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해 돼지국밥 돼지국밥이라면 다들 부산을 떠올리지만, 아직도 원조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경남이 먼저라는 말도 꽤 신빙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체로 우리 민중사는 기록을 잘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교한 고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긴, 순댓국과 순대조차도 우린 그 역사를 정확히 모르고 비어 있는 공간에 추측을 더하곤 한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게 고려를 지배했던 원나라와 남방유래설(제주도의 돼지 애호 역사에 연결지어)이다. 어찌 되었든 돼지국밥은 이제 슬슬 전국적 인기 메뉴로 들어갈 태세다. 홍어가 대구에 등장할 정도이고, 음식의 지역적 경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했던 송강호 주연의 영화에서 돼지국밥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다. 극중에서 구속 학생의 어머니가 .. 더보기
혼밥·혼술, 되돌리고 싶은 현실 일본에 가는 이들이 시내구경을 하면서 혀를 차는 때가 있다. 이른바 독서실 칸막이 식당이다. 혼자 밥 먹는 문화 때문이다. 혼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구조의 고깃집도 흔하다. 누구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밥 먹고 고기를 굽는다. 서서 마시는 문화가 많은 것도 ‘혼술’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서 있으면 상대보다 오직 마시고 먹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혼밥’과 혼술을 하기에 좋은 업태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디저트를 파는 카페에서 일인 탁자에 앉아 음료와 케이크를 먹는 광경은 스산할 정도다. 밥은 그렇다 쳐도 ‘대화’가 핵심인 카페에서 혼자서 즐기는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카페란 본디 같은 계급의 사회적 회합 장소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온 카페문화가 아시아에서 이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더보기
‘임종 음식’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는데,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은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른바 임종(臨終) 음식인가 보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사형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문할 수 있다. 거창한 음식은 별로 없고, 대부분 햄버거나 파이 같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다고 한다. 음식은 물리적으로는 영양소의 집합체이지만, 사람의 정신과 조응한다. 그래서 ‘솔 푸드’니 ‘컴포트 푸드’라는 말이 나온다. 사형수들의 그 메뉴는 아마도 그런 음식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한 냉면집 취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간혹 휠체어에 탄 노인들이 나타난다. 죽기 전에 냉면 한 그릇 드시겠다는 거다. 대부분 냉면을 남긴다. 의욕과 달리, 몸이 받.. 더보기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호루몬야키를 아십니까 오사카 JR 쓰루하시(鶴橋)역. 전차에서 내리면 이곳이 ‘불고기의 성지’임을 눈치챌 수 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복잡한 역전의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뿐만 아니다.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연기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자이니치(在日, ざいにち)라고 부르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세월이 묻어 있는 공간이다. 한 ‘구시니쿠’집을 들렀다. 숯불을 피워 고기와 내장을 굽느라 실내는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빼곡한 손님들과 담배연기까지 열기를 뿜어냈다. 재일동포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이런 고기구이집들은 오사카의 한 문화를 이룬다. 몇 가지 꼬치를 시킨다. 대창과 안창, 간과 염통 같은 소 내장이 주로 나온다. 놀랍게도 ‘우루데’라는 부위도 있다. 소의 성대 쪽, 그러니까 ‘울대’라고 부르는 부위를 구운.. 더보기
추운 겨울의 추억 아마 사십여년 전, 이즈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김치 광에 부지런히 드나들던 때가. 혹한이 절정에 달하고 반찬거리가 귀해지면 김치가 귀물이었다. 어머니는 그저 김치로 한겨울의 막막한 밥상을 보냈을 것이다. 하우스도 거의 없던 때라 푸성귀를 시장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저 어머니는 김치를 믿었다. 아래쪽 경상도에 갱시기죽이라고 부르는 김치죽은 자주 먹었다. 콩나물이 있으면 넣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멸치나 몇 마리 우려서 식은 밥으로 한 끼를 차렸다. 그 맵고 시큼하며 뜨거운 맛! 요즘처럼 김치냉장고로 익힘을 조절하는 시대에서는 결코 맛보기 어려운 시절의 맛! 하기야 누가 요즘 이런 죽을 좋아하기나 할는지. ‘숭태기’라고 부르던 배추 꽁지가 걸리면 나는 더 좋아했는데, 오래 씹으면 쌉쌀하고 진한 맛이 났기 .. 더보기
혀를 호강시키는 매생이국 예전에 전라도 출장을 가면 어떤 흥분에 들뜨게 마련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거짓말 좀 보태서 ‘홍어가 백반집 반찬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분식집에 가도 젓갈 세 개에 김치 세 종류가 기본이라고 했으니까. 하다못해 대학가 앞에서 파는 값싼 백반도 전라도는 다르다고 했다. 광주의 조선대 앞 골목에 늘어서 있던 백반집들은 여전한지 모르겠다. 한 집에서 매생이국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곱게 빗은 처녀 머릿결처럼 곱고, 입에 넣으면 올이 가늘게 풀려서 혀를 간질이던 묘한 질감이 희한하게 여겨졌다. 파랫국이나 김국은 몰라도 매생이라니. 그때 밥 퍼주던 ‘아짐’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매생이국은 김이 나지 않아 미운 사위 오면 주는 국이라며 멋모르고 숟가락을 푹 넣.. 더보기
