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망해가는 청년창업 불황 중에도 이른바 홍대 연남동 상권은 성업하고 있다. 원래 장사가 잘 되던 곳으로 꼽히는 홍대앞 상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철길을 폐쇄하고 공원이 생기면서 권역이 넓어진 것이다. 나들이 손님과 청소년들이 몰리면서 이쪽에도 큰바람이 불었다. 자고 일어나면 권리금이 두 배씩 오르고, 임대료가 뛰었다. 골목 구석구석도 이런 바람을 업고 상권이 개발되고 있다. 몇 년 전에 아무개 인터넷 사이트에 등재되었던 홍대앞 상권의 먹거리 집들이 대략 500여 개였는데, 이제는 다섯 배 내지 여섯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열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상권이 커지고 있으니 모두 장사가 잘 되는 까닭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도 못하다. 나는 이곳을 가끔 돌아보면서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일었.. 더보기
포장마차 술집에서 완전 금연이 된 이후 애연가들의 묘책(?)이 생겼다. 하나는 편의점이다. 가게 밖에 놓인 파라솔에서 맥주 한 캔에 한 대 피워 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술과 담배란 찰떡궁합이다. 법이 바뀌어 피우고 싶을 때마다 밖에 나가 옹색하게 흡연하던 애연가들에게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져서 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찾아낸 게 포장마차다. 포장마차는 합법적인 가게가 아니다보니 흡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술 마시면서 한 대 피우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포장마차를 찾는 것이다. 언젠가 종로쪽을 걷는데, 곰장어 굽는 연기와 함께 자욱한 담배연기가 풍겼다. 아직도 포장마차거리가 남아 있었다. 특이한 건, 안주 그림과 함께 중국어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낭만을 찾는 중국.. 더보기
돼지 내장을 먹는 법 일본이 일찍이 고기를 제대로 먹게 된 건 1860년 이후 메이지유신을 통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서양 문물과 함께 그들의 식생활까지 본받게 된 것이다. 빵과 고기가 새로운 음식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내장과 뼈까지 먹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고기는 먹어도 부산물을 처리하는 건 외국인들이었다. 특히 돼지뼈는 중국인들이 얻어다가 짬뽕을 만들고, 소·돼지 내장은 일본 침략 전쟁이 끝난 이후 재일조선인들이 구이와 전골로 만들어 먹고 팔았다. 지난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가축 내장을 ‘호루몬’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버린 것’이라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 말이라고 한다. 간사이는 재일조선인의 최대 거주지다. 본디 조선의 요리재료였던 가축 내장은 일본에서 뒤늦게 꽃피웠다. 우리가 돼지갈비와 삼겹살, 소.. 더보기
목포의 정성 툭 하면 무슨 몇 대 요리니 하는 말이 시중에 유행이다. 방송과 인터넷에서 퍼뜨리는 모양이다. 수우미양가 뽑듯, 장원 차석 서열을 정해 딱 부러지게 순서를 정해버려야 제목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좀 모자란 식견으로 뽑아놓은 몇 대 요리가 고착화된다. 평양냉면도 그렇고 짬뽕도 그렇다. 기실 가보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기가 막힐 때도 많다. 뭐 재미로 그런다 치기에는 허망한 결말이 많다. 그 ‘몇 대’에 들지 못했으나 어디선가 맛있고 제대로 하는 집들이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지방도시나 외곽지역에 그런 집들이 왕왕 있다. 목포에도 그런 집들이 있다. 워낙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소위 블로거들의 발길도 거의 없고 홍보도 잘 안된다. 오히려 그 덕에 좋은 요리가 더 남아.. 더보기
커피 르네상스 커피의 르네상스다. 커피에 ‘부흥’이라니. 본디 흥했던 시절이 있었나. 그렇다. 맥스웰이 상징하는 가루 커피의 시대가 그 원형이 아닐까 한다. 어렸을 때(그러니까 1970년대 초·중반), 손님 대접이란 커피가 아니면 곤란했다. 금속 뚜껑을 열고, 그 당시 유행하던 꽃무늬 사기잔에 커피를 탔다. 인기 좋던 백설탕도 듬뿍 넣었다. 차 문화는 대중적이지 않았으므로, 커피는 최초의 음료 대접 문화의 시작이었다. ‘식사하셨느냐’고 묻고, 밥상을 차려내는 게 오랜 우리 민족의 생활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그 커피를 아주 고이 모셔두었다. 비싸고 귀했다. 미제 방물장수에게서 사는 제품이었다. 미국산은 지고한 선이었고, 최고를 의미했다. 미군부대에서 브로커들이 빼돌리는 첫 번째 물품이기도 했다.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 더보기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홍어와 목포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불편한 언사가 내게는 음식 이름이다. 홍어나 과메기 같은 것들 말이다. 먹는 건 죄가 없다고 했는데, 수준 낮은 정치적 공격과 저열한 편가르기에 음식이 동원된다. 김치녀, 된장남이라는 말도 나 역시 구역질이 난다. 그것이 그럴듯한 비평의 그늘에 숨어 이미지가 고착되는 건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의 베이글이 배척받은 역사가 떠오른다.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김치나 마늘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멸시는 이미 식민지배의 상처로 남아 있다. 오히려 당대에 일본인들이 더 즐기는 소 내장 요리(호루몬야키)는 오사카의 일본인들에 의해 더러운 자이니치에게 퍼부어진 모욕의 상징이었다. 시궁창에 버린 소 내장이나 주워먹는다는 ‘호루몬’이라는 말이 ‘버려진 것’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이.. 더보기
