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여름 국수 한 냉면집에 갔다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놀랐다. 여름이구나, 차가운 음식의 계절이구나 했다. 국수 중에서도 여름에 먹는 계절음식이 있다. 먼저 오이냉국에 말아먹는 소면이다. 미역을 띄우고 식초로 양념해서 소면을 말아내면, 몇 그릇이고 먹었다. 집 밖에서 먹는 국수로는 냉면이 으뜸이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 어느 것을 고를까 햄릿에 가까운 고민을 하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평양쪽으로 기울어가다가 요즘엔 다시 함흥냉면의 재발견을 하고 있다. 그 원형이 어떠니 따질 것도 없이 한 그릇 하고 나오면 매운 기운에 땀을 흘리게 된다. 여름 음식으로 제몫을 하는 셈이다. 한창 손님이 몰려서 홀 지배인이 정신없이 마이크로 주방에 주문 넣는 소리를 듣는 것도 유서 깊은 함흥냉면집의 재미다. 평양냉면도 물론 .. 더보기
빙수 일전에 부산 어묵을 취재하러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항 어시장에서 영도에 있는 공장까지 어묵용 잡어를 실어나를 때 ‘뒤밀이꾼’이 있었다고 한다. 트럭이 귀해서 대개 리어카를 썼고, 이때 피란민 아이들이 뒤밀이로 나서 몇 푼 잔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혹한과 땡볕을 마다하지 않고 뒤를 밀어 동전을 벌던 소년들이 당시에는 흔했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도 그런 일이 꽤 있었다. 행상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다녔기 때문에, 때로 뒤밀이가 필요했다. 소년들이 그걸 감당하고, 푼돈을 얻어 썼다. 내게도 그런 찬스(?)가 가끔 왔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산더미처럼 고물을 실은 리어카 뒤를 밀었다. 리어카를 밀 때는 요령이 있는데, 힘을 아껴두었다가 바퀴가 슬슬 밀릴 때 ‘터보’처럼 밀어야 한다. .. 더보기
목포의 맛 요리사 후배들과 정기적으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음식 재료와 맛을 탐구한다는 명목이고, 실은 술추렴이다. 고속열차 개통기념(?)으로 목포까지 몸을 실었다. 유달산에 올라 시내를 조감한다. 이난영의 노래에 나오는 삼학도가 빤히 보인다. 멀리 섬을 돌고 돌아 일제의 공출선이 ‘내지’로 향했을 것이다. 근처 산기슭에 있는 근대박물관을 들르면, 개항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전라도식 인심을 보여주는 떡 벌어진 한상차림의 백반으로 여행자의 허기를 달랜다. 낙지초회에 아삭한 조기찌개가 끓고, 갖은 찬과 젓갈이 그득하다. 목포는 민물(영산강)이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또 복잡한 해안선은 다양한 바다 생물의 은거지가 되어 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밥집에는 묵향 서린 그.. 더보기
요리사 전성시대의 그림자 최근 어떤 조사 결과를 보니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20년 가까이 되는 회사가 꽤 있다. 월급 많고 속칭 ‘편안한’ 직장들이다. 요리사는 어떨까. 실제로는 요리사로 일하나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일당직 여성 요리사들이 많아 정확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근속연수를 3년 미만으로 보고 있다. 끈기가 부족해서 그럴까. 천만의 말씀. 창업한 식당의 생존기간이 대개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니고 싶어도 직장이 없어져 창졸간에 실업자가 되고 만다. 요리사는 숫자로 국내 5대 직업군에 든다. 그러나 평균 급여는 바닥이다. 노동시간은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길고, 신분 보장도 잘 안된다. 경기를 가장 많이 타서 늘 신분의 위협을 느낀다. 경기가 나쁘다고 휴대폰을 끊지는 않지만, 외식은 바로 줄이지 않는가... 더보기
인천의 맛 인천에 별 연고도 없지만, 애정을 갖고 종종 찾는다. 이유가 몇 있다. 첫째, 사라져버린 ‘서울’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경제성장의 세례를 받아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인천의 구시가지는 개발의 광풍에서 비켜나는 바람에 오히려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소화(昭和)시대 초반기,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심지어 적산가옥을 그대로 쓰고 있는 싸리재라는 유명한 커피숍이 있다. 이 집의 천장을 보면 상량을 한 날짜에 ‘소화’라는 글씨가 적혀 있기도 하다(참고로, 아주 맛있는 커피와 기막힌 음악을 튼다). 1960~1970년대 건축기법인 ‘타일’을 외벽에 붙인 집들이 여전히 많고, 길을 걷노라면 낡은 철대문과 작은 마당, 장독대를 가진 그 시절 주택도 많이 .. 더보기
그리운 막국수의 ‘품격’ 강원도 오갈 때 1단 기어로 힘겹게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운전자가 아니어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 가파른 내리막길도 많았다. 터널이 뚫리고 길이 좋아졌다. 금세 오가는지라 옛날부터 찾던 재미가 하나 줄었다. 차도 사람도 지칠 무렵 산간에서 뭔가를 먹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막국수는 단연 일품이었다. 강원도 막국수는 유래가 있는 음식이다. 관서지방의 메밀국수가 평양과 서울로 이어지면서 ‘냉면’이라는 이름을 얻는 동안, 조용히 산간과 해안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도시의 냉면 다수가 본래의 슴슴하고 구수하며 소박한 맛을 잃고 온갖 복잡한 꼼수들의 공세를 받을 때 조용히 메밀향을 뿜고 있을 뿐이었다. 여러 연구자들에 의하면, 강원도 막국수도 계통이 있다고 한다. 영동과 영서로 나뉘고, 다시 춘천은 그 고.. 더보기
