤 경우는 내용물의 흔들림을 방지하려는지 작은 스티로폼 조각이 추가로 들어 있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있으나 그 후과는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식당을 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건 포장재 처리다. 수산물, 육류가 들어온 스티로폼 상자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활용으로 버리고 있으나 실제로 재활용이 잘되지도 않는다. .. 더보기
무서운 식탁 위의 월드컵 25. 무슨 숫자일까. 놀랍게도 한국의 식량자급률이다. 세계 꼴찌다. 자급률 100%가 넘는 쌀을 포함해도 그렇다고 한다. 그나마 쌀 자급률이 높은 것도 밀과 같은 수입곡물로 만든 빵과 국수, 과자류 때문에 밥을 덜 먹는 까닭이다. 식당에 가보면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하는 것 같다. 각종 재료의 수입국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식당에서 수입품을 많이 쓰는 것은 실제 그런 면도 있고, 다른 면으로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당국의 원산지 표기 대상 의무가 점점 넓어지면서 식당에선 써 붙여야 할 품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식당에서 재료상에 주문을 하면 일단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해당 품목의 가장 싼 걸 공급하는 게 원칙이다. 당연히 국산보다 싼 수입, 수입 중에서도 더 싼 수입이 존재.. 더보기
풍로와 라면 국도변을 달리다보면 우리 식당의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보양식이거나 복고풍이거나. 몸에 좋다는 온갖 설명이 가득하다. 그게 어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식당과 메뉴를 정할 때 마음이 가는 곳을 정하게 마련인데, 몸에 좋다는 건 아주 좋은 소재가 되는 거다. 여기에다 복고풍은 여전히 손님들의 향수를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이란 뜻이다. 가마솥으로 스물 네 시간 고아 냅니다, 옛날식 할머니 된장 맛! 직접 장작을 때어 밥을 지어드립니다! 검불 넣고 장작 때서 밥 지어보면 이게 할 일이 아니란 걸 5분 안에 알게 된다. 연기는 맵지, 불은 잘 안 일어나지, 시간은 흐르지. 진땀을 흘렸을 옛 할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어머니 대에서 비로소 ‘뒷산의 나무’에서 .. 더보기
택시에서 듣는 맛 택시를 타고 가다보면 노인 기사가 많다. ‘노인’이 몇 살부터 부를 수 있는 호칭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삼촌뻘이다. 대략 해방 후 6·25 이전 세대들. 그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정을 나는 잘 모른다. 요즘 어떤 모바일 차량 공유 서비스의 광고 문구에 ‘손님에게 말 걸지 않습니다’가 있다. 기사가 이런저런 푸념을 하고 말 거는 게 불편한 손님이 많다는 뜻이다. 나도 그리 편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때로는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귀 기울이곤 한다. 한 사람의 생애는 도서관급이라고도 하고, 시대 역사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뒷골목 민초들의 생애사는 직접 듣는 것 말고는 알 수 없다. 그런 얘기를 택시기사들에게 듣는 맛이 있다. 그중에서도 거창하지만, 한민족 식생활사라고 부를 수 있.. 더보기
다시 소환된 ‘잔반의 기억’ 고교 시절 무시무시한 눈빛의 선배가 있었다. 차마 곁에 다가서기 힘들었다. 학교에 폭력서클이 여럿 있었는데, 그 선배는 건드리지 못했다. “삼청교육대 출신이야, 저 선배.” 그랬다. 삼청교육대. 살아서, 몸 성히 나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말이 있었던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 선배가 그곳에 끌려갔을 때가 고작 고교 1년생이었다. 그저 동네에서, 학교에서 껄렁하다고 잡혀갔다고 했다. 경찰서마다 학교마다 삼청교육대에 보낼 인원을 찍어 할당을 때렸다는 말도 있었다. 전두환 군부가 출범하고 사회악 일소니, 정의사회 구현이니 하여 내놓은 민심수습책이 바로 삼청교육대였다. 영장도 없이 사람을 잡아 군부대에 처넣고 ‘인간 개조’를 시킨다는 죽음의 명령이었다.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부의 정치깡패 처단에서 아이디어.. 더보기
