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45) 박명성 - ‘재앙’ 부른 과욕 박명성 | 신시컴퍼니 대표 나는 욕심을 품는 데 인색하지 않다. 아끼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든 욕심껏 하라”며 권한다. 이루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 또는 욕심이 없었다면, 세상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하면 화가 되는 법.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되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곤란함과 직면하게 마련이다. 나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1999년 극단 신시의 2대 대표로 선출된 직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계는 삼십대 중반의 젊은 수장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그 시선이 곱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에서는 젊은 패기를 높이 사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역량 부족을 문제 삼았다. 당시 나는 대표로 선출되기 직전 국내 최초의 라이선스 뮤지컬 를 통.. 더보기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44) 강지원 - 고시공부 강지원 | 변호사 수십년 살아오는 가운데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젊은 시절 고시공부를 한 일이다. 남들은 그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만일 내가 고시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일찍부터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적성을 찾았을지 모른다. 1969년 봄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3선개헌을 추진했다. 대학가는 데모에 나섰다. 대학 2학년이던 나도 인근 여관방을 돌며 격문을 써서 방을 붙일 준비를 했다. D데이가 왔다. 그런데 당시 사회를 보던 동료가 갑자기 나에게 연설을 하라고 지명했다. 나가서 한마디했다. 장기집권의 음모를 분쇄하자고. 그런데 그 장면이 현장에 쫙 깔린 정보원들에게 그대로 찍혔다. 핵심 주동자로 지목돼 무기정학을 당했다. 그러던 .. 더보기
(43)최태지 - 발레를 얻고 친구를 잃다 ‘발레를 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정말 떠오르는 직업이 없다. 그만큼 발레는 확고한 나의 삶이다. 발레를 시작한 이후 오늘까지 발레는 항상 나와 함께 했다. 발레는 내 일생 최고의 친구이다. 나는 교토의 작은 마을 마이쓰루(舞鶴)에서 태어나 자랐다. 발레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사고방식이 진취적이고, 서구적이셨던 어머니께서 “발레라는 서양무용을 하는 여자는 세련되고 예뻐진다”고 초등학생인 언니와 나를 무용학원에 데려가셨다. 일본의 무용학원은 직업무용단이 몇몇 소도시에 지부 차원의 연구소를 설립해 가르치는 형태이다. 마이쓰루 시에는 무용연구소가 딱 하나 있었다. 도쿄에 본부를 둔 가이타니무용단은 교토나 오사카, 마이쓰루 등 일곱 개의 시에 지부를.. 더보기
(42) 김성녀 - 옳은 말만 하는 엄마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우리 부부는 참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연극쟁이였다. 남편(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삶을 위해 꿈을 접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상 생활을 책임지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했다. 연극을 하면서 틈만 나면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진행도 하면서 남들의 두 배 세 배 몫을 해냈다. 남편은 남편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고 나도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한 발 한 발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살아온 것처럼 ‘무엇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기를 요구했다. 칭찬보다는 아쉽고 .. 더보기
(41) 서정진 - 구조조정 악역 40대 초반, 대우자동차에서 일할 때다. 1998년 10월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대우그룹은 곧바로 비상구로 내달렸다. 이듬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 한가운데 대우차가 있었고, 급기야 대규모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됐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채권단이 나서기 전에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경영을 잘못해서 배가 침몰했으니 경영진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다수 직원들을 생존시킨 상태에서 경영진이 먼저 경영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후임 경영자들이 회사를 추슬러 재기를 도모하는 쪽으로 가는 비상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반대의견을 갖고 있던 내가 조정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일을 맡게 됐다. 정말 .. 더보기
(40) 김덕수 - 구슬픈 비나리의 기억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자 후회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갔을 때이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와 용배의 우정은 각별했다. 용배는 락, 포크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좋아하는 색깔까지 나와 같았고, 사상과 철학도 비슷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싫어도 용배가 좋다고 하면 그 일을 할 정도로 우리는 바늘과 실 같은 사이였다. 오랜 시간 사물놀이를 계획하며 속내를 털어놓던 친구가 사물놀이패를 나가겠다고 했던 날, 나는 광분했다. 2년 동안의 사물놀이 공연 일정이 정해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 친구는 이미 국립국악원으로 출근해 첫 봉급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멤버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 “손 내놔. 가면 손가락을 다 자를 테니까 알아서 .. 더보기
