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건축 여행이라는 이름의 고행 즐거워야할 여행이 고행으로 바뀌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라는 일종의 강박관념, 또는 서글픔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같은 곳을 복수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것들을 기억, 또는 그 보조수단인 카메라에 담고자 걷기 위해 발을 디딘 길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도시며 거리, 건축물은 어디로 떠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떠날 뿐이지만 그 모든 서글픔이 거기에서 비롯된다. 지난 10년 동안 이런저런 여행을 다녔다. 일단 그 목록을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동/서부 종단, 주요 대도시(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시애틀, 샌디에고 등) 유럽: 영국(런던),.. 더보기
포장으로 보는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의 현실과 정체성 경기도 남부의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오는 고속버스를 많이 보게 된다. 버스가 버스인지라, 옆구리에 붙은 광고판들은 상당수 지방 또는 그 특산물의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이런 광고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유심히 볼 수도 없이 독창성이 딸리거나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없는 듯 영세한 느낌을 준다. 듣기로 지자체가 홍보를 통한 차별화, 또는 차별화된 홍보를 위해 고심한다던데 광고판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말 고심하는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마케팅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게 현실이데, 우리나라 농수산물 마케팅을 보면 판매를 통한 이득은 물론이거니와 상품의 존재 자체를 알리는 것조차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사진의 .. 더보기
디자인이라는 것의 현실과 이상, 그 사이의 괴리 “건축학 전공의 교육목표는 건축사 양성에 있다. 건축사는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법률적 자격을 지닌 사람이나 그 자격 자체를 의미한다. 건축사가 되기 위하여 학생들은 건축설계에 필요한 풍부한 지식(건축역사, 설계이론, 건축계획, 기술공학, 문화예술, 법률제도 등)과 다양한 경험(실무, 관리 등)을 습득해야 한다. 학생들은 최소 5년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는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는 건축사의 기본적 자격 요건이다. 본 전공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건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건축공부에 대한 현실적인 측면을 화제로 삼았는데, 이번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의 단계를 뛰어넘어 직업의 울타리 안에서 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오랜만에 모교 홈페이지를 뒤져 과.. 더보기
[미니픽션] 오랜 침묵 후에 1 그날 밤 우리는 소호 뒷골목의 어느 좁은 찻집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질수록 탁해진 공기가 실내를 맴돌았다. 그녀는 조금 취한 듯 했고 나는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군데군데 밝혀놓은 촛불에서는 향냄새가 났다. “괜찮아?” “…어.” 그녀의 목소리는 속으로 대답하는 것처럼 작고 희미했다. 나는 속이 탔다. 정확히 삼십칠 분 전에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 탓이었다. 널 사랑해.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이야. 수십 번도 넘게 연습한 말은 오래 씹은 껌처럼 입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삼십 칠 분 동안 네 개의 술병을 비웠다. “볼펜 있어?” “응?” “펜 있냐구.” 뜬금없이 그녀는 펜을 찾았다. 가방을 뒤져 펜을 건네자 그 .. 더보기
요리 프로그램의 전문성 결여 텔레비전에 얼마나 많은 요리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끔 우연히 EBS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요리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서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걸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킬 때가 있다. 그런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전문가’라는 것이 어떻게 정의 내려지고 있는지, 그걸 헤아릴 수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네이버 사전은 전문가를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많이 알아서, 그 또는 그녀의 의견이 권위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문제는 지식과 경험인데, 이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지식보다는 경험만으로 다.. 더보기
[Films on Musicians] 현대와 만나는 중세: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일대기 <Vision> 요즘 세상돌아가는 모양새가 80년대도 아니고 '중세'라는 말을 들었다. (매우 암울하단 말씀...) '중세=암흑기'의 메타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진짜 중세시대는 그렇게 암울했을까? 잠시, 지식iN에서 검색을 해보니 그 중 한 답변이 재미있다. 질문: 중세시대가 왜 암흑기죠? 답: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살았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신에 의지한 종교의 권위가 너무 강해서 고대에 발달하던 철학,조각,자연과학,건축,법률 등의 분야에서 더이상 눈에 띄는 진전이 없던 정체기였지요..모든 학문조차 신학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시기가 바로 중세입니다. 이런 답변들을 볼 때 마다 그 간단명료함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진짜 그랬을까? 서양의 중세시대 하면.. 더보기
