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할머니 셰프님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 경성고 앞에 유명한 밥집이 있다. 둘 다 ‘할머니’라는 말이 들어가는 집이다. 생선구이를 기본으로 하고, 반찬 몇 가지를 더 낸다. 맛 좋고 소박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바쁜 점심시간을 피하면 느긋하게 한 상 받아 즐길 수 있다. 생선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요즘 물 좋은 고등어나 삼치가 자주 올라온다. 대개 두 가지 생선을 함께 담아낸다. 생선 양이 많아 이렇게 받아서 뭐가 남나 싶다. 생선을 굽는 건 공력이 필요한 일이고, 이런 반찬을 성실하게 만들어내는데 단돈 6000원은 참 미안한 값이다. 카드로 내면 주인 손에 쥐는 돈은 5000원 조금 넘으리라. 그 돈의 일부(아마도 원가 비율로 보면 2000원을 절대 넘을 수 없는)로 한 상 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걸 마술이라고.. 더보기
요리사와 허파 일종의 해프닝이겠지만, 전에 고등어 미세먼지 소동이 있었다. 고등어를 구울 때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가 나온다는 뉴스였다. 집 안의 미세먼지가 보통 50마이크로그램을 넘지 않는데, 이때는 1000을 초과하는 데이터가 나왔다. 포털의 댓글에 난리가 났다. 무서워서 생선도 못 굽겠다는 거였다. 고등어가 안 팔린다는 뉴스도 잇따랐다.요리사들은 이 소동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웃었을 것이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요, 이런. 생선구이집에서는 하루에 수백 마리는 좋이 구울 것이다. 고기는 또 어떤가. 삼겹살이나 등심구이집은 뿌연 연기가 식당을 가득 채운다. 연기 배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수많은 프라이드치킨집에서 배기시스템을 잘 갖춰놓고 일하고 있을까 싶다. (초)미세먼지의 별명은 ‘침묵의.. 더보기
을지로의 조촐한 술집들 서울 시내 지명은 오래전부터 불렀거나 식민지시대에 일제가 만들어 붙인 경우, 해방 후에 새로 붙인 이름이 뒤섞여 있다. 팔판동이나 운니동은 옛 이름이고, 을지로나 충무로는 일제 잔재를 걷어내며 새로 붙인 지명이다. 을지로는 한때 가장 강력한 도심이었다. 유명 기업의 본사가 많았고, 청계천을 따라 남쪽으로 공구상과 철공소, 인쇄소 같은 산업의 동력이 있었다. 그만큼 사람도 많이 모였으니 맛있는 집도 성가를 높였다. 유명짜하고 큰 식당뿐 아니라 좁고 미로 같은 골목 안에 작은 밥집들이 숨어 있었다. 기름밥 먹는 노동자들이 주 손님이었는데 나중에는 와이셔츠 부대들도 그 맛을 알고 찾아들었다. 입정동 일대, 을지로3가동 일대에 그런 집들이 많다. 특히 이 일대는 철공소 골목이 발달해서 아주 독특한 기운을 풍긴다.. 더보기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한때 이대 앞은 이 일대에서 제일 잘나가던 동네였다. 1980년대에는 이른바 홍대 앞 상권이라는 게 없다시피 했고, 연대와 이대 앞이 이 일대 상업지구를 양분하고 있었다. 연대 앞에 ‘고바우집’이나 ‘만미’ 같은 묵직한(?) 돼지고깃집이 많았다면, 이대 앞은 아기자기한 커피숍이나 분식집으로 유명했다. 물리 점수가 빵점이었던 나는 이대 앞 커피숍 ‘심포니’에서 ‘진공 원리로 추출되는’ 사이펀 커피를 마셔보고 충격에 빠졌다. 아랫물이 윗물로 흐르는 비상식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연대 앞 ‘독수리다방’의 ‘니맛도 내맛도 아닌 다방커피’에 비할 바냐, 이러고 그 커피를 마시러 다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붙인다면, ‘독수리다방’은 지금 매우 질 좋은 커피를 파는 멋진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더보기
