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내 인생 마지막 편지](12) 강영숙 - 내가, 나에게 강영숙 | 소설가 편지라는 것은 그나마 기운이 좀 남아 있고 대상과의 거리 조절도 가능할 때 써두는 미래 지향적인 일이야. 실제로 온몸에 힘이 빠져,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과 사투(死鬪)를 벌이는 지경이 되면 편지는커녕 단 한 줄 일기도 못 쓰겠지. 내가 나에게 편지를 남기면서 ‘너’라는 2인칭을 쓰기로 했어. 2인칭은 성공하기 어려운 시점이라서 소설에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 어릴 때, 같이 놀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운동장 저쪽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축구공과 대면하고 있을 때 너는 죽는다는 일에 대해 생각했었어. 또 경춘선 기차를 타고 흰 눈에 갇힌 경춘가도의 풍경을 내다볼 때,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 죽으러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사실 너는 늘.. 더보기
핸드백으로 ‘햇빛 사냥’, 2012 스텔라 메카트니 신정민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스텔라 매카트니는 20세기 대중음악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그룹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중음악가’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한 아버지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뿐만 아니라 화가, 동물운동가, 지뢰반대 활동, 채식주의자, 음악교육가로도 유명하다. 이런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일까. 영국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한 그녀 또한 모피와 가죽을 쓰지 않는 디자이너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편안하면서도 모든 실루엣을 돋보이게 만드는 앙상블의 매력까지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은 사람들에게 늘 놀라움을 갖게 한다. 때문에 그녀는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뿐 아니라 떠오르는 스타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가.. 더보기
2012 가을패션, 셀린느 ‘미술과 건축의 옷맵시’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Céline)'의 2012~13 F/W 시즌 컬렉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비 필로 (Phoebe Philo)가 2년 마다 선보이던 파리패션위크 패션쇼까지 생략한 채 오로지 유명 스타일리스트, 패션잡지 에디터와 사업가들만 초청한 특별전시회를 통해 소개됐다. 피비 필로가 미술과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은 헐렁한 배기 형태를 비롯 경쾌한 세부장식을 디자인 요소로 하고 있다. 유행하는 색상 배합과 색조 구성에서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여기에 다양한 원단을 결합시켜 가을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특히 다채로운 색감의 가죽과 모피는 남성미가 느껴지는 코트 혹은 스웨터로 탈바꿈했으며 이번 컬렉션에서 두드러진 주름 바지는 옆면에 지퍼와 줄무늬를 더..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강은교 - J께 강은교 | 시인 J께 드디어 이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마지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길 위에 서서 무수한 것에 답을 요구하는 일도 이제 잠시 접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요.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아, 그러면 당신은 아가페니 에로스니, 니체니… 하고 나오겠지요? 그런 모든 것 그만둡시다. 그저 가장 단순명확한 답을 찾읍시다. 언젠가 오래전 어느 날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아직도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가끔 꺼내 생각하곤 하니까요. 마치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그때 택시를 탔습니다. 나이 지긋한 기사아저씨는 백미러를 보며 나에게 정중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는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10) 조재현 - 짜장면과 형 조재현 |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1970년대 초, 서울. 나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 동숭동에서 태어났고 그곳의 대부분은 판잣집이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샤워 문화’가 당시에는 극소수 상류층만의 특권이었던 시절, 대다수 서민들은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 번꼴로 대중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아니, 묵은 때를 밀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엄마 손을 잡고 여탕에 들어가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던 그 시절. 가끔 그곳에서 같은 반 여학생을 만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번은 한 독살스러운 여자아이가 그 사람 많은 대중탕에서 “저 남자아이 내보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우는 통에 나는 여탕을 졸업하게 되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목욕탕에 가는 걸 싫어했다. 퀴퀴한 냄..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9) 오지혜 - 이중현 선생님 오지혜 | 배우 이젠 장학관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래도 제겐 제 아이의 선생님이셨으니 그냥 영원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렵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신문사로부터 ‘만약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냐’는 질문과 함께 편지글을 요청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가족이었고, 이어서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부부에게 제 목숨보다 귀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해주신 분이니 가족 다음으로 감사를 드리기에 마땅한 분이시니까요. 아, 그렇죠. 실은 이 감사의 편지는 선생님이 항상 하신 말씀처럼 선생님 한 분이 아니라 학교의 기적을 만들어낸 아이 학교 선생님들 모두에게 드리는 편지라 해도 되겠네요. 아직 젊은데 생을 마치기 전 쓰는 편지를 쓰냐고요? 에이, 죽음이.. 더보기
