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공동체 음식’ 국밥 국밥은 세계에 전례가 드문 이 땅의 음식이다. 한국 음식의 이미지에도 늘 등장한다. 시장과 국밥은 일종의 정서적 공동체다. 지방 5일장의 히트작은 여전히 국밥이다. 그 내용은 대개 동물의 뼈와 고기를 푹 고아서 쌀밥과 김치를 곁들여 내는 방식이다. 수많은 다른 요리법이 있지만 이 ‘원형’의 변주일 뿐이다. 국밥은 설렁탕과 해장국과 순댓국과 장국밥과 육개장을 모두 아우른다. 역사적으로 국에 밥을 말아 내는 방식이라 하여 국밥이었다. 이제는 ‘따로국밥’도 많아졌다. 토렴도 어렵고, 전자기기로 갓 지은 쌀밥을 낼 수 있으니 굳이 말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옛 해장국 골목의 증언을 종합하면 토렴의 이유가 명확해진다. 당시 전기밥솥이 없었기 때문이다. 쌀이 귀해서 밥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각자.. 더보기
국밥과 토렴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먹고 싶은 걸 말하는데, 한 녀석이 이런다. “고깃국에 이밥이나 실컷 말아먹었으면.” 피자나 치킨, 짜장면이 없던 시절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없는 이에게 고깃국은 대단한 음식이었을 테다. 돈 받고 파는 요식(料食) 중에 고깃국, 즉 국밥처럼 실감나는 음식은 드물었다. 김치나 된장은 사먹는다는 느낌이 적다. 밖에서 돈 내고 먹는다고 하면 짜장면 말고는 국밥이 오랫동안 주인공이었다. 국밥은 누구나 한 술 뜰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국밥에는 찬이 적다. 국에 밥을 말아내고 찬 없이 빨리 싸게 먹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조선후기에 김홍도가 그린 주막 풍경에도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국밥을 퍼넣는 장정의 모습이 나온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유럽에 비해 레스토랑의 역사가 .. 더보기
기술자가 사라진 빵집 대학을 다닐 때 이른바 건설일용노동자를 잠시 했다. 새참으로 빵이 나오면 선배들-김씨니 박씨니 하는 오직 ‘씨’로만 불리던 늙수그레한 막노동자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어렸고, 빵이 좋았다. 왜 빵을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빵은 지긋지긋한 집 음식과 다른 세계였다. 우선 달았다. 단팥이나 크림이 들어 있어서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나중에 빵 공장에 다니고 싶었다.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학교 앞에서는 빵을 팔았다. 제일 좋아하는 건 찐빵집 빵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화교를 통해서 전파되었을, 팥이 들어간 그 찐빵은 구수하고 비릿한 효모 냄새로 이미 반쯤 넋을 빼앗는 존재였다. 구멍가게에서는 보름달이니 삼립크림빵이니 하는 공장 빵을 팔았다. 노을이라는 이름의 기다란 빵은 양이 많아서 인.. 더보기
그릇도 맛을 낸다 옛 그릇을 보고 사서 쓰는 게 취미다. 福(복)자가 새겨진 밥주발이나 국그릇, 막걸리 잔이다. 내 손에 들어온 낡은 그릇에는 이력서가 없다. 누가 이걸로 밥을 먹었을까, 쌀은 제대로 넣어서 지은 밥일까, 이 작은 종지에 넣은 건 무슨 반찬이었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처연해지기도 한다. 주인 잃은 그릇, 대개는 버림받아서 결국 내 수중에 온 셈일 테니까. 거기에 옛사람들의 궁핍했을 삶까지 겹쳐서 마음이 짠해진다. 이런 그릇 구하기는 몇 해 전까지는 상당히 쉬웠다. 한번은 전주 한옥마을 근처의 골동가게에서 그릇을 골랐더니, “그냥 한 박스 가져가. 막걸리값이나 주고” 이러신 적도 있다. 요즘은 제법 멋을 낸 그릇들(더러 금박을 두른 대접도 있다)은 몇 만원도 나간다. 울퉁불퉁하고 색깔도 고르지 않.. 더보기
소주 5000원 시대 소주 값도 오른다고 기사가 나오고 있다. ‘서민 경제’라는 말에 꼭 붙는다. 한 병에 5000원 시대가 열렸다. 강남 일부이지만 4000원도 그렇게 시작해서 서울의 대세가 됐다. 알코올 함량은 떨어지는데 소주 값은 오른다. 원가 상승에 빈병 보증금 인상 때문이라고 한다. 시민들은 담배처럼 소주 값에까지 세금을 올리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우리가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세율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고급 위스키나 맥주와 같은 72%다. 교육세도 추가로 30% 붙는다. ‘서민의 술’이라고 하는 희석식 소주의 세율도 이미 최고점 수준이다. 병당 500원이 넘는 세금이 붙는다. 물론 담배보다는 한참 낮다. 예전에 농촌활동을 갔는데 대접한다고 나온 술이 소주였다. 막걸리보.. 더보기
겨울요리 겨울 칼바람이 불면 늘 사십 년 전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얼마나 추웠던지 손발과 볼에 동상이 걸리는 아이들이 숱했다. 싸구려 화섬이나 거친 모직으로 만든 외투가 고작이었고, 오리털 제품은 나오기 전이었다. 나왔더라도 서울 변두리 소년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그 추위에도 노점상이 있었다. 풀빵이나 군고구마 장수였다. 호떡은 대개 화교가 운영하는 어엿한 가게였다. ‘도라무깡’을 개조하거나 벽돌로 화덕을 만들고 빈 사과 궤짝을 부수어 불을 지폈다. 화덕구이 호떡이었다. 어쩌다 이걸 하나 사먹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 했다. 가게에선 연탄아궁이를 내놓고 호빵과 국빵을 쪘다. 국빵이란 일종의 중국식 만두로 속이 들어 있지 않았다. 대신 같이 주는 걸쭉한 수프에 만두를 찍어 먹었다. 인기가 없어서.. 더보기
