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먹방과 서사적 발효의 시간 ▲ “문화에 따라 다른 음식과 그 소비양식 결국은 사람 사이의 ‘관계’로 마무리 삶의 반영 아닌 ‘식욕 자극’인 우리 영화 요리가 철학으로 ‘발효’된 작품 나와야” TV를 켜면 여기저기 먹는 사람들이다. 먹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대세인 것이다. 물론 먹방이 방송의 주요 구성물이 된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퇴근 무렵 방송되는 저녁 방송에는 맛집 소개가 꼭 끼어 있다. 매일 소개되는 맛집이 각 채널당 두세 개를 넘다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맛집이 있구나 새삼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의 먹방은 이렇듯 조금 단순한 식당 소개를 넘어섰다. VJ가 카메라를 들고 식당에 가 맛있게 먹는 일반 시민을 찍던 방식에서 벗어나 유명인이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그 맛을 표현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등의 방.. 더보기
나의 템포에 따르라 ▲ ‘폭스캐처’ ‘위플래쉬’의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의 ‘갑’과 꼭 닮아 있다 땅콩회항·열정페이·미생 인턴… 그들 변덕에 맞춰 계속 춤출 것인가 이야기의 역사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대결은 무척 중요한 주제이다. 부패한 아버지, 무능한 아버지, 타락한 아버지와 자식의 대결, 그건 세대 갈등 혹은 세대 충돌과 닮아 있기도 하다. 많은 어머니 서사들이 ‘모성’이라는 환상을 풀어내는 것과 비교해보면 더 흥미롭다. 프로이트가 고안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서사는 부자 대결 서사의 가장 대표작이자 흥행작이기도 하다. 미국 영화사에서도 ‘아버지’는 무척 논쟁적인 소재이다. 1970년대 이나 같은 공포영화들의 등장은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귀여운 아이들이 악마에 씌여 어른들을 공포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 영화계의 분석은 젊은.. 더보기
실화와 허구 사이 ▲ 실화 소재 ‘강남 1970’ ‘쎄시봉’ 실존인물·공간 고스란히 쓰면서 ‘영화 속 사건은 허구’ 애써 강조 예술의 고유영역… ‘변명’ 왜 했나 새해 들어 기대되는 두 작품이 있다. 한 편은 이미 개봉해 대중에게 선보인 유하 감독의 이고 다른 한 편은 김현석 감독의 이다.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모두 과거로 영화적 시간대를 옮겼다. 게다가 모두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니, 실화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실재(實在)’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은 제3한강교,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본격화된 강남 땅값 열풍을 다루고 있다. 은 제목 그대로 1960년대 명동을 휘어잡던 대중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소재로 삼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약 40년 내지 50년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 서울에 실재했던 어떤 ‘.. 더보기
허삼관에 매혈기가 빠진 까닭은 위화의 소설 는 평등에 대한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게 왜 평등에 대한 이야기이지, 약간 의아해진다. 이해의 단서는 작가가 쓴 서문에 있다. 그는 하이네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이네 역시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임을 알았다”고 말이다. ‘세상에 유일한 평등은 죽음뿐이다’ 라는 위화의 세계관은 상당히 무겁고 냉소적이다. 살아생전 우리는 평등을 맛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위화가 했던 말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법의 잣대라는 것이 가장 먼저 평등에서 어긋나니 말이다. 결국, 살아생전 나쁜 짓만 한 놈이나 손해만 보고 산 사람이나 다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 말고는 평등한 게 없다. 세상이 불평등할수록 유일한 평등은.. 더보기
영화의 블랙홀 독일 탄광에서 생사를 넘나든 남편이 다시 베트남 전장에 가겠노라고 통고한다. 고모가 물려준 가게를 자신이 인수하고, 막내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서이다. 이제는 남편이자 아들,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기에, 이번만은 아내가 참지 않는다. 이젠 당신의 삶을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이젠 그런 희생을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냐고 소리친다. 그때, 남편이 대답한다. “이게 내 팔자란 말이다. 팔자.” 때마침,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개인사의 중요한 문제로 눈물 흘리고, 소리치던 부부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느끼며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 영화 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갖다 붙였다.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을 세워 두고 그것에 무조.. 더보기
여배우의 눈빛 ㆍ한국 영화 ‘남성·범죄물’에 편중 ㆍ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삶 반영 ㆍ주연상 화제 ‘한공주’의 천우희 ㆍ피하고 싶은 진실을 닮은 눈빛 ‘천우희’가 며칠째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수상이 놀랍다기보다는 천우희가 수상 시에 보여주었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화장이 다 지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는 울었다. 예상하지 못했다며 울었고, 작은 영화의 주인공에게 큰 상을 주다니 고맙다며 울었다. 그런 그녀의 눈물이 여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 천우희의 고백으로 다가왔다. 천우희가 화제가 된 건 그 진심이 통해서였을 것이다. 2014년 영화계를 돌이켜 보았을 때, 천우희 외에 누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했을까 싶다. 한편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무척 드물었다는 의미이다. 올 한 해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 더보기