주방 연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예전에 프랑스 요리사들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의 일이다. 주방이 주로 지하에 있었는데, 배기가스를 내보내는 것이 고작 굴뚝뿐이었으니까. 역풍이라도 불면 주방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굴뚝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대기 상태에 좌우되니까. 우리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검불,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때면서 살강으로 그 연기가 빠져나가길 기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방의 몇몇 식당에 가보니, 각종 고기를 배출 팬도 없는 주방에서 굽고 있었다. 그 연기를 ‘걸러내는’ 장치가 요리노동자의 폐였던 것이다. 주방은 산업보건의 악조건에 속한다. 한여름 배 만들고 쇠 만드는 중공업 현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주방도 만만치 않다. 여담인데, 조춘만씨라는 사진가가 있다. 중공업 현장에.. 더보기
이름만 돼지갈비 어릴 때 하굣길이 멀고도 길었지만 무엇보다 배가 고파 힘들었다. 마침 그 중간쯤 되는 골목에 돼지갈빗집이 몇 개 있어서 회가 동하게 했다. 이른 오후에도 갈비 굽는 사람들이 꽤 있어 뿌연 연기를 연방 길에 뿜어냈다. 그 시절에는 삼겹살보다 갈비였다. 주로 연탄을 때서 구웠다. 한번은 막 문을 연 갈빗집에서 대낮에 고기를 구워 먹고는 구토를 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열 개가 넘는 드럼통 탁자에 연탄을 막 피운 터라, 연탄가스가 가게 안에 가득 찼던 까닭이었다. 그런 해프닝도 있었지만 지금도 연탄불에 고기 굽는 가게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땀 좋게 불문을 열어두고 석쇠가 빨갛게 달아오르면, 간장 먹은 돼지갈비를 척척 올려 굽는 재미! 천하일미가 달리 없다. 돼지갈비 요리법은 세계적으로 다양한데, 한국식.. 더보기
바다에 대한 책임 예전에 본 충격적인 장면 하나. 깊은 밤에 마포 어딘가를 걷고 있는데 길가 하수구에 무언가를 부어서 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콜타르 같은 찐득한 액체였다. 바로 옆에는 닭튀김집이 있었다. 그가 황급히 사라졌고, 시민정신 없는 나는 구태여 물어볼 여지가 없었지만, 아마도 기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바보처럼 ‘저 기름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깨끗한 물의 양은 서울운동장을 채워도 모자랄 거야’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요새 폐유랄까, 쓰고난 식용유는 거둬가는 분들이 있어서 알뜰하게 처리된다. 거둬들인 기름이 쓸모가 있기 때문에 기름 거두는 일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분은 한 말에 얼마씩 돈도 주신다. 폐유를 처리해 주시는데 돈까지 주니 황송할 뿐이다. 재생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 더보기
‘사람맛’ 나는 종로 뒷골목 피맛골이 사라진 지 꽤 오래다. 거대하고 멋없는 건물이 그 자리에 들어섰고, 서울시민의 추억도 묻혔다. 언젠가 무지막지한 시장이 또 뽑혀서 뚝딱 가짜 피맛골을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음속의 피맛골은 끝난 것이다. 피맛골 끄트머리에 있는 육의전박물관은 유리판 아래 유물로 살아남았으나, 피맛골은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게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실 피맛골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밀린 전설의 단성사와 피카디리를 바라보는 건 중년 이상의 서울시민에게는 아련한 통증이다. 우미관은 또 어떻고. YMCA 뒤편의 학사주점들은 언젠가 닥칠 개발의 삽날을 어떻게 견디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갈비에 밀주 같은 막걸리를 마시던 ‘와사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데, 박제가 된 추억이라도 건지러 가는 이.. 더보기
굴과 소주 한잔 어김없이 철은 돌아온다. 우리는 시장의 음식으로 알아챈다. 굴이 흥성하구나, 눈 오는 밤 굴 회에 찬 소주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음식은 기억의 매개다. 냄새와 시각적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람을 순간 이동시켜버린다. 굴을 보니, 온갖 이미지가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달렸던 통영의 해안도로, 박신장(굴 까는 작업장)의 전쟁터 같은 노동, 무엇보다 천북굴이 생각난다. 버려진 양식굴이 스스로 새끼를 키우고 대를 이어 그 죽은 껍질이 하나의 거대한 인공섬을 이룬 천북굴의 독특한 모양 말이다. 대개는 천북의 천막 굴집에서 굴을 구워 먹지만, 그 녀석들의 상당수가 앞바다에 있는 그 인공섬이다. 굴이 하나의 ‘나라’를 이룬, 인간은 기어이 거기 가서 굴을 캐온다. 양식 굴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산이 된 운명의 굴밭.. 더보기
요리사와 예능 리모컨을 돌리면 요리사이고, 다시 돌려도 식당이라고 한다. 갑자기 왜 이렇게 우리가 요리에 지대한 국민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두고 요리의 시대라고들 한다.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모든 고상한 취미에 질려서 찾아낸 대중의 호사라고도 하고, 먹는 일의 귀중함을 뜻한다고도 한다. 취직도 안되고,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잘렸으니 어려운 고민하지 말고 집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음식이나 보면서 다 잊으라는 처방 같기도 하다. 유행인 것도 같고, 모종의 정치적 암시처럼도 여겨진다. 하루 세끼는 세상사의 모든 진리를 넘어서는 실체적 존재다. 높은 곳에 앉아 호령하는 권력자도 결국은 세끼의 엄중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고, 그 정언은 먹어야 살고, 먹는 일을 그만두게 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