불고기판의 원형 어렸을 때 우리집은 살림이 작아서 별 외식을 못했다. 입학·졸업식날에 남들처럼 짜장면 먹는 게 고작이었다. 아마도 탕수육은 시켰다 말았다 했던 것 같다. 비쌌으니까. 어머니가 간혹 냉면집을 데려가거나, 아버지가 돼지갈비를 먹여주신 날이 특별하게 생각이 날 정도다. 그런 중에도 종로에서 불고깃집을 간 것은 각별한 기억이다. 위생복을 입은 홀 직원들이 있고, 타일로 벽을 장식한 1960, 70년대식의 그런 불고깃집이었다. 나중에 그 집이 한일관이라는 걸 알았다. 종로의 터줏대감이었다. 화신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신신백화점과 명동에도 분점을 두었던 아주 큰 규모의 식당이었다. 불고기에 냉면. 그 집의 공식이었다. 강남으로 옮긴 지금도 이 음식을 먹으러 서울시민들이 간다. 한식 하면 불고기와 김치를 떠올린다. 불.. 더보기
GMO, 의심나면 기다려라 예전에 우리 동네에 월남전 참전군인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걸핏하면 술상을 엎고 난리를 부려서 심한 골칫덩이였다. 술집에 그가 나타나면, 다들 피했다. 주인은 어떻게든 달래서 얼른 내보내려고 비위를 맞추곤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술을 거의 못 마시게 됐고, 한동안 안 보이더니 소식이 들려왔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고통과 싸우고 있다. 고엽제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 그를 무너뜨릴지는 몰랐을 것이다. 일본의 패망, 한국전쟁 연간에 포로들이 받은 세례는 DDT였다. 옷을 모두 벗기고 뿌연 분말을 뿌려서 이 같은 해충을 ‘박멸’하는 것이 연합군의 중요한 방역사업이었다. 우리 위 연배들, 그러니까 나이 육십 무렵의 선배들은 초등학교에서 DDT 세례를 받았다. 우리 누이들도 학.. 더보기
찬바람 불면 새우 철마다 서해안에서는 해산물을 내고, 축제니 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봄에는 새조개, 꽃게와 주꾸미 따위로 판을 벌인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면 새우다. 서해안에서는 예전부터 대하가 잡혔다. 이름대로 큰 새우다. 큰 붓처럼 크고 묵직하다. 새우는 종이 많은데, 우리 바다에서도 다양하게 난다. 단새우와 꽃새우, 보리새우와 주로 젓갈이 되는 잔 새우도 많다. 대하는 자연산이다. 자연산의 요즘 운명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고기 씨가 말라가고, 서해안은 중국 배들의 남획 문제가 심각하다. 그간 우리가 많이 먹은 탓도 있다. 바닷속 사정을 잘 모르니, 일단 잡고봤다. 돈을 만들어야 어민도 먹고사니 신기술로 고기밭을 훑어왔다. 그렇지만 고기가 적어지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기후와 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말도 많다.. 더보기
지진 공포 우리와 별 상관없을 줄 알았던 지진이 현실이 됐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늘었다.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원전에 대한 안전이 화두에 올랐다. 시뮬레이션이 가동되었다. 경주 인근에 감당할 수 없는 지진이 오면 해운대에서 부산까지 초토화되는데 90분이라고도 한다. 그것으로 끝이겠는가. 원전이 무너졌다는 건, 그저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후 수십 년 이상 후유증을 앓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주 앞바다를 비롯한 동해는 원전이 늘 말썽이었다. 이미 부산 기장에서 해수 담수화 공급에 대한 반대가 거셌다. 시료 분석 결과 바닷물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는데, 어떻게 그 물을 먹겠느냐는 분노였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도 주민은 삶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하물며 원전이.. 더보기
