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산 고등어 살려주세요 나쁜 소식은 말 타고 가고 좋은 소식은 기어간다는 말이 있다. 지금 방사능과 관련된 시중의 분위기가 딱 그렇다. 정부에서 검사해서 안전하다고 해도 두터운 괴담의 벽 앞에서 먹혀들지 않는 듯하다. 명태와 동태는 죄다 일본산이라느니, 후쿠시마산 고등어가 유통되었다느니 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시중의 불안한 심리는 곧 여러 사람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친구들 몇몇이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에 국내 최대의 고등어위판을 하는 공동어시장이 있다. 등줄기 무늬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싱싱한 고등어가 팔리지 않아 냉동창고로 직행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값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위기에서 아무도 속 시원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뉴스가 되는지 마는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문제없다”고 .. 더보기
유럽엔 룸살롱이 없다 유럽에 있을 때, 현지 여행가이드들을 만나면 아주 재미있는 뒷담화가 많았다(유명한 분들, 정말 조심하시라). 홍세화 선생님도 파리 망명 시절, 웃지 못할 일들을 당신의 책에 조금 써놓은 적이 있다. 한국의 남자들이 오면 뭔가 은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화끈한 데를 찾는 것이다. 맞다. 룸살롱 같은 곳이다. 유럽에는 아예 대놓고 성을 사고파는 나라는 있지만, 한국의 룸살롱 같은 곳은 없다. 성매매는 어떤지 몰라도 룸살롱처럼 여성비하적인 환경은, 적어도 유럽의 사고방식으로는 허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 같다. 한국은 정말 룸살롱 천국이다. ‘한국 수컷들은 툭 터진 데서 술 마시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좁은 방에 넣어놔야 한다’고 웃겼던 탤런트 정한용 선생 말이 생각난다. 하여튼 한국의 룸살롱은 전 .. 더보기
대구 종로의 ‘진짜’ 중국음식 고종 19년(1882년) 6월9일, 임오군란이 터지자 청나라는 3000여 명의 군대를 이 땅에 파견했다. 이때 약 40여 명의 민간인이 함께 들어왔다. 공식적으로 한국에 화교가 생겨나게 된 계기다. 이후 인천을 중심으로 서울로 발을 넓혀서 이주민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1931년 만주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이 충돌한 만보산 사건, 해방과 중국 공산화에 따른 왕래 제약,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서의 노골적인 차별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략 현재 화교 숫자는 2만 명을 조금 웃도는 선. 알다시피 상당수가 식당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탕탕, 반죽을 내리치던 수타면의 육중한 타격음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왕서방의 주문(注文)이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물론 이제 그런 중국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회가 있.. 더보기
알고보니 중국배추 총각무가 시장에 나온 걸 보니 침이 고인다. 잘 익은 총각김치 하나에 뜨거운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싶다. 둥근 머리부분을 통째로 씹을 때 아삭한 식감이란! 나 같은 경우는 무청도 아주 좋아해서 뜨거운 밥에 휘휘 비비듯 섞어서 입에 넣는 걸 좋아한다. 간이 잘 밴 무청이 약간 질깃하게 씹히는 것이 좋다. 하얀 쌀밥이 입천장을 뜨겁게 달구고 거기 다시 총각김치 양념의 자극이 전해지는 걸 즐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릇이 비곤 했다. 무는 시월부터 제철이 되는 듯하고, 배추는 아직 이르다. 그래도 차가운 바람이 깃을 스칠 때 우리는 배추김치, 즉 김장을 생각하게 된다. 김장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배추다. 차곡차곡 소금 먹여서 절인 배추가 커다란 소쿠리나 채반에 쌓여 있고, 고춧가루의 알싸한 향과 젓갈의 진한 냄.. 더보기
기름, 얼마나 드십니까 롤랑 바르트가 일본식 튀김인 덴푸라를 보고 “그 어느 튀김도 가질 수 없었던 처녀 같은 청순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덴푸라는 아주 묽은 반죽을 입혀 가볍게 튀기는데, 그래서 내용물이 환하게 비친다. 깻잎 같은 걸 그렇게 튀겨놓으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 튀김의 면모를 이색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튀김은 이처럼 매혹적인 요리법이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바삭하게 만들어주며, 별로 신통치 않은 재료도 전혀 새로운 맛으로 변모하도록 한다. 앞서의 깻잎 한 장, 얇게 저민 고구마 한 점, 퍼석한 닭가슴살조차 튀김의 세례를 받아 혀를 즐겁게 하는 미각으로 바뀌곤 한다. 한 환경운동단체에서 강연을 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너무 기름을 많이 쓰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더보기
서울의 노포 ‘부민옥’ 강북직할시, 강남특별시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강남이 마치 이탈리아처럼 분리독립운동을 안 하는 게 다행이다. 이탈리아의 북부 일부 부자들은 힘들게 벌어서 낸 세금으로 남쪽 ‘도둑놈’들에게 복지비용을 퍼주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덕에 북부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총선에서 큰 표를 얻었을 정도다. 서울의 부가 강남으로 몰린 지는 오래되었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에서 일찍이 강남이 왜 꿈의 도시가 되었는가 짚어나간다. 강남이 황금시절을 열어갈 때, 내 친구들도 그쪽으로 가는 이삿짐 차를 탔다. 한번은 이사 간 친구집에 놀러갔더니 배추밭 사이, 몇십미터 간격으로 띄엄띄엄 똑같이 생긴 2층 양옥이 서 있어서 놀랐다. 시멘트와 ‘부로꾸’가 동네에 지천으로 쌓여 있는 살풍경한 동네였던 기억이 난다. 강남은 그.. 더보기
