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벽 답지 못한 벽 '벽’이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 또는 느낌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늘 접하고 사는 그, 물리적인 벽을 바로 생각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부정적인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사전을 찾아보자.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장애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넘사벽’이라는 유행어가 생각난다. 아니면 ‘관계가 교류의 단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냉전시대의 벽,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과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벽은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제나 붙어 다닌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한탄하는 노래 가사도 있듯, 벽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재질보다는 존재감 그 자체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벽이 갈라놓지 않으면 공간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학부시절 읽었.. 더보기
매운맛의 폭력 어느 식당에서 아주 맛있는 오이 소박이를 먹은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맛있는 김치-평범하게 무나 배추로 담근-을 먹는 것도 어려워졌지만, 오이소박이를 먹는 건 정말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오이들이 금방 물러버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담근지 며칠 만에 물러버리는 오이까지 살릴 수는 없다. 이때 먹은 오이김치는 구운 조개 관자와 함께 나온 것이었다. 잘 익은 김치의 상큼함이 역시 잘 구운 조개 관자의 “느끼함(사실 그다지 느끼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대부분 느끼하다고 생각한다)”을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둘의 궁합은 훌륭했으나, 김치 자체가 너무 매워 균형이 살짝 깨지는 것이 옥의 티였다. 식사를 마치고 셰프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더보기
도시와 시간의 흔적, 그리고 서울다움 (사진은 @cjreally님에게 제공받았다) 원래 다른 글을 쓰려던 참에, 누군가의 트윗을 보게 되었다. “세운상가 뒤가 가장 서울 같아서.” 밤의 세운상가 사진이었다. ‘폰카’로 찍은 다소 조악한 느낌의 사진이 오히려 어슴푸레한 청계천의 분위기를 더 그럴싸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강남은 강남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하면 강북이고 또 을지로나 청계천 쪽이 가장 서울답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와집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북촌이며 가회동을 꼽아야만 할 것이다(물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삼청동은 아예 언급도 하지 말자.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은 서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아니다. 서울토박이도 아닌 나에겐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가 바로 그.. 더보기
[미니픽션] 7초만 더 OFF 잘 타지 않는 Q라인을 탄 것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지난 이주일간 연락이 없던 그녀에게 어젯밤 텍스트가 온 것이다. See you tomorrow 6pm@Union Square 이모티콘 없는 짧은 문자는 갑작스러웠던 2주간의 공백만큼이나 낯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녀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었다.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2주였던 것일까.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승낙이든 거절이든, 나는 빨리 아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오후 5시, 유니온 스퀘어로 가는 노란색 Q라인을 기다린다. ON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들고 있던 아이팟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모드는 랜덤 플레이. PLAY 0:01 지하철에 들어서자 정면에 앉아있던 흑인 사내.. 더보기
"채식" 베이킹과 제과제빵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때 채식 베이킹이 아니거나, 그렇더라도 썩 건강한 건 아닐 확률도 만만치 않은 식빵) 채식 베이킹이 유행이라고 한다. 서점에서도 만만치 않은 종류의 관련 요리책을 찾아볼 수 있다. 건강이 화두다 보니 이제는 베이킹에도 ‘채식’을 붙이는 현실이다. 일종의 의무적인 관심-직업정신에 기댄-으로 채식 또는 자연식 베이킹을 표방하는 카페 또는 제과점의 빵을 먹어보았다. 또 비슷한 컨셉트를 가지고 두부로 만든다는 대기업의 도너츠 또한 먹어보았다. 또한 몇몇 인기를 얻고 있다는 관련 책들 또한 들여다보았다. 그를 바탕으로 채식 베이킹과 제과제빵에 얽힌 몇 가지 오해, 또는 잘못된 생각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1. 채식 베이킹에서 ‘베이킹’은 어떤 빵류를 대상으로 삼는가? 개인적으로는 베.. 더보기
[Concert Review] 작곡가 진은숙, 탈레아 앙상블 뉴욕 공연: Unsuk Chin Portrait Concert 작곡가 진은숙의 소규모 앙상블 작품들로만 구성된 연주회가 2월 16일 뉴욕 보헤미안 내셔널 홀에서 있었다. 진은숙은 현재 세계 무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곡가의 주요 활동무대가 유럽이어서인지, 미국에서는 그 이름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미국의 음악가들에게 "Unsuk Chin"을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 갸우뚱 하거나,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름만 들어봤다는 정도. 그러나, 이 분이 2004년 그라베마이어 수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음악을 들어본 후의 반응은 확실히 달라진다. 그녀가 유럽보다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유를 꼽는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미국이 그녀의 베이스캠프가 아니어서이기도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 더보기
