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왕이 없는 세상의 ‘왕’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흥미로운 동화이다. 왕이 벌거벗은 채 자신의 왕국 한가운데를 행진한다. 나쁜 사람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고, 착한 사람에게는 보인다지만 옷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왕 자신의 눈에도 옷은 비치지 않는다. 다만 한 아이만이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다. “임금님은 벌거숭이.” 그제야 진실은 파열음을 내며 세상에 터져 나온다. 왕이 왕일 수 있었던 행진이 무너지고, 그의 백성이 그를 우러르지 않으며, 벌거벗은 남자가 왕일 수 있었던 그 보이지 않는 권위의 커튼이 열어 젖혀진 것이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해 고고학적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벌거벗음과 가장 멋진 옷 사이에 일종의 관료제가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더보기
절망한 낙관론자들의 연대 2015년 ‘멍크 디베이트’의 주제는 인류 공동체의 앞날이었다. 즉, 인류는 더 진보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미래가 암담할 것이냐를 두고 토론한 것이다. 법인세를 올릴까 내릴까 혹은 연말 정산에 카드 사용분을 넣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와 같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류, 미래와 같은 큰 문제를 토론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듯 크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것을 ‘빅퀘스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기엔 인류의 역사를 발생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바탕으로 미래까지 점쳐보려는 큰 그림이 깔려 있다. 이렇게 큰 역사, 큰 질문들을 하게 되면 하루하루의 삶과 매일 뉴스에서 다루는 정치 기사들이 매우 하릴없이 작은 것처럼 여겨진다. 사소한 것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진보의 방향성을 주장하는 쪽은 대개.. 더보기
시간과 기억 시간은 흐른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도 바로 과거가 되어 버린다.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과거가 다 자랑스러운 것들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어떤 과거는 치욕적이며, 치명적이기도 해서 돌이키고 싶지 않다. 아니, 아예 송두리째 바꾸었으면 한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일방향적으로, 일회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붙잡아 불가능한 시간의 역전이나 반복을 시도한다. 플래시백이나 슬로모션과 같은 것들이 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희망을 반영한 것들일 테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영화적 욕망을 잘 드러내는 장르가 바로 시간여행 영화이다. 김윤석, 변요한 주연의 는 그런 점에서, 바꾸고 싶은 과거에 대한 욕망이 시간여행으로 드러난 전형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수현.. 더보기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울었다. 2016년 12월 둘째 주에 개봉하는 두 영화, 와 를 보고 말이다. 두 영화가 비슷할까? 아니, 사실 두 영화는 전혀 다르다. 국적이나 배우, 장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는 포기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영화다. 반면 는 포기해도 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전자를 두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두고 낭만 혹은 꿈이라 칭한다. 말하자면, 두 작품은 인간이 지닌 존엄의 스펙트럼 그 끝과 끝에 대한 이야기다. 켄 로치 감독의 에는 매우 평범한 59세 남자 다니엘 블레이크가 등장한다. 그는 지금 질병수당을 신청 중이다. 얼마 전 일을 하다 심장 문제로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재발을 우려.. 더보기
상투적 위안에 기대는 삶 를 쓴 벤 싱어는 멜로드라마를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전폭적으로 얻었던 영화 장르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방식, 즉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가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서 헤어지는 로맨스의 하위 장르로만 생각하진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벤 싱어가 생각한 멜로드라마의 대중성은 이를 테면 소박한 대중의 소망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듯싶다. “가혹하고 예측 불가능한 근대 자본주의적 삶에 놓인 개인의 무능력함을 극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고차원적인 도덕적 힘이 여전히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 정의로운 손으로 세계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대중 영화에서 바라는 위안이란 이런 소박한 정의의 실현 아닐까? 현실에서는 자본이나 물질이 높.. 더보기
두 번째 삶, 선택 살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다. 작든, 크든 인생은 이런저런 실패들 위에 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실패는 삶의 방향 자체를 바꿔 놓는 경우가 있다. 지리멸렬했지만 평범했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화려했던 삶에서 환호가 사라지기도 한다. 여기 몇몇의 인물들이 지금 인생의 전환점을 노리고 있다. 실패 위에서 또 다른 삶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 (위 사진)의 원제는 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도’ 정도가 될 법한데,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바로 딱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 것 같은 절망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영화는 두 형제가 벌이는 은행 강도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은행 강도짓이라.. 더보기
