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부산국제영화제, 우리 운명처럼 만나자 10월6일 목요일 송일곤 감독의 을 개막작으로 부산국제영화가 시작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그 전날 비가 온 다음 부산은 맑은 후 흐림이라고 한다. 물론 해안가 날씨란 변덕스러워서 지금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가 처음 선을 보이는 해라서 날씨를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먼발치에서 본 ‘야외의 전당’은 물 위로 올라온 커다란 고래처럼 보였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이를테면 칸영화제에서 첫 회는 아침 8시반에 시작한다(부산영화제는 대부분 10시 혹은 11시에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모두들 일제히 새벽에 일어난다. 그런 다음 세수를 하고 극장 앞으로 달려.. 더보기
(1) 엄홍길 - 셰르파의 죽음 엄홍길 | 산악인 1986년 겨울, 히말라야에서 에베레스트와 맞서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 근육은 단단했고, 힘줄은 팽팽했다. 서울 도봉산 아래서 태어나 밥먹듯이 산에 오르며 자랐으니 산에서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등반기술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한국 최고라고 생각했다. 절벽처럼 버티고 서 있는 에베레스트 남서벽도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1985년 처음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가 한 번 실패했지만 두 번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정상 등정 없이 빈손으로 귀국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해외여행 자체가 특권이던 시절, 한 번 히말라야에 온다는 것은 집을 팔든가 아니면 전세방이라도 빼야 가능할 만큼 목돈이 들었다. 그 시절 산악인이라면 정상공격조가 아니라도 .. 더보기
북촌방향,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홍상수의 열두 번째 영화 을 보았다. 그냥 한마디로 이 영화는 괴상한 영화이다. 은 그의 네 번째 디지털 영화이자, 두 번째 흑백영화이다. 많은 사람은 홍상수의 영화가 매우 단순하고 단지 배우들의 역할이 바뀔 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나는 그걸 증명할 수 있다. 첫째, 열한 번째 영화 와 은 단지 서울을 무대로 겨울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영화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 둘째, 이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인지는 이 영화를 본 다음 줄거리를 써보면 안다. 그건 당신이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홍상수는 촬영이 시작된 다음 매일 아침 그날의 날씨를 느끼면서 시나리오를 쓴다. 즉흥연주로 이어지는 라이브 녹음을 악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무리하.. 더보기
진정성의 반격 ‘아리랑’ 우리는 지금 세계와 나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찾고 싶다는 상실감의 회복을 간절하게 시도하고 있다.나는 ‘아리랑’이 우리 시대에 진정성의 반격을 알리는 희생양이라고 한숨 쉬듯이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을 당황시킬 생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진정성이라는 말을 꺼내들 생각이다. 진정성이라고?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설마! 아마도 당신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 말이 유행이 지나갔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게다가 이 말은 정의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오늘날 예술에서 조롱거리이거나 이따금 상대방을 비웃을 때만 사용될 뿐이다. 진정성에 대한 냉소주의는 지식인들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잘난 체하는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만연되어 있다. ‘진짜’ 세계라는 따위는 없어요.. 더보기
[Films on Musicians] 반 고흐는 안 나오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포스터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영화가 있었다. 반 고흐의 명화 이 파리 세느강의 정경과 그 강가를 걷는 남자의 모습과 절묘하게 합성이 되어있는 포스터. 바로 라는 영화의 포스터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이 영화 .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들이 판치는 가운데,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조용히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우디 알렌 감독의 최신작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가 97년작 였는데,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뉴욕이란 곳을 정말 가보고 싶었단 것, 그리고 강가에서 골디혼과 우디 알렌 감독이 춤을 추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이 영화도 아마도 '파리'라는 도시에 엄청 가보고 싶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기.. 더보기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의 역사 만들기 무심코 응모했던 카네기홀 음악회 티켓 이벤트에서는 당첨이 되지 못한 대신, 카네기홀 투어 이벤트에 초대가 되었다. 보통,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투어도 10불에 상당하는 티켓을 구매해야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짜 투어를 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나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는데, 이건 그냥 투어가 아니라 VIP 투어란다. 이름하여 "카네기홀의 문서관리자(achivist) 지노 프란체스코니(Gino Francesconi)와 함께 하는 VIP 투어!" 음악회 시즌 중에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기는 한데, 내가 참석한 투어를 VIP 투어로 만들어준 건, 이 홀의 문서관리자인 프란체스코니가 가이드를 해준다는 점이었다. '문서관리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 더보기