H&M, 전통에 더한 세련되고 화려한 ‘현대의 맵시’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시선을 사로잡는 세련된 거리패션에 화려한 매혹의 맵시를 더한다면 스웨덴의 글로벌 SPA 브랜드 H&M의 2012 가을 컬렉션이 제격일 듯하다.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기능성을 살리면서도 세련미와 관능성이 담긴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드는 H&M의 이번 컬렉션은 맵시 연출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일상복 뿐 아니라 직장과 저녁 파티복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보다 고전스러운 느낌을 강조한 다른 브랜드와 달리 H&M은 전통의 몸매 윤곽선에 현대성의 세련됨을 가미했다. 특히 금속성의 장식미를 더한 뒤에 보다 화려한 느낌과 신선함을 줄 수 있도록 멋진 주얼리로 치장한 뾰족 펌프스와 장갑, 클러치백처럼 점에 이채롭다. 니트 카디건과 코트를 비롯해 펜슬 드레스, 짧은 스커트, 유.. 더보기
2012 가을패션, 오프닝 세리머니 ‘대자연의 품안에’ 배은지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친 남부 고원지대 파타고니아의 경이로운 대자연이 영감을 준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의 2012 가을 컬렉션은 어머니의 자연처럼 편안하면서도 발랄한 고급스러움을 선사한다. 대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프린트와 원단의 질감에 초점을 맞춘 듀오 디자이너 움베르토 레옹과 캐롤 림은 몸매 지향의 플리스(양털같이 부드러운 직물) 소재 드레스를 비롯 레이스를 넣은 스웨트셔츠, 프린트 바지와 부푼 코트를 탄생시켰다. 가을 유행에 빠지지 않는 짧은 반코트로서 카 코트는 밝은 코발트 가죽 재단으로 현대적인 멋을 더해 주고 있으며 정장에도 어울릴만한 스웨트 셔츠는 레이스와 플리스 소재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가죽과 트위드(간간이 다른 .. 더보기
2012 가을패션, 알렉산더 테레코브 ‘전통과 현대 사이’ 신정민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러시아 출신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테레코프(ALEXANDER TEREKHOV)'가 선사하는 2012~13 F/W 시즌 컬렉션은 불멸의 여배부 '그레이스 켈리'가 간직했던 고급스럽고 우아한 맵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대판 공주들'이 세련된 옷차림을 꾸밀 수 있도록 맵시 연출을 도와 주는 이번 라인은 아름답은 룩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야생과일과 수채화 프린트가 인상에 남는 드레스를 비롯 밝은 색감과 색조 구성은 장인의 솜씨를 담아낸 디자인으로 인해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드레스 뿐 아니라 재킷, 섬세한 디자인의 레이스, 가죽 마감된 코트는 코치넬리와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가방, 과감한 테를 가진 안경과 함께 현대성과 전통 사이에서 절묘한 대비감이 강조된다.. 더보기
2012 수영복, 베네통 ‘이국의 정취, 색채의 향연’ 배은지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아프리카의 민속성을 담아내면서 멋진 사파리 여행을 꿈꾸는 여름이라면 이탈리아의 패션명가 '베네통(Benetton)'의 2012 언더컬러스오브베네통(Undercolors of Benetton) 비치웨어 컬렉션에 눈길을 돌려보자. 색조 구성의 조화를 추구하며 색상과 프린트의 절묘한 섞어 맞춤은 여름철 유행을 따르며 화제의 중심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다. 색깔 뭉치와 줄무늬, 동물 프린트는 다채로운 이국적 분위기와 민속성을 담아내고 있는 것. 세련된 구릿빛 피부의 여인으로부터 발산하는 섬세하고도 멋진 맵시는 우선, 유행으로 너무 친숙한 색깔 뭉치의 조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색깔이 다채로운 비키니와 원피스 수영복은 평범하지만 대비감이 뚜렷한 색감 속에서 긴 끈으로 처리한 가두리..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8) 장석주 - 모란이 필 때 보았던 당신 장석주 | 시인 여름 초입인데, 햇볕은 벌써 빙초산같이 뜨겁습니다. 정수리를 꿰뚫듯 작열하는 땡볕 아래에서 존재 자체가 곧 녹아내릴 듯합니다. 서운산 산딸나무는 흰꽃을 피우고, 산벚나무 열매는 까맣게 익어갑니다. 오전 내내 감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던 유혈목이는 그늘진 수도가 시멘트 바닥에서 엎드려 쉬고 있습니다. 물통을 들고 나가다가 그의 휴식을 방해할까봐 돌아섭니다. 해가 울울창창한 밤나무숲 너머로 지고, 황혼이 새의 깃털처럼 떨어지겠지요. 날개 달린 것들은 공중에 떠서 날고, 더위에 지친 날개 없는 것들은 지상에서 고즈넉한 저녁을 맞습니다. 내 안에 있는 노동자도 문설주 아래로 내려오는 초록늑대거미를 바라보며 고요합니다. 이 저녁 당신은 멀리 있고 나는 박복한데 그 박복이 데면데면하기만 합니다. 이 불.. 더보기
[내 인생 마지막 편지](7) 조경란 - 남제주군 화순리의 어머니 조경란 | 소설가 어떤 분을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무람없이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낯가림도 심하고 제 모친의 말대로라면 사교성이나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제가 말이에요.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 달랑 주소만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제주공항에 도착해 화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 제 마음은 이미 몹시 지친 상태였을 겁니다. 누가 저를 밀어내서 간 것도 아닌데요. 화순 어머니. 돌아보니 그때가 십칠 년 전이네요. 1998년. 그 해, 저에게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을 하게 되었고 첫 연애까지 시작했던 해였습니다. 오랫동안 집에만 들어앉아 있던 저로서는 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