두 아버지 성석제의 소설 은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난 김만수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세상을 등지고 두메산골 농부로서의 삶을 선택한 아버지,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뛰어난 형 덕분에 만수는 어린 시절부터 꼴머슴 차남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공부만 하던 형이 큰돈을 벌겠다며 나선 베트남전에서 주검으로 돌아오자 차남 만수는 실질적 가장이 된다. 서울 변두리로 이사와 성실함 하나만으로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잡지만 50줄을 넘어선 가장을 세상은 가만두지 않는다. 마포대교 위에서 그는 마침내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윤제균 감독의 의 주인공 덕수는 얼핏 보면 만수와 비슷해 보인다. 농담이지만, 이름조차 한 글자 차이 아닌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표본으로 만수가 선택되었다면, 유년기에 한국 전쟁을 겪었던, 이전 출생자들의 .. 더보기
관심병과 악의 진부함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은 악의 “진부함”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아렌트는 믿기 힘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의외로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로 여긴다고 말한다. 삶에서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 필요하다면 자신의 부모도 죽음으로 보냈을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악행에 도덕을 초월하는 이상을 부여한 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악행에는 늘 상투적이거나 관용적인 표현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영화 에 등장하는 ‘반공’도 그 상투어이다. 은 1965년과 66년 사이, 1년 동안 100만명의 사람을 희생시킨 인도네시아 군부의 민간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문제적인 것은 .. 더보기
사랑의 발명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문에 대한 현답을 얻기 위해, 다시 알랭 바디우의 을 읽어본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렇다. 사랑이란 공간, 시간, 세계가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극복해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영화 에서 종말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최종적이며 근원적인 해결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작품 는 지구의 종말 부근에서 시작된다. 아니 고쳐 말하자.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이다. 언제인지 명시되지 않은 미래, 인류는 고난에 처해 있다. 식량이 고갈되어가는 중이며 무시로 덮치는 먼지 태풍은 인류의 호흡과 식량 자원 모.. 더보기
자연주의 재고 “철학자들은 이념을 생산하고 시인은 시를, 성직자는 경전을, 교수는 개론서를 생산하듯이 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한다. 만일 우리가 마지막에 언급한 생산 부문과 사회 전체 사이의 연관성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편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형법을 생산하며, 이와 더불어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와 이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만들어 일반 시장에 필연적으로 내놓을 법학 개론을 생산한다. 게다가 범죄자는 경찰, 재판관, 사형집행인, 배심원 등을 생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에서 생산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보여준다. 사회를 구성하는 제반구조를 모두 생산으로 재구성한 그는 철학자를 이념생산자, 성직자는 경전생산자로 고쳐 부른다. .. 더보기
수사학이 불가능한 시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한 줄로 축약해보자면, 문화대혁명이 파괴한 한 가족의 정상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문화대혁명의 절정기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인 루옌스는 이미 15년째 수감 생활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아 있던 가족 엄마 펑안위와 딸 단단이 소환된다. 아버지 루옌스가 탈출했으니 혹시라도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반동분자를 은닉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엄포도 곁들인다. 마침내, 아버지가 어둠 속에 지붕을 타고 넘어 가까스로 문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미 집 주변은 감시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 남편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지만 아내는 두려움에 떨며 망설일 뿐이다. 때마침, 무용단 연습을 마친 딸아이도 귀가한다. 딸은 반동분자 아버지.. 더보기
감성의 공백 평론가로 일하다 보면 예언가나 분석가의 역할을 요구받곤 한다. 이 영화 몇만명이나 들까요라는 예언적 질문들은 대개 사석에서 이뤄지지만,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요와 같은 질문들은 공식적인 경우가 많다. 올여름 가장 많은 질문의 대상이 된 영화는 단연 이었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질문의 대상이 달라졌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에 대한 질문으로 말이다. 은 제목 그대로 인생 제2막을 다루는 작품이다. 소재는 음악이다. 뮤지션이 되기 위해 기회의 땅, 뉴욕으로 건너왔던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가 바닥을 치고 다시 비상한다는 게 영화의 대략적 줄거리이다. 줄거리만 보자면, 새로울 건 하나도 없다. 인생의 절정기를 거쳐 파국 직전에 이른 프로듀서가 끼어들지만 이조차도 진부하다. 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