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미니픽션] 12월 31일 “이 노래가 오늘의 마지막 곡입니다. 굿 나잇, 앤 해피 뉴 이어.” 무대에서 연주를 하던 재즈밴드의 리더가 말했다. 소란스럽게 떠들던 사람들은 마지막 곡이란 말에 시선을 돌려 박수로 곡을 청했다. 나는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에 갔던 그녀가 돌아오고 있었다. * 그날 밤, 맨해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빌딩 꼭대기의 재즈 바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밴드의 경쾌한 음악과 사람들의 요란한 웃음, 그리고 마주 앉은 남녀 사이마다 흐르는 묘한 분위기가 유리로 둘러싸인 바에 앉은 이들의 체온을 얼마쯤씩 상승시키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나는 자꾸만 목이 탔다. 폐점시간은 이제 5분도 남지 않았다. 그 말은 2010년 역시 5분도 남지 않았다는 거였고, 말하자면 고백의 제한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 더보기
'쥐 식빵'과 빵의 측은한 현실 결국 ‘쥐 식빵’ 사건이 경쟁업체 주인의 자작극으로 판명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전략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의 빵에서 쥐가 나올 수 있다면, 내 빵에서도 쥐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소비자들은 생각하기 쉽다. 빵을 절대 잘 만든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먹지도 않지만 그 정도 규모의 프랜차이즈라면 쥐가 나올 정도로 위생관리가 안 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그게 궁금하다. 유탕처리한 과자 같은데서 벌레가 나오는 것과 빵에서 쥐가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생각해보지도 않고 행동에 옮겼다면 그 일을 꾸민 사람 또한 빵을 만들 줄은 알아도 빵에 대한 이해는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성탄절 전후의 케이크 판매는 저조했다고 들었다. 상표를 막론하고 제빵류, 또는 대량 생.. 더보기
[작가와 작업실] 정현 경기도 고양시 덕운동, 얕으막한 산자락 아래 위치한 조각가 정현의 작업실이다. 2007년 첫 방문 때와 달라진 점은 거의 없었다. 깔끔한 성격 때문인지, 연장은 연장들끼리, 작품은 작품들끼리 각자 자기 자리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다만 놀라웠던 것은, 그가 한창 작업중인 작품이었다. 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작업실 밖에 놓인 커다란 남자 인체조각이 눈에 들어와 '선생님도 대학시절엔 저런 작업을 하셨구나' 새삼 놀랐는데,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몇 해 전 나와 인상적인 인터뷰를 하고 얼마 후 돌아가신 모 컬렉터 선생님의 흉상이 있었던 것이다. '아, 아니 왜 여기에 이것이...?' 뜻밖의 광경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살아계신듯 생생한 .. 더보기
아무나 손 못 대는 문화유산(?), 아파트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건축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다. 너무 좋아서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까? 아니면 싫은데 별 선택이 없어서 그냥 살까? 어떤 생각을 할 여지는 있는 사실 그걸 잘 모르겠다. 별 다른 선택이 없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싫어도 별 다른 선택이 없으면 왜 싫은지에 대해 잘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때로는 열과 성을 다해 아파트를 미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몸에 배인 생활습관을 비난하는 듯한 기분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계의 분위기를 두루 꿰뚫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냥 .. 더보기
[and so on] 뉴욕 크리스마스 트리 콜렉션 뉴욕에 있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트리 모음! 우선 링컨센터 크리스마스 트리라면서 분수 사진을 먼저 올리는 이유는..... 이 자리에 원래 해마다 설치되는 큰 트리가 있었는데, 올해는 분수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작년까지 있던 트리는 요렇게 눈꽃송이처럼 하얀 전구 장식물을 단, 심플하지만 화려한 트리. 꽤 좋아하던 트리였는데, 사라져서 아쉽다. 이 트리가 사라지고 나서, 대신 올해는 메트 오페라 극장 입구 위에 트리가 설치되었다. (실제 크기는 꽤 큰데, 저렇게 입구 위 지붕에 얹어놓으니 너무 작아보인다.) 트리는 아니지만, 해마다 57가, 5번가에 걸리는 Baccarat UNICEF Snowflake (눈송이) 화려한 5번가의 밤거리 화려하기로 유명한 Bergdorf Goodman 백화점 쇼윈도 .. 더보기
통큰 치킨과 비뚤어진 치킨 사랑 치킨 때문에 장안이 떠들썩하다.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까지 한마디 하실 정도니, 이만하면 상황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치킨의 원가에서부터 유통, 기타 온갖 잡다한 문제들은 벌써 많은 매체에서 다뤘으므로 딱히 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까지 들먹이는 화제가 아닌가. 그러나 의외로,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음식으로서의 치킨에 대한 가치나 그에 얽힌 사항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은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맛’이 중심요소인데, 이 끝도 없는 치킨 논쟁에서 맛에 대한 부분은 쏙 빠져있다. 치킨을 사서는 껍데기만 뜯어 먹고 살은 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우.. 더보기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 카네기 홀에 관한 오래된 일화가 있다. (영문 wiki사전에 소개되어 있음). 어떤 사람이 57가 근처(카네기 홀 앞)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를 붙잡고 (그가 누군지를 몰라보고) "카네기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하고 물었단다. 하이페츠의 대답은.... "연습이죠! (Practice!)" 였다고... 이 일화로 인해, 카네기 홀 홈페이지의 도 이런 조크로 시작된다. "(혹자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카네기홀에 가기까지 일생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아래의 간단한 방법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While it takes some people a lifetime of practice to get to Carnegie Hall (as .. 더보기