아파트에 관한 두 권의 책 전세 대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 4월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그러므로 다른 집을 구해 나가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데,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해봐야 그저 구차할 뿐이다. 뉴스를 보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마저 미루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슬퍼질 수준이다. 물론, 나에게 미뤄야 할 결혼 같은 건 없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세라는 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알고 있다. 보통 월세를 낸다. 미국의 경우 집을 산다는 건 집값으로 장기 대출을 받는 돈의 일부를 초기 착수금 형식으로 자가 부담한 뒤, 나머지의 대출금과 이자를 기간 동안 갚는 형식이다. 원금을 갚는 경우는 자기 돈이 되지만, 이자만 갚는 경우라면 이 또한 월세나 다름이 없다.. 더보기
[오늘의 산책] 겨울방학용 블록버스터 전시 18일(화요일), 예술의전당에 다녀왔다. 운좋게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2.5.∼3.15)와 (한가람미술관, 11.5.∼3.6)의 초대권을 얻게 되어 지인과 점심 약속을 겸해 일찍 전시장을 찾았다. 연이은 강추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차분하게 전시를 보고 있었다. 7, 8년 전만 해도 이런 대형 미술전시가 하나만 열려도 “우와, 우리나라도 이런걸 다 가져올 수 있게 됐구나”하며 감격했는데, 이젠 조금 덤덤해졌다고나 할까. "뭐 볼 만한 작품은 겨우 한 두 점 가져와서 생색내고 있어" "왜 이리 촌스러워. 완전 시장바닥을 만들어놨군"하며 흉보기 일쑤다.(미안. 애쓴것 잘 알고 있어.^^;;) 아무튼 이제 이런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방학맞이용 블록버스터 영화만큼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더보기
[오늘의 산책] 소설가 박완서와 나목 22일(토요일) 저녁, 뉴욕에서 출장 온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마침 세일기간이라 백화점 주변 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다. 참고로 친구는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라는 곳에서 다양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www.koreasociety.org) 보통은 전시 준비 차 1년에 한번 정도 혼자 한국을 방문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른 직원과 함께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는 젊은 직원은 이번이 첫 한국방문이라고. 건축 학도답게 한옥을 보고싶어 해서 아쉬운 대로 한옥으로 된 식당에 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후 행선지는 인사동. 이젠 고궁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한옥 구경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더구나 인사동 역시 '전통문화의 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갖 종류의 짝퉁이 넘쳐나는.. 더보기
[New York Music Guide] 뉴욕 공연 예술의 중심 링컨 센터 (Lincoln Center) -1- 뉴욕에서 음악회를 보고 싶다면, 제일 먼저 체크해 봐야 할 장소가 바로 링컨 센터다. 사실 링컨 센터는 클래식 음악만을 위한 장소라기 보다,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아우르는 복합 공연 예술 컴플렉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건 뉴욕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가장 많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링컨 센터를 꼽아야 할 것 같다. 링컨 센터는 카네기홀에 비하면 그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5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 한 규모다. 카네기홀을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에 비한다면, 링컨 센터는 예술의 전당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다양한 공연 예술들을 위해 특화된 공연장들과 상주하고 있는 예술 관련 기구들의 성격이 예술의 전당과 많이 닮아 있다. 아.. 더보기
허울 좋은 '오너 셰프'의 허와 실 요즘 파인 다이닝 계의 유행은 이다. 그말 그대로, 해외 조리학교에서 조리 공부를 받고 와서 자기 레스토랑을 열어 꾸려가는 셰프들을 일컫는다. 왜 이러한 부류의 셰프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까? 오너 셰프(owner/chef)란 말 그대로 주방을 꾸려 나가는 셰프가 레스토랑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개념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오너 셰프의 출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부동산 가격만 해도 실로 엄청난 수준인데다가, 서양 요리를 위한 주방기기를 갖추는 건 규모가 아무리 작고 또 기본적인 것만 갖춘다고 해도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러한 투자를 다 했다고 쳐도, 단지 우리 음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적은 파인 다이.. 더보기
‘미디어 폴’의 존재 의미? 강남역 주변에 갈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미디어 폴’이라고 이름 붙은 저 기둥들의 존재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세운 사람의 입장에서야 그 나름대로 거창한 명분이 있겠지만, 잠재적 사용자 또는 수혜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감지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다. 그 존재 자체에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인지, 미디어 폴에 연동이 되는 홈페이지에는 친절한 소개 페이지가 있다. 궁금한 사람이라면 링크를 따라가서 직접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체를 인용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한 거리 정비와 함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