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라면이 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국수는 고급한 음식이었다. 곱게 밀을 제분하는 기술도 뒤늦게 발전한 데다가 밀 자체가 흔한 농산물이 아니었다. 빵의 원조인 유럽도 온갖 곡물을 넣고 그저 죽을 먹는 일이 흔했다. 오트밀이라고 부르면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도 실은 그저 ‘귀리죽’이었다. 빵은 세력가들의 차지였다. 빵의 색깔에 의해서도 빈부와 권력의 선이 그어졌다. 검은 빵은 곧 변화될 수 없는 하급 신분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유럽의 국수 종가는 이탈리아다. 운송의 발달, 기계공업이 성장하면서 남부에서 마른 스파게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네 옛날 국수가게들이 마당에서 국수를 말리듯,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공터에서는 스파게티가 건조됐다. 국수는 빵보다 더 다양한 식사를 가능하게 했다. 그저 버터를 .. 더보기
바다 음식과 공황장애 흔히 바다의 음식을 찬양한다. 어부의 만선과 바다의 풍요를 칭송하기도 한다. 간혹 바다에 취재갈 일이 있다. 요리에 쓸 제철 재료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공급해줄 어민을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바다의 덕으로 몸을 살찌우고 미각을 얻는다. 텔레비전에서 바다 음식을 소개하면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게 정설이다. 싱싱한 바다의 활력이 원초적인 식욕과 기대감을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역을 탐방하는 카메라는 수산시장을 좋아한다. 그저 카메라를 돌리기만 하면 멋진 그림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바닷가에 앉아 회 접시에 술 한 잔을 마실 때도 바다는 감상적이고 즐거운 대상이다. 그러나 막 어로에서 돌아와 배를 묶고 어창에서 꺼낸 고기를 운반하는 어민의 낯빛을 보면 그것은 현실로 바뀐다. 검고 어둡다.. 더보기
한국식 숟가락질의 미덕 나는 뒤늦게 이태리에서 요리를 배웠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몇 가지 재미있는 소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양식을 만드는 요리사들도 젓가락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파스타를 볶을 때 소스와 면이 잘 조화되도록 흔들어야 하는데, 이때도 집게 대신 젓가락을 썼다. 다 만든 면을 접시에 놓을 때도 젓가락은 아주 유용했다. 면을 사리 지어 한번에 멋지게 휘감아 척, 접시에 모양을 냈다. 서양 같으면 국자를 대고 따로 큰 포크를 써서 모양을 잡아야 한다. 두 손을 써야 하므로 한 손에 젓가락을 잡아 그 일을 끝내는 한국인에 비해 훨씬 느리게 마련이다. 또 작은 재료를 접시에 담을 때 서양 요리사들은 핀셋을 쓰는 데 비해 한국인들은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그 일을 해냈다. 늘 쓰는 도구이므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으니 감탄하.. 더보기
밀라노의 한국식 치킨 이탈리아에 있다. 음식에 관해 몇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 거리에 인기 있는 식당은 상당수가 외국식이다.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본디 중국 음식 말고는 외국식을 거의 먹지 않는 나라가 이탈리아인데 말이다. 간단한 스낵류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어제자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머리기사로 ‘청년실업률이 42%를 기록했다’고 실었다. 청년들이 돈이 없으니, 더 싼 음식을 찾는 모양이다. 전통적인 피자집 대신 반값도 안되는 외래 음식을 먹는다. 케밥과 중국식 스파게티는 햄버거 값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유행도 가세했다. 일본식 간이식당이 많다. 중국인 요리사들이 전업해서 무거운 고기 칼 대신 날카로운 ‘사시미 나이프’를 들고 연어를 썬다. 아직은 고작 연어이지만 유럽인들이 날생선을 먹는다는 건.. 더보기