동물 윤리 간혹 거리에서 특이한 간판을 볼 때가 있다. 돼지나 소, 닭이 엄지를 척 치켜세우고 있는 그림이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야말로 참 대단한 종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살되어 먹히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웃는 얼굴로 광고까지 하는 가축의 형편은 도대체 무엇인가 싶은 것이다. 돼지가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입맛까지 다셔가며 웃는 그림은 희화를 넘어 어떤 상징으로까지 읽힌다. 우리는 보통 가축을 세 번 죽인다. 비육을 위해 치르는 수많은 곤란한 지경에서 한 번 이미 죽인다. 이를테면 살을 찌우기 위해 좁은 축사에 가둬두고 운동을 제한하는 상황들이 그렇다. 도살할 때 두 번째 죽이고, 죽은 후 처리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죽인다. 특히 별 볼 일 없는 부산물이 거칠게 취급되는 환경은 가축이 원래 생명.. 더보기
요리사들은 뭘 먹을까 요리사들은 뭘 먹는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매일 요리를 주무르는 사람들이니까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답부터 하면, 참 허술하게 먹는다. 식단을 짜서 제대로 먹는 경우는 드물고 허드레 음식이 요리사들 차지다. 팔고 남은 재료,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재료, 손질하고 남은 재료가 요리사들 밥이다. 예를 들면 갑자기 고등어로 며칠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손질해놓은 고등어 요리가 주문이 적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 일본 방사능 누출로 뒤숭숭한 여론이 손님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은 그 고등어가 요리사들 입으로나 들어가고 만다. 국내산 원산지 증명서를 받아놓고 있어봐야 손님 마음을 어떻게 다 돌릴 수 있겠는가. 고등어가 뭔 죄람, 이러면서 고등어 찌개에 구이에 튀김에 조림에 샌드.. 더보기
‘꽁치의 귀환’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새벽에 수산시장에 다닌다. 아침에 자명종이 울면 정말 지옥의 호출 같지만, 불 환하게 켜 놓고 경매하는 시장의 활력이 떠올라 근근이 몸을 일으키곤 한다. 특히 물이 좋아 탐나는 생선과 해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불끈 옷을 꿰입는 것이다. 싱싱하다못해 거의 무지개빛으로 투명한 오징어는 몸을 둥글게 부풀리고 아직도 탱탱하다. 오징어가 오래되면 내장과 살의 탄력이 죽으면서 납작해지기 때문이다. 키조개는 철이 지나서 색이 나빠지고 있지만 아직은 싱싱하고, 멍게도 제철은 아니지만 알싸한 맛이 먹을 만하다. 조개는 한여름을 벗어나면서 제맛을 살살 올린다. 아시겠지만 조개는 봄가을이 제철이니까 말이다. 홍합은 여름을 넘기며 고전했는데, 요즘이 알이 굵고 맛이 진할 때다. 독소가 발생한 지역은 위판 자체가 .. 더보기
차별의 음식 라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는 이제는 고전에 속하는 명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독일인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중년의 여자가 우연히 북아프리카의 아랍계 이민자인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주위의 비아냥에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소한 충돌로 균열이 생기고 그들의 사랑도 비극을 맞는다는 얘기다. 마침 뮌헨올림픽에서 벌어진 선수촌 테러사건으로 아랍인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나온 영화여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인종과 나이를 극복하고 사랑하던 주인공들의 관계가 파장을 맞게 된 ‘사소한’ 사건은 바로 음식에서 시작된다. 어느날 청년은 ‘아내’에게 쿠스쿠스가 먹고 싶으니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러자 아내는 뜻밖에도 절대 안된다고 거절한다. 둘 사이에 내재되어 있던 갈등이 음식을 통해서.. 더보기
국제적 식당가 이태원 이태원을 흔히 서울 속 인종 전시장이라고 한다. 인종이 ‘전시’됐다는 표현이 무언가 파시즘의 냄새를 풍겨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여하간 인종이 다양하기는 하다. 내가 일하는 식당 앞에는 국적과 인종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근처에 대사관 골목이 있기 때문에 영사 업무랄까, 드나드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큰 호텔도 있어서 관광객도 많다. 가만히 보면, 같은 중국어를 쓰는 사람도 국적이나 지역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차림새와 표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홍콩, 대만, 본토의 중국인에다가 미주지역의 화교들도 이태원에 놀러온다. 이슬람권의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다. 머리에 쓰는 수건도 다르고, 표정도 다채롭다. 흑인들도 북아프리카 계열의 덩치가 작고 귀여운 친구들도 있고, 서부 해안이나 나이지리아에서 .. 더보기
강적은 ‘임대차보호법’ 자영업자 700만 시대다. 인구의 절대 다수가 무언가 장사를 해서 먹고 살거나, 그 가족이라는 얘기다. 요새 부쩍 친구, 선후배들의 상담 전화가 많다. 직장에서 나왔다거나, 앞으로 ‘나와야 할’ 처지인데 대책이 없느냐는 하소연이다. 내게 전화를 건 배경은 당연하게도 요리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머리 허연 한 선배는 이미 어느 노동기관에서 운영하는 요리과정을 다니고 있다. 그가 어설픈 솜씨로 주름살을 잔뜩 얹은 채 무딘 칼질을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무너진다. 그는 “여, 곧 널 따라잡을 테니 긴장하라고!’ 하면서 농담을 하지만, 그 행간에 깃든 슬픔을 모르지 않는다. 주말마다 나와서 설거지라도 하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느냐는 요청도 한두 건이 아니다. 예전에는 취미로 요리를 배우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