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미로와 생존 윌리엄 골딩의 1954년 작 은 인간의 본성 깊숙한 모순을 드러낸 작품이다. 고립된 아이들은 이상적 해결보다는 엄포와 소문에 휩쓸린다. 나약해진 인간은 비열한 폭력으로 두려움을 모면하고자 한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지성인들에게 골딩의 은 곧 당시의 자화상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북미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 와 같은 베스트셀러들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10대라는 점도 흥미롭다. 독자층 역시 10대들이 대부분인데, 와 함께 유소년기를 보낸 10대들이 다음 읽을거리로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리즈처럼 이 소설들 역시 10대들에게 얻은 인기를 토대로 속속 영화화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소설 원작 영화들이 하나같이 생존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 더보기
1000만 흥행의 그림자 흥행은 사회적 사건이다. 어떤 작품들은 한 번의 리뷰로 부족할 때가 있다. 대개 첫 번째 글은 영화 자체를 분석하고, 두 번째 글은 흥행 요인에 대한 분석일 때가 많다. 세 번째 글은, 영화 그리고 흥행을 소비하는 사회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작품이 흥행을 하고, 그 흥행 자체가 뉴스가 되면, 그 범람하는 뉴스는 곧 사회의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은 ‘졸작’이라는 식의 일차적 20자평은 이미 진작 했어야 옳다. 영화 내부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사회적 맥락 속에 이미 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 8월10일 기준, 영화 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포털사이트는 온통 의 1000만 관객 돌파로 북적인다. 기사에 동원된 문구를 보면 이렇다. “신기록” “최단” “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 더보기
폭력과 서사의 주객전도 태초엔 삶이 있었다. 이야기보다, 그림보다, 노래보다 먼저 삶이 있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꾼은 눈뜰 때부터, 눈감을 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이야기하려 했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꾼은 가장 재밌는 부분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뺐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서사”라고 부르는 이야기하기의 방법은 인류가 우리의 삶을 이야기로 전달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나온 최적화된 모델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듣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원한다.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이야기도 있지만 볼거리도 있기에 어떤 볼거리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관람의 재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볼거리와 이야기의 황금비율, 어쩌면 이게 현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일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영.. 더보기
상상적 허구, 상품이 된 노년 노년은 어떤 시기일까? 최근 개봉한 몇 편의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노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 그리고 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나이 순으로 따진다면, 아직 교수직을 퇴직하지 않은 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가장 젊을 듯싶다. 그 다음은 65세 생일을 맞는 의 젭이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알란이 최고 연장자이다. 노인이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삶이 그려진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집을 오가던 그레고리우스는 난생처음 일탈을 감행한다. 다른 사람이 예매해 둔 표를 들고 수업 중에 돌연 리스본행 열차를 타고 떠났으니 말이다. 책 한 권의 비밀을 찾아 그레고리우스는 처음으로 서지학을 벗어나게 된다. 독재와 혁명의 흔적을 생생한 증언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학자로서의.. 더보기
상상력의 원천 상상력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는 듯싶다. 1990년대가 그랬다. 워쇼스키, 레오 카락스, 쿠엔틴 타란티노, 왕가위와 같은 감독들은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 상상력의 질감을 선보였다. 벨 에포크 시대도 그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우르는 이 시기에 새로운 상상력의 징후들이 솟구쳤다. 한국 문학사의 1990년대도 비슷했다. 김영하, 윤대녕, 백민석과 같은 작가들이 낯선 감수성과 스타일로 독자를 두드렸다. 새로운 것의 재충전, 낯섦이야말로 문화적 진보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5월 말,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바로 의 새로운 시리즈물 이다.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상영 패턴을 보자면 활주로가 연상된다. 에 이어 에 이르기까지 한 주를 간격으로 대작들이 연착륙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우.. 더보기
냉정한 리더와 공감의 지도자 의 흥행이 만만치 않다. 시사회 이후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에 비하면 의외다. 정조라는 소재, 현빈이라는 주연 배우가 무색할 정도의 혹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지적한 영화적 단점들이 오히려 흥행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늘어지는 스토리, 무게중심이 분산된 배역들, 지나치게 감정적인 인물들. 이런 평가들을 바탕으로 을 이야기하자면 은 지루하고, 산만하고, 감정과다인 작품이 된다. 하지만 단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거꾸로 말하면, 은 사소한 인물들까지 보듬는 공감형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영화 의 대중적 호응을 떠오르게 한다. 에 그려진 ‘광해’는 왕후의 웃음을 위해 노력하는 소박한 광대였다. 웃음으로 권력을 살 생각도 없었다. 다만, 아름다운 여인이 환하게 웃는 것, .. 더보기
독해진 영화가 그려내는 희망 나홍진 감독의 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독해졌다. 결말 때문이다. 힘겹게 살아나온 희생자를 감독은 사지로 돌려보냈다. 서스펜스를 설명하는 훌륭한 예시가 되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한다. 피해자 여성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동네 가게에 몸을 숨긴다. 마침, 훈방된 용의자 4885가 담배를 사기 위해 그곳에 들른다. 슈퍼마켓의 아주머니도, 방안에 숨어 있는 피해자도 모르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관객들은 알고 있지만 도리가 없다. 다만, 침묵의 목격자처럼 그 과정을 목도할 뿐이다. 그렇게, 관객은 무력해진다. 가 잔혹한 이유는 선한 목격자 역할을 맡은 관객에게 허용된 최소한의 판타지를 지워버렸다는 데 있다. 희생자가 구출되는 결말을 케케묵은 페이지라며 찢어버린 것이다.. 더보기
우아한 거짓말의 아픈 거울 단톡. 단체 카톡의 줄임말이다. 일본 아이치현의 도시 가리야에서는 저녁 9시 이후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된다. 휴대전화 사용 금지의 대상은 바로 어린이들이다. 단톡과 휴대전화라는 두 개의 명사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단체 카톡방에 초청하지 않기, 이것이 바로 요즘 아이들이 서로를 왕따시키는 방법이다. 스마트폰을 뺏어서라도 왕따를 줄이고 싶은 마음, 일본의 규제 법엔 어른들의 조바심이 묻어난다. “눈치채면 안되니까, 언니라고 부르자.” 왕따의 대상을 앞에 두고 나머지 아이들끼리 키득거린다. 눈치를 챈 아이가 성급히 주변을 둘러보지만, 영악한 주모자는 “언니, 언니 이야기야”라며 뻔한 거짓말을 한다. 순간 그곳은 작은 역할극의 무대가 된다. 주동자가 있고, 적극적 공모자가 있으며 이도 저도 편들지 않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