그러므로, 눈을 더 부릅떠야 한다 오늘은 문학 이야기를 해보자. 보르헤스의 소설집 에는 미로로 내기를 하는 두 왕이 나온다. 하나는 바빌로니아의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아랍의 왕이다. 바빌로니아의 왕은 미로를 만들어 놓고 아랍의 왕을 가둔다. 아랍의 왕은 늦도록 모멸감 속에서 미로를 헤매다 겨우 나온다. 출구를 찾은 아랍의 왕은 이번엔 자신이 미로를 만들어 바빌로니아 왕을 가둔다. 그런데, 그가 만든 미로는 다름 아닌 아무 길도, 벽도, 지도도 없는, 모래뿐인 사막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바빌로니아 왕은 그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다 죽는다. 정말 두려운 미로는 아무 장벽이 없는 미로이다. 아랍의 왕은 “밀칠 문들도, 내달아야 할 하염없는 복도들도, 당신의 앞길을 막을 벽들도 없는 나의 미로”를 보여 준다. 반.. 더보기
상처의 공동체, 재난의 커뮤니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하 설리)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영화가 대단한 흥행을 기록하거나 화제를 몰고 올 리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영화는 애당초 그런 화제나 흥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듯 자못 의연하게 군다. 비록 영화의 소재가 2009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비행기 추락 사고였음에도 말이다. 는 대개의 상업영화들이 재난을 대하는 관습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사고가 나는 장면을 줌업하거나 반복하는 식의 영화적 기법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담백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사고를 거의 고스란히 재연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는 다른 말로, 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재난의 스펙터클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관객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보기
두 개의 밀실, 두 번의 밤 ‘밀실(密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한 비밀스러운 방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 두 번의 밀실, 두 개의 밤이 등장한다. 하나는 의 밀실이다. 상해의 임시정부에 머무는, 도망자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이 밀실에서 조선총독부 경부 이정출(송강호)을 만난다. 밀실을 가득 채운 된장찌개 냄새는 일본어를 쓰고, 일본 제국 경찰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조선인 이정출의 생래적 미각을 자극한다. 말보다 훨씬 더 강렬한 감각적 설득을 시도 중인 것이다. 비밀의 방은 비밀의 밤으로 이어져 정채산은 이정출과 함께 밤낚시를 가고, 밀실을 벗어난 밤은 확장된 비밀의 공간이 되어 준다.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밀실을 벗어나도 그곳은 비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비밀은 공간이 유지해주는 게 아.. 더보기
마음과 프로그래밍 “마음의 빚을 이용하자는 겁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것 아니겠소.” 영화 에 등장하는 의열단장 정채산은 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이용하자고 말한다. 정채산의 말은 영화 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은 마음에 대한 영화인 셈이다. 에서 발견되는 마음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흔들리는 마음이고 두 번째는 변하는 마음이며 마지막 하나는 사랑하는 마음이다. 은 이 중에서도 흔들리는 마음에 주목한다. 친일파가 됐다가 항일 운동지사를 돕다가, 왔다갔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이문에 따라 몸을 옮기는 봉급생활자로 규정한다. 봉급을 더 주는 사람에게 몸을 바치는 것, 사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상할 것도 없을 일이다. 두 번째 .. 더보기
손가락과 달 사이, 패배의 크레바스 언론 영화가 있다. 특정 하위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법 많은 예시를 들 수 있다.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이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는 가톨릭이 은닉해왔던 아동성추행을 끈질긴 추적으로 보도해낸 ‘보스턴글로브지’의 실화를 담고 있다. 워터게이트와 관련된 영화들이나 얼마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 상을 수상했던 최승호 PD의 도 언론 영화에 속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언론 영화들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언론인들의 승리를 다룬다. 의 방송국 보도 기자는 황우석을 진실의 심판대에 세웠고, 의 기자들은 말 그대로 성역의 진실을 캐낸다. 언론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승리의 훈장이자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승리는 이나 와 같은 가상의 언론사를 다룬 작품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더보기
왜 ‘재난’이 자꾸 먹히는 걸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것은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하고 지속시켜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이탈로 칼비노, 중) 또 재난이다. 올여름에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작품이 나왔는데, 또 재난 영화다. 13편의 천만 한국 영화 중 , , 세 편이 재난을 다루고 있다. 처럼 천만에 달하지 못한 작품들까지 더하자면 훨씬 더 비중이 높다. 왜 재난은 장사가 될까? 생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