계란의 경고 AI. 공상과학영화 제목으로 오인하기 좋다. 아닌 게 아니라 AI, 즉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보도는 현실세계를 다루는 것 같지 않다. 2000만마리 살처분, 긴급 공수, 백신 확보 비상. 덕분에 국민은 국정농단 정치공부를 하는 와중에 산란계와 육계의 차이, 철새의 이동경로 분석학도 배우고 있다. 몇 해 전에도 AI와 관련한 칼럼을 이 지면에 썼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예상대로 방역선은 뚫리고 살처분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됐다. 그리고는 저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사실상 정부 대책의 전부다. 국민들은 AI 발생 뉴스를 들으면 체념한다. 끝까지 가겠군, 그렇게 생각한다. 엄청난 숫자의 닭을 살처분하고, 그 부족분을 수입하고 그러겠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반복되는 일에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계란.. 더보기
대통령의 혼밥 일본에 가서 우리가 놀라는 장면 중의 하나는 이른바 ‘혼밥족’이다. 거리의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이들이 흔하다. 아예 독서실 칸막이처럼 혼자 먹어도 부담 없게 준비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술집도 혼자서 마시는 게 유행(?)이다. 이런 이들이 서로 말을 트고 가볍게 친구를 맺는 ‘서서 마시는 집’도 있다. 개인용은 없고, 공동 탁자에서 마시면서 안주와 술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점심은 몰라도 저녁에는 혼자 식당에 가면 환영받기 힘들다. 혼자 오는 손님은 음식도 조금 시키겠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안되기 때문이다. 고깃집은 이런 현상이 심하다. 숯불을 피우자면 고기를 어지간히 먹어줘야 이른바 ‘불값’이 나오는데, 혼밥, 혼술족을 좋아할 리 없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 앞에 혼.. 더보기
김밥아짐들 지금 지구촌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은 이른바 세계화의 광풍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곳곳에서 모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그 예다. 세계 자본의 질서에 대한 분노가 응집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세계화의 진행과정에서 몸으로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매일 거리에 나와 시위했다. 그때 흥미로운 인물이 있었다. 밤 카트(Wam Kat)라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는 박사학위를 두 개나 가진 학자인데, 책상에서 논문을 쓰는 대신 거리의 데모대로 나섰다. 단순히 싸움을 치른 것이 아니라 밥을 했다. 맞다. 밥이다. 트럭에 재료를 싣고 시위 현장에 갔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빌려 채소를 손질하고 고기를 삶았다. 날씨가 추울 때는 주로 수프를 끓였다. 나눠 먹기 좋고 영양가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더보기
어묵의 일상 퇴근길, 속 헛헛한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게 포장마차다. 정식으로 밥상을 받기는 그렇고, 간단히 속을 달래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이런 것의 통계는 없겠지만 눈여겨보면 제일 인기 있는 건 떡볶이와 오뎅이다. 값이 싸고, 간단히 먹을 수 있어서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단연 오뎅이다. 오뎅은 ‘어묵꼬치’라고 고쳐 부른다. 오뎅은 어묵뿐만 아니라 달걀, 힘줄, 무, 곤약 같은 온갖 재료를 넣어 끓이는 일본 요리다. 반면 우리나라는 오뎅이라고 해도 99%는 어묵을 꿴 꼬치이므로 어묵꼬치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후루룩, 종이컵에 국물을 퍼서 마시고 어묵을 씹는다. 단돈 1000~2000원이면 허룩해진 속이 든든해진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가며 아직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낀다고나 할까. 옛날.. 더보기
선술집 예전, 동네 막걸리 파는 가게에 술심부름 가면 어른 서넛이 서 있었다. 무얼 하는가 보면, 턱밑 수염을 허옇게 물들이는 일이었다. 막걸리 술추렴이란 뜻이다. 따로 술청이 있는 집이 아니어서 그냥 서서들 마셨다. 안주를 제대로 먹는 것도 못 봤다. 주인네가 내주는 김치 쪼가리나 두부 같은 거였다고 기억한다. 이런 집을 흔히 실비집이니 선술집이라고 불렀다. 실비는 설이 여럿이나 실비(實費), 즉 싸게 낸다는 뜻이고 선술집 역시 ‘선’ 채로 마신다는 의미다. 유리창에 빨간 페인트로 실비집이라로 쓴 걸 보곤 했다. 임대료가 올라가고, ‘인건비’와 재료비가 올라가서인지 이제 이런 술집은 명맥을 잇기도 어렵다. 심지어 전국에 남아 있는 선술집을 찾는 탐방단이 있을 정도니까(나도 그중의 일원이다). 선술집은 원래 우.. 더보기
미슐랭이 빠트린 맛집 서울시 기준으로 식당 숫자가 약 12만개다. 인구가 1000만 조금 안되니 식당이 대략 83명당 하나다. 매일 83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다면 식당도 먹고살겠는데, 식당을 안 가거나 거의 가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 이 숫자가 더 절박해 보인다. 식당 숫자가 많은 건 이유가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굽고 삶는 기술만 있으면 -아예 자신없는 이들은 프랜차이즈가 해결해준다고 유혹한다- 식당을 연다. 그러고는 자신의 식당에는 적어도 하루 83명이야 오겠지, 하고 기대한다. 둘째, 실업 문제다. 40~50대에 직장에서 쫓겨나면 다수가 자영업으로 들어가게 마련인데, 식당이 제일 만만해 보인다. ‘레드오션’이라는 건 뒤집어보면 그만큼 시장 자체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또는 그 시장의 못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