미국 식량 원조’의 추억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래된 소설을 읽는 재미가 바로 그것이다. 조해일의 옛 소설 을 읽었다. 주인공이 지게꾼에게 하숙짐을 들려 서울시내를 걸어가며 겪는 시간들이 나온다. 왕십리 ‘육합춘(六合春)’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을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놀랍게도 몇 해 전까지 실제로 영업하던 식당이다. 산둥 출신 화교 식당 이름은 ‘루’ ‘각’ ‘춘’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설의 무대인 1960~1970년대로 돌아가 옛 중국집에 들러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한때 번성하던 육합춘도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 간 것일까. 1970년대 후반 돌연 일본으로 떠나 종적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화제가 되었던 작가 손창섭의 소설도 내 손에 들렸다. 부산 피란 시절에 등단한 .. 더보기
‘그릇맛’ 오래전 그릇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취미라고 해서 모아서 완상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쓰는 거다. 음식과 그릇은 서로 어울려야 제맛이 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일본의 전설적인 미식가이자 도예가였던 기타오지 로산진은 “음식의 옷은 그릇이다”라고 얘기했다. 옷이 입는 이의 품위와 태도를 표현하듯이, 음식도 그렇다. 따뜻한 국밥 맛이 아무리 좋아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뚝배기에 담아서는 진짜 맛이 안 난다. 맛이란 물리, 생화학적인 결과이지만 심리적인 문제도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나는 사들인 옛 그릇에 국과 국수를 담아 먹는다. 실제 쓰는 그릇이니 개당 몇 만원에서 몇 천원 미만의 실용적인 대중 그릇들이다. 어느 여염집이나 술청에서 쓰였을 그런 모습이다. 투박하고 무늬도 정돈된 맛 없이 삐뚤빼뚤하다. 그런.. 더보기
달라져야 할 추석 추석이다. 진즉에 기혼 여성들은 온갖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것 같다. 한 여성에게 들어보니, 추석이 스트레스의 온상으로 바뀐 건 30대부터였다고 한다. 그 전에는 추석은 꽤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가 먹으면서 “너 언제 시집가니”로 시작해서 슬슬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추석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친척들이 모이는 차례에 빠졌다. 그러고는 결혼을 해서 그런 말은 더 듣지 않게 되었지만,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며느리로서 치르는 추석 준비는 ‘출산에 버금가는’ 스트레스를 안겨주더라는 것이다. 음식칼럼니스트 추석이면 TV 리모컨이나 붙들고 있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니나 아내가 받는 압박도 사실 모르는 게 아니다. 본디 제사며 차례라는 것은 어느 민족이나 대개 지내던 것이다. 희생(犧牲).. 더보기
붉은 등 ‘팔판정육점’ 최근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철물점, 지물포, 전파사, 전기상, 쌀가게, 사진관 등을 구경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과 마트에서 뭐든 살 수 있는 데다 임대료 상승도 이들의 폐업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주요 상권에서는 식당 등의 유흥업종에 밀려 자리를 지켜내기 힘겹다. 정육점도 그렇다. 빨간 등을 켜고 고기를 팔던 푸줏간의 기억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고기를 사러 가면, 우선 부위와 근량을 말해야 했다. 국거리냐, 구이용이냐 같은 것 말이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은 “기름은 빼고요”였다. 돼지고기의 태반이 비계이고, 쇠고기도 거의 그럴진대, 그걸 빼고 팔라니 정육점 아저씨가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어찌어찌 고기를 사들고 가면,.. 더보기
’반전의 맛’ 내장 이탈리아에 가서 놀란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대개 가축의 내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칠리아에는 ‘내장 햄버거’가 있다. 송아지의 염통, 간을 삶아서 빵에 끼워 먹는다. 멀쩡한(?) 고기는 어쩌고 내장으로 만들까. 알고 보면 아주 슬픈 음식이다. 시칠리아는 대지주와 외세의 발호가 심했다. 농민들은 수탈에 굶주렸다. 마피아가 탄생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소를 잡아 살코기는 부자들이 먹고, 내장은 버렸다. 그것을 주워서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내장 햄버거의 유래이다. 마치 미국 남부에서 닭의 살코기는 농장주의 몫이고, 서민들은 뼈와 부산물을 튀겨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과 비슷한 역사다. 로마에도 소 내장 요리가 있다. 양과 곱창을 볶아 먹는다. 지금은 로마가 자랑하는 별미가 되었지만 원래는 .. 더보기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제철이 무엇이야 나는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을 한다. 제철에 난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게 요리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철마다 어떤 재료가 좋은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러 해 그렇게 한 결과 제철 지도가 그려졌다. 수온과 알 수 없는 이유로 들쑥날쑥하지만 생선은 제철이 뚜렷한 편이다. 메뉴를 어떻게 짤지 고민하지 않아도, 시장에 나가보면 흐름을 꿰게 된다. 오징어가 안 잡힌다는 뉴스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시장은 철이 되니 좋은 오징어를 깐다. 삼치도 좋아질 것이고, 고등어도 기름이 올라 좌판에서 윤기를 뽐낼 것이다. 문제는 채소다. 명색이 이탈리아 식당인데 나는 거의 토마토를 다루지 않는다. 품종상의 한계도 있지만, 도대체 맛있는 것을 만나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유통에 문제가 있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