‘하동관’ 한 메뉴, 여러 주문법 현존하는 오래된 식당 이름의 상당수는 주인이 지은 것이 아니다. 무허가로 장사하다가 세무서 등록을 하면서 급히 명명하는 것도 많았다. 전주집, 부산집, 수원집 같은 지역 이름을 쓰는 노포의 다수가 이 경우다. 손님이 지어주는 식당도 있었다. 골목집, 감나무집, 육교집, 춘자네, 둘째집 같은 이름이 그랬다. 가게가 자리한 지리적 특성이나 주인이나 주인 딸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가게 마당에 나무 한 그루쯤 자라고 있었을 테니 아주 효율적인 가게 구분법이 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보신탕집의 절대 강자는 ‘싸리나무집’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주인의 신체적 특징과 성격을 담아서 명명되기도 했다. 털보네, 욕쟁이할머니집, 딸부자집, 키다리집, 코주부네. 우리 외식사는 오랫동안 허름한 골목 바닥에 있다가 경제.. 더보기
도시락의 미래 곧 수능시험을 치를 딸아이를 위해 이른바 ‘수능도시락’이란 걸 샀다. 따뜻한 국통이 있고, 보온력이 좋은 제품이다. 수능날이 겨울이니 따스한 밥 먹고 시험 잘 치르라는 엄마들의 구매가 이어진다. 수능 전 모의고사일에 이미 이 도시락이 쓰인다. 엄마들도 예행연습을 하는 거다. 수능 치르는 당사자들처럼 고민하고 반찬 메뉴를 짠다. 미역국은 당연히 안되고, 무슨 국을 넣을까. 빨리 상하는 나물 같은 건 피해야지, 씹기 힘든 딱딱한 건 빼고 소화를 돕는 부드러운 음식을 넣자. 이렇게 이것저것 메뉴를 짠다. 예전에 국물 통은커녕 한겨울 차가운 도시락이 예사였다. 라면봉지에 말아넣은 김치통이 줄줄 새서 버스 안에서 곤욕을 치르던 생각도 난다. 계란말이처럼 공력 많이 들어간 건 아무나 싸오는 반찬이 아니었다. 콩자반.. 더보기
갈치 갈치가 풍년이라고 한다. 바다가 잔잔해서 조업일수가 늘었고 갈치 어장에 플랑크톤이 풍부해져 갈치 먹이가 되는 어종이 많아진 까닭이다. 요즘 시내에서 먹는 갈치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시인 출신이 대통령이었던 ‘세네갈’산(産)이다. ‘축구 말고 아는 거라곤/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는/ 세네갈,/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도 시 좀 읽으세요 했다가/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도 당하게 만들었던/ 세네갈’이라고 시인 김민정이 ‘갈치’를 보고 읊었던 시도 있다. 수입 갈치는 크되, 살점이 덜 달고 가시가 억세다. 지중해, 인도양 쪽에 이런 갈치가 있어서 수입되어 팔린다. 큰 갈치가 잘 안 잡히니 수입이 그 틈을 메운다. 모처럼 굵은 갈치가 좀 싸졌나보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값일 것이다.. 더보기
삼겹살, 연탄과 노동자 조지 오웰은 훌륭한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르포라이터였다. 에 대해 모르는 사람 중에는 이 르포를 바닷가 기행문 정도로 아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꼼꼼한 필치로 문자 그대로 ‘막장 인생’을 사는 영국 탄광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기록한다. 높이가 1.5m 내외인 갱도를 걷는 것도, 기는 것도 아닌 구부정한 자세로 직접 이동하면서 광원들의 고통을 체험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자세로 8㎞가 넘는 갱도를 걸어야 비로소 탄을 캐는 현장에 도달한다고 그는 고발한다. 왕복 16㎞, 이동시간은 아예 노동시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언제든 갱도가 무너질 위험에 처한 채, 냉방 시설도 없이 곤죽의 땀을 흘리면서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하는 광원들을 보여준다. 그런 힘든 노동을 하면서 먹는 음식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