[작가와 작업실] 홍수연 _ 미지의 공간에 대한 탐닉 자꾸만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 있다.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고 볼수록 한없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그런 그림 말이다. 홍수연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캔버스 속으로 조용히 흡수되는 것 같은,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홍수연을 알게된 건 대략 2002∼2003년이었던 듯하다. 뉴욕에 사는 한 친구가 "홍수연 씨 알지?" "홍수연 씨 있잖아…"라는 식으로 자꾸 말을 꺼내서 처음 이름을 들었고, 이미 알고 있는 작가라고 착각하기도 했다.(홍지연, 홍지윤, 홍주희 등 비슷한 이름의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함께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대개 미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주로 건강유지법 -_-;;) 다소 '아줌마스러운' 관계로 굳어.. 더보기
잠들지 못하는 도시와 빛 공해 아무 생각 없이 서울 시내에 나갔더니 온 시내가 반짝반짝했다. 원래도 휘황찬란한 도시지만,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느라 그 반짝거림이 한층 더 했다. 축제 분위기 같은 것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조명 장식들에 회의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아 그래, 뭐 전기는 결국 화석 연료를 태워 만드는 거니까 에너지 위기와 지구 온난화 따위를 숭고하게도 걱정하시느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조금 다른 문제이다. 환경디자인 인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Green Bulding Council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LEED'라고 일컫는다. 'Le.. 더보기
[Films on Musicians]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모습 <Das Reichsorchester (제국 관현악단)> 혹자는 음악은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어서 사회의 변화와 큰 상관없는 불가침의 예술 영역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 안에는 음악만의 내부의 논리가 있어서 함부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을 음악과 연관시키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다. 그럼 '음악가들의 삶' 또한 사회의 변화와 상관 없는, 사회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고유한 예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바로 나치 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담은 이다. 스페인계 독일인 영화감독인 엔리케 산체스 란쉬(Enrique Sánchez Lansch)는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과거와,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로 엮어 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클래식 음악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더보기
닭고기 하나로 따져보는 다양성의 부재 닭가슴살이 인기를 누린지도 꽤 오래 되었다. 따지고 보면 맛보다는 그 효능 때문이다. 사실 효능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거나 보다 좋은 몸매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나도 냉장고에 거의 언제나 닭가슴살을 모셔두고 가끔 먹는다. 그러나 딱히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닭가슴살 자체가 원래 딱히 맛있는 단백질이 아닌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닭은 흔히 ‘빈 캔바스(Blank Canvass)'라고 불리는데, 이는 돼지고기, 아니면 쇠고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닭고기 자체의 두드러지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념의 맛을 잘 받아들인다. 게다가 닭가슴살은 운동을 하지 않는 근육이라 운동을 하는 다리살에 비해서 더더욱 맛.. 더보기
[Music Story] 19세기판 <너의 결혼식>: 슈만과 말러의 가곡 12월의 문턱에 접어들고 보니, 나무에 걸린 단풍잎보다 길가에 깔린 낙엽이 더 많음이 느껴진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이런 시기에 음악이나 듣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지만...... 가을, 특히나 늦가을의 저녁은 음악과 함께 상념에 잠기기에 참 좋은 때다. 이 계절에는 후기 낭만 시대의 심포니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는 성악곡을 더 자주 찾게 된다. (늦가을에는 왠지 발라드가 더 듣고 싶어지게 되는 느낌과 비슷) 서양 가곡은 사실, 들을 때 가사의 의미가 확 마음에 와서 꽂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잘 못 알아듣는 음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가사를 들여다보면서,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볼 여유를 가져 본다면, 이 가곡들이 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