청진옥의 ‘국잽이’ 종로의 유명한 해장국집 청진옥에 갔더니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머릿수건을 쓰고 뚝배기에 해장국을 푸는 젊은 여인의 사진이다. ‘국잽이’라고 부르는 업무를 오랜 시간 해냈던 직원이다. 그렇게 국잽이로서 정년 넘게 일하고 은퇴했다. 다들 셰프며 파티시에며 소믈리에인 지금 요리판에서는 생소한 직책이다. ‘~잽이’는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를 말한다. 왕년의 우리 직업판에서는 ‘꾼’이거나 ‘잽이’가 많았다. 근사한 벼슬을 호칭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손으로 평생 무언가를 주물러서 업으로 삼던 낮은 신분의 이들이었다. 요즘도 우리는 무얼 잘하는 이를 두고 꾼이니, 잽이니 한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이제는 입말로만 남아 있는 듯하다. 개화기에 서양인에 의해 근대적인 식당 문화가 이식되기 .. 더보기
카공족 이른바 카공족이란 말이 회자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본디 카페는 토론의 장소로 유럽에서 성장했다. 유럽의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전은 카페의 몫이 컸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는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종종 심각한 논쟁을 유발한다. 카페의 수익 문제, 손님 윤리(?) 문제가 거론된다. 카페가 공부뿐 아니라 회의와 작업실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유 사무실이 유행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혼자 일하고 움직이는 프리랜서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의 전통적인 카테고리가 무너졌다는 의미도 된다. 먼저 장사하는 카페 주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자. 내가 종종 가는 한 카페 주인은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을 입고 출근한다고 한다. ‘알바생’처럼 어려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를 지키면 카.. 더보기
김용균이라는 빛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는 작은 공장이 많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남녀들이 직공으로 일을 다녔다. 아마도 12시간 맞교대 일을 마친 그들이 삼양라면이나 롯데소고기라면 덕용포장을 사들고 퇴근하는 걸, 나는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다가 보곤 했다. 언젠가 엄마가 “장도 못 담가 먹을 텐데 어떻게 간은 맞추는지 몰라”하고 혼잣말처럼 하시는 걸 들었다. 가난해도 집마다 장독이 있던 시절, 자취하는 노동자 청년들이 뭘로 간을 냈을까. 샘표에 별표, 닭표니 하는 서울의 공장 제품을 썼을까. 어쩌면 설이나 추석에 집에 가서 장 같은 건 가져왔을 것이다. 상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가져오면 오래 먹을 수 있었을 테니. 그런 명절 무렵에는 동네 전봇대마다 광고 전단이 붙었다. 대절 버스 광고였다. 기억하건대, 그 버스들.. 더보기
노포의 조리기구 예전에 오래된 한 식당에 들른 적이 있다. 주방을 기웃거리는데, 칼이 좀 특이했다. 주방장이 비슷한 모양의 칼 두 자루를 번갈아 쓰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크기가 달랐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아주 작았다. “칼이 비슷한 식도인데 크기가 왜 그리 다릅니까. 용도가 다른 건가요?” 주방장이 멋쩍게 웃더니 대답했다. “아, 이거요? 같은 칼인데 작은 칼은 워낙 오래 쓰다 보니 그리되었다오. 한 사십년 썼나.” 갈아서 쓰고 또 갈아 쓰다 보니 그리되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커다란 식도였던 칼이 닳고 닳아서 과도처럼 작아져버렸다. 그는 그것이 안쓰러운지 버리지 못하고 다른 용도를 찾아서 쓸모를 주었다. 무려 사십년 된 칼이니, 무생물이긴 해도 무슨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믿어질 것 같은. .. 더보기
단것 권하는 사회 어렸을 때 박찬호 야구를 보는데 흑인 선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미국 국적 흑인이야 이미 우리가 어느 정도 그 역사를 아는 부분이다. 소설 이 그랬다. 메이저리그에 미국인이 아닌 중남미 국적의 흑인 선수가 많아서 좀 놀랐다. 아니, 왜 저들은 검은 피부일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거나 건너뛰었던 고통의 역사가 거기 있었다. 약탈적인 설탕 산업이 중남미 흑인들의 먼 조상을 잉태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설탕이 얼마나 돈이 되고 귀한 산업이었으면 유럽 여러 나라가 혈안이 되어 노예사냥과 생산지 개척에 나섰을까. 아시아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설탕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애를 썼다. 오키나와는 본토 일본인들이 귀중한 설탕 공급지로 써먹었다. 강제 공출과 착취의 역사가 얼룩져 있다. 물론 여기에는 태평양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