[and so on] <나가수>에서 주목해야 할 커플 다시금 시작된 방송이 나간 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야기의 끝에는 꼭 '그래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등장한다. 청중평가단의 선호도 조사가 순위 결과로 발표되었지만, TV로 지켜본 시청자들이 저마다 마음 속에 꼽는 1위는 방송으로 공표된 순위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출연진 모두 1등이라고 할만큼 참 대단했지만, 굳이 나에게 조금 더 와닿았던 무대를 꼽으라면, 첫 주자로 나와 관중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공감을 끌어낸 이소라의 무대를 꼽고 싶다. 이전의 무대들을 볼때도, 마치 이소라씨가 오늘날의 예술가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무엇이 그런 느낌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해보니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의상이며, 헤어스타일을 보면 마치 모딜리아.. 더보기
[and so on]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들: 위트레흐트의 SPEELKLOK 박물관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란 도시에 다녀왔다. 네덜란드의 도시로는 암스테르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헨델의 곡 가운데 이라는 곡이 있었다. 찾아보니, 18세기 초, 유럽지역의 영토 분쟁을 마무리하는 평화협정이 1713년에 위트레흐트에서 맺어졌고, 이로 인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종결되어 헨델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이라고 한다. 위트레흐트의 유서깊은 건물들: 대학 건물 가운데 하나 (상), 위트레히트 돔 (하) (대학건물은 1600년대에 지은 건물이라고 하고, 돔의 역사는 중세시대로 거슬러가더군요.)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일 것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큰 도시가 아니고, 위트레히트 대학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 동네.. 더보기
[미니픽션] 핏자국 남자가 카페 문을 연다. 여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관심한 척 하고는 있지만 유리에 비친 그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남자는 안다. 그 역시 여자가 앉아있는 곳을 알고 있지만 카페 안을 여러 번 둘러보다가, 어느 순간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는 듯 가서 천천히 그녀 앞에 앉는다. “오래 기다렸어?” 여자는 반갑지만 웃지 않는다. 대신, “지금 몇 시야?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라고 쏘아붙인다. 남자는, “미안.” 이라고 짧게만 대답한다. 그리고는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다. “안되겠다.” 침묵을 깬 것은 여자다. 그녀의 표정에는 어떤 결연함이 깃들어 있다.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뭐?” “그만 두자고. 사람 말 못 알아들어? 헤어지잔 말야.”.. 더보기
[and so on] 모차르트와 김건모 천당에서 교향곡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전자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유명 작곡가들이었다. 슈베르트는 "미완성"을 썼기 때문에 참가할 자격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들이 심사위원이었는데, 마침 심사위원장이 "운명"의 신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이 우승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우스개지만, 사태에 빗대어, 예술가들을 줄세워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 가당키나 했던 것인지 묻는 것 같기도 하고 , 결론적으로 “천당도 지옥으로 만드는” 경쟁이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232052515&code=990201 천당에서의 교향곡 경연대회 이.. 더보기
[and so on] 과연 립스틱만 잘못 발랐을까 ,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이 음악을 배우는 것을 소재로 했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붐이 일면서,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궁시렁댈 수 있는 수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oo 프로 봤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출연자의 노래는 왜 좋았고, 누구는 뭐가 문제였고…’ 하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걸 보면, 이제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심사위원이자 평가단이고, 음악을 듣는 귀가 참 날카로와 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누누히 방송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시청자들도 모두 공감하듯, 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얼마나 훌륭한 가수들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 취향의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들의 능력을 순.. 더보기
[New York Music Guide] 뉴욕의 클래식 라디오 채널 1: WQXR 예전에 한 선배로부터 들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한 음대생이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자신은 일일히 연습하고 공부해서 수년간 '습득한' 클래식 레퍼토리가 그 곳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들도 흥얼거리는, 현지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음악이었다는 데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의 뿌리가 서양에 있으니 그럴 것이라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뉴욕에 살아보니, 아무리 서양에 살아도 서양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과 더 친숙할 것이라는 가정이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세계 어디서나,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클래식 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인 듯 하다. 클래식 음악회에 가 봐도 한 눈에 흰 머리 청중들이 객석의 과반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