들판에도 봄·봄·봄 들에 가본 지 언제인지 기억도 없던 차에 모처럼 나선 길이다. 멀리 하동 땅이다. 고속도로가 뚫려 대여섯 시간 걸리던 길이 훨씬 짧아졌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섬진강은 봄답지 않게 수량이 좋고 넉넉하게 흐른다. 들은 여유롭고 살져 있다. 산도 거친 겨울을 벗고 푸른 옷으로 막 갈아입는다. 그늘도 있다. 벚꽃이 비바람에 떨어져 제 풍취를 일찍 잃었다. 지역 사람들은 만만치 않은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한숨이다.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선한 바람 불고,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햇살이 봄을 알린다. 만물이 제각기 다투어 힘을 낸다. 종 번식의 임무를 띤 당대의 싹들이다. 지리산 언저리 산으로 오른다. 고사리가 이미 지천으로 어린 옹주먹을 매달고 불쑥 솟아 있다. 취와 쑥이 보인다. 어린 쑥의 향을 생각하니, 어.. 더보기
살코기보다 간 음식을 먹으러 갈 때 정작 주요리보다 ‘곁들이’가 더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다. 그저 그런 칼국수집이 인기가 있어 가보니 맛있는 김치 덕이라거나 스파게티보다 피클이 좋은 집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순대보다 간이다. “아줌마, 간에다가 순대를 곁들여주면 안될까요?”하고 물은 적도 있다. 간은 동물의 영양이 응축된 장기다. 생물시간에 배운 대로, 먹은 음식물의 영양이 간에 쌓인다. 물론 독성도 간에서 해독한다. 그래서 ‘간 때문이야’라고 차두리가 외쳤던 거다. 간은 갓 익히면 부드럽고, 식으면 딱딱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고춧가루 소금에 간을 찍어 그 고소한 맛을 음미하노라면, 내가 육식동물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소 간은 천엽과 함께 술안주로 배웠다. 익혀 먹어야 한다는 경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생으로 .. 더보기
직장인의 점심시간 원래 직장생활을 하던 내가 요리사가 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식당들의 불친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점심시간은 북새통이었다. 대부분 직장의 점심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맛이 마음에 들면 서비스가 나빴고 서비스가 좋으면 맛이 별로였다. 나는 맛보다 서비스를 더 따졌다. 거창한 서비스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싶다는 거였다. 밥그릇을 던지지 않는 집, 합석할 때 양해를 구하는 집, 반찬 재활용 안 하는 집,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사를 하는 집…. 유명한 콩국수집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장사진을 이뤘다. 그것까지는 관계없는데, 꼭 이런 식이었다. “이리 오세요, 여기 다 드셨네요.” 아직 한창 식사 중인 테이블에 새로운 손님을 끌어대.. 더보기
옥수수 왕국 동네 사거리에 은행이 있고, 늘 나와 있는 포장마차가 있다. 한결같이 옥수수만 판다. 고소하고 맛있다. 어쩌다가 춥거나 비가 오면 아주머니가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면 옥수수가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주색 반점이 박힌 얼룩이도 좋고, 노랗고 차진 놈도 좋다. 옥수수를 다 먹고나서 잇새에 낀 옥수수씨가 튀어나오면 더 고소한 맛이 난다. 어렸을 때 옥수수를 어지간히 좋아했다. 배고픈 시절이니 뭘 가릴 형편이 아니었지만 삶아서 연탄불 아궁이에 구운 것이 어찌나 맛있던지. 그마저도 넉넉히 먹을 수는 없었다. 옥수수는 감자와 함께 우리 민족이 구황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일하는 식당에서 소 곱창을 요리해서 판다. 손질을 하다가 간혹 이상한 경우를 보게 된다. 분홍색의 연한 반투명 곱창에서 뭔가 울퉁불퉁한 이.. 더보기
김장김치 처리법 예전에 늦봄이면 엄마는 만두를 빚었다. 추운 이북에서는 김장김치를 덜어내어 만두를 빚어 삶은 후 처마에 매달아 얼렸다고 한다. 겨우내 맛있는 만두를 늘 먹을 수 있었겠다. 이남에서는 그렇게 할 수는 없었는지, 김치가 시어지면 비로소 만두 만들 요량을 했다. 먼저 양념을 좀 털어낸다. 만두 맛은 담백해야 하는데, 진한 양념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두부와 당면도 준비한다. 김치를 송송 썰고 비계 많은 돼지고기도 다져 넣는다. 특히 비계가 중요하다. 만두의 진한 맛은 비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부러 달라고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게 비계다. 예전에 정육점 심부름을 갈 때 엄마의 당부는 이랬다. “비계 없는 부위로 달라 그래라.” 그러면 나는 푸주한 아저씨가 비계를 제대로 잘라내는지 눈을 부릅뜨고(.. 더보기
순대 틈에 소시지 한 줄 현대에서는 거의 사라져가지만, 유럽의 겨울은 ‘돼지 김장’하는 계절이었다. 농한기에 돼지를 잡아서 겨우내 먹을 양식을 만들었다. 유럽 주택의 지하에 소시지가 주렁주렁 걸리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다. 돼지는 농사짓는 지역에서 원래 자라났다. 인간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지라, 그 부스러기가 생겨야 기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돼지는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닭처럼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지 않았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어쨌든 유럽은 농사를 많이 지었고, 돼지 먹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기른 돼지는 넉넉한 식량이 되었다. 구워 먹기 좋은 살코기는 그대로 요리하고, 주로 ‘비인기 부위’와 내장을 ‘김장’ 재료로 삼았다. 직접 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소시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순댓국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