댁의 자녀가 건축과 진학을 고려할 때 따져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써야 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내일이 수학능력시험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한 번쯤 다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댁의 자녀가 건축과에 진학하고 싶다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만 할까? 돈을 비롯한 아주 현실적인 측면에서부터 자녀의 재능계발과 이상실현에 이르는 아주 이상적인 측면까지, 판단에 필요한 요소가 무수히 많다. 시간을 두고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 시작으로 가장 현실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물론 여기에서 ‘건축과’라고 하는 것은 설계를 위한 5년제 과정임을 미리 밝혀둔다(사실 5년제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을 .. 더보기
[New York Music Guide] [뉴욕 음악관람의 준비운동] 카네기 홀 찾아가기 수년 전 부모님들이 뉴욕에 오셨을 때, 짧은 시간 내에 뉴욕의 지리를 익히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에 도착 첫날 2층 관광버스를 타고 맨해튼을 돌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도를 펼쳐놓고는 아버지가 젤 좋아하시는 바둑(판)에 빗대어 뉴욕의 지리를 설명했다. "아빠, 맨해튼은 딱 바둑판이에요. 가로줄은 스트리트인데 위에서 아래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숫자가 줄어들어요. 세로줄은 애비뉴인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요. 그런데, 이 중에 사선으로 브로드웨이란 게 애비뉴들을 가로질러 지나가구요, 가로줄이 10번 스트리트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숫자로 붙던 스트리트 명칭이 사라지고 스트리트마다 제각각 이름이 붙게 되요." 이미 2층버스를 타고 현장실습(?)도 .. 더보기
[작가와 작업실] 오지호·오승윤 부자 _ 빛이 머무는 아뜰리에 퀴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가의 작업실은 어디일까? · · · · · · · · · 정답은 바로 여기.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275번지에 있는 고(故)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작업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故)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작업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업실은 1953년 오지호 화백이 지었지만 아들 오승윤(1939∼2006)이 물려받아 줄곧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젤 주변에는 오지호·오승윤 부자가 쓰던 색색의 유화물감이 오랜 세월의 더께처럼 남아있다. 파스텔 빛 물감은 아버지 오지호, 조금 진한 색은 아들 오승윤의 것이란다. 사실, 근대 이후 수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을 사용했지만, 그들의 사후(死後) 작업실이 온전히 보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 더보기
11월,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아이 예방접종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어린아이들을 위협하는 각종 바이러스성 질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의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모든 질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한 법. 일교차가 큰 11월, 놓치지 말고 맞아야 할 백신의 종류와 함께 알아두면 유용할 예방접종 상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독감 독감은 그 자체의 위험성보다 중이염, 폐렴 등 합병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질병이다. 독감에 걸리면 열이 나고 온몸이 욱신거리며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흔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독감은 심한 경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독감 예방접종은 .. 더보기
누가 자장면을 능욕하는가 며칠 전, 모든 것이 비싼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간자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으로 선택한 메뉴는 따로 있었지만,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서두르다보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집에서 먹게 된 상황이었다. 메뉴에는 두어가지의 자장면이 있었으나 거의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삼선 간자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메뉴에는 없지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메뉴에서 가장 비싼 자장면이 7,000원이었으니, 특별 주문한 삼선 간자장은 무려 8,000원이나 했다. 그쯤 되면 맛에 상관없이 뒷맛이 써야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달았다. 요즘 세상에 망가진 음식이 한둘이겠느냐만, 그 가운데 짜장, 아니 자장면이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사랑을 받았으므로, 그러한 가격대 .. 더보기
수능 막바지 준비, 수험생을 위한 생활 가이드 수험생은 잠을 한 시간이라도 더 줄이면서 공부하겠다고 다짐할 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수능 시험일까지 버텨줄 탄탄한 체력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집중력이다. 틈틈이 하는 스트레칭, 뇌에도 좋아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무리한 강행군을 하는 것은 체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학습·수면시 바른 자세와 습관을 서서히 개선해가면서 체력과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수험생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생활한다. 이때 엉덩이를 뒤로 깊숙이 넣고 허리를 곧게 펴 등받이에 기댄 자세로 앉으면 허리 부담을 덜고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 쿠션이나 타월을 둥글게 말아서 허리를 받치면 더욱 좋다. 장시간 책을 볼 때는 허리와 목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