(39) 이이화 - 끝내 못 쓴 역사소설 이이화 | 역사학자 나의 10대 시기는 고난에 찬 삶이었다. 밥 먹을 데도 잠 잘 곳도 없어서 고아원에 기탁했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원은 그야말로 도가니였다. 그곳에는 소매치기, 깡패, 거지 짓을 하던 아이들이 우글거렸다. 내가 가출한 동기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굴러다니는 책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내가 책을 들고 있으면 우락부락한 아이들이 와서 책을 빼앗아 내던졌다. 나는 허약해서 맞서 싸울 힘이 없었다. 몰래 숨어서 책을 읽었다. 참고서는 물론 ‘새벗’ 같은 잡지, 야한 소설 따위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어 여관 종업원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 무렵에는 독서경향이 조금 정리되어서 학교 도서관의 책을 빌리고 굴러 다니는 책을 주어서 틈만 나면 읽었는데 주로 세계 명작들이었다. 시로는 릴케나.. 더보기
(38) 박석무 -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역리 박석무 |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의 글 ‘매심재기(每心齋記)’에는 자신의 형님 정약전의 당호가 ‘매심재’인데, ‘매심’이란 마음 심(心)과 매(每)를 합한 글자가 ‘회(悔)’라는 글자여서 했던 일에 잘못이 발견되면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매일 마음을 점검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각오가 담긴 내용으로 설명하였다. 주자(朱子)도 ‘십회(十悔)’라는 글을 남겨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는 끝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열거하여 가능한 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였다. 주자나 다산 같은 현인(賢人)들도 일마다 후회될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는데, 항차 우리네 같은 속인들이야 일마다 후회할 일이요, 행한 일마다 반성이 요구됨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어느 것 하나 .. 더보기
(37) 장사익 - 떠돌이 장남 (37) 장사익 - 떠돌이 장남 장사익 | 소리꾼 ‘산설고 물설고 / 낯도 선 땅에 / 아버지 모셔드리고 / 떠나온 날 밤 // 얘야, 문 열어라 //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 잠긴 문 열어제치니 / 찬바람 온몸을 때려 / 뜬눈으로 날을 샌 후 // 얘야, 문 열어라 //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허형만 시인의 ‘아버지’라는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 내 뒷목을 후려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강렬한 느낌을 담아 이 시를 꼭 노래로 부르고 싶었다. 수천번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곡을 붙여 태어난 노래가 ‘아버지’다. 한평생 게으르게 살아온 나에게 후회되는 일을 묻는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중의 으뜸은 아무래도 ‘불효’다. 10여년 전 세상을 떠나신.. 더보기
(36) 조영남 - 이혼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36) 조영남 - 이혼 조영남 | 가수 나에게 살아온 날들 동안 후회하는 한 가지를 고르라는 건 너무 뻔한 질문이다. 아니 가장 잔인한 질문이다. 그 해답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질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아는 답이 아닌 다른 답을 준비한다는 건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가정 문제를 엉망으로 만든 것, 이것이야말로 내 삶에서 거의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다. 글 쓰고, 노래하고, 방송진행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놀맨놀맨’ 잘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엔 깊은 후회가 늘 똬리를 틀고 있다. 언젠가 방송에 출연하여 이 문제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고백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윤여정씨와의 이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 더보기
(35) 이원종 - 장인의 보청기 이원종 | 전 충북지사 ‘보청기’란 말만 들으면 아내와 나는 마음이 아프다. 지난 추석 때 성묘 차 들른 장인 내외분의 산소 앞에서 아내의 독백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의 고장 난 보청기가 여전히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저희 5남매 길러 내느라 막막하고 힘드셨지요. 등록금 마련하느라 가슴 뜯으시던 엄마 모습도 제 가슴에 그대로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 계실 때에 자그마한 것 하나도 왜 제대로 못 해드렸는지, 왜 그리도 부모님께 인색했는지 후회뿐입니다.” 충북도지사 시절, 퇴근한 나를 잡고 아내가 말했다. “친정아버지 보청기가 고장이 났는지 무척 불편하다고 하시던데.” 그저 아내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그런가’ 하며 건성으로 넘겼다. 장.. 더보기
(34) 김성훈 - 선거 출마 김성훈 | 중앙대 명예교수 흔히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완력의 세기에 따라 우두머리가 결정되는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권모와 술수, 재능과 경륜, 재력에 의해 대표가 뽑히는 민주사회일수록 장삼이사(張三李四) 같은 범부들도 기회만 있으면 우두머리 자리를 탐낸다. 그래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민주주의가 두루 환영받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범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니 지금도 불현듯 젊은 시절의 순간적인 야망을 연민과 회한의 정으로 뒤돌아볼 때가 있다. ‘착한 원순씨’가 서울특별시 시장으로 극적으로 뽑히던 날, 나의 성공인 양 마냥 기뻐하다가 문득 지난 날의 어리석었던 행동을 후회하는 상념에 빠졌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던 1995년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이 내밀어졌다. 정치와는 무관한, 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