푸드트럭의 ‘그늘’ 푸드트럭이 이 정부의 규제개혁 사례로 연일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한 신문을 보니 푸드트럭 제작자가 함박웃음을 웃는 사진을 실었다. 오랫동안 불법으로 ‘음지’에서 일하던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인 듯하다. 정부의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수면 아래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음식 프랜차이즈업체들이 푸드트럭에 적합한 업종을 개발한다는 소문도 업계에서 들린다. 이번 규제개혁 사례에서 거론된 뉴욕식의 햄버거와 타코(멕시코식 간이 음식)는 물론이고 떡볶이와 순대, 만두 같은 간이 음식을 트럭에서 다룰 수 있는 장비 시장이 바빠졌다고 한다. 요리 장비를 트럭에 장착하려면 콤팩트하게 설계 제작해야 하고, 쓰는 연료도 달라서 여러 가지로 다른 면이 많기 때문이다. 푸드트럭은 아무래도 번듯.. 더보기
‘제철 음식’의 추억 요리사들은 제철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음식의 맛은 거개 재료에서 오게 마련이고, 제철의 맛을 이기기 어려워서다. 4월 중순의 개두릅(엄나무순)처럼 한 보름 잠깐 왔다가 가는 재료를 찾아 안테나를 세워두는 요령이 필요하다. 제철 달력을 만들어두고, 생산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한다. 여전히 우리 관습은 정해진 메뉴에 익숙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제철 재료로 특별음식을 만들면 반응이 신통치 않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감 내지는 불안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대한 불신도 한몫할 것이다. 믿고 먹는 문화의 부재랄까,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필자도 제철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지만, 아직 물정에 어둡다. 그래서 종종 황.. 더보기
저염식 저염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건당국은 물론 서울시 같은 지자체에서도 열성적으로 이 문제에 힘을 쏟고 있다. 한때 당뇨와 심혈관 질환자들에게나 필요한 일종의 환자식 개념이 대중으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소금이 과연 몸에 해로운가 이로운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없는 듯하다. 이미 과도한 소금은 건강을 해친다는 게 정설이다. 소금(나트륨)은 우리 몸에 필수불가결하다. 나트륨이 없으면 우리 몸은 곧바로 운행을 정지한다. 즉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그러나 몸에서 합성되지 않으니 섭취해야 한다. 소금의 금 자를 ‘금(金)’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귀한 존재다. 현대는 소금이 싸서 문제다. 소금을 전매하던 과거에는 저염식에 대한 캠페인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소금이 비쌌기.. 더보기
선술집 나는 허름하고 소박한 술집을 좋아한다. 옆 탁자 손님과 등을 맞대는 것도 흥겹다. 술에 취한 일행 때문에 싸움이 붙기도 하지만, 서로 유쾌해져서 안주 접시가 넘어오는 그런 집 말이다. 그런 집들을 흔히 목로주점이나 선술집이라고 부른다. 고단한 일상을 한 잔 술로 위로하는 민중의 술집이다. 이젠 목로의 분위기 자체를 일종의 ‘설정’으로 만들어 흉내만 내는 집들도 청담동과 한남동 같은 곳에 있다. 대리주차요원은 물론이고 샴페인과 ‘사케’를 ‘오뎅’에 얹어 파는 희한한 영업을 한다. 장사가 꽤 잘된다. 부자들도 이런 집들의 소박함을 즐기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때 피맛골 언저리에 딱 좋은 목로주점들이 많았다. 알려진 대로 그 동네는 어이없는 재개발로 무너졌다. 이제는 그 위쪽도 거대한 개발의 불도저.. 더보기
스모그, 주꾸미로 헹구자 기록적인 스모그다. 중국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들이 모르쇠하고 있는 상황이 기분 나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업보 아닌가 하는 자각도 든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동해안 공업지대에서 대부분의 스모그를 발생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공장이 생기니 농사로 이문을 못 맞추는 농업지역 사람들이 몰린다. 그들도 소비하고 겨울에 난방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만드는 산업과 생활의 배설물들이 결국 스모그인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한다. 중국산 저가 상품이 주로 그 대상이다. 국산이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간 수많은 재료와 부품이 중국산이다. 밑창이 멀쩡한 신발을 바꾸라고 광고는 충동한다. 2014년 봄의 새로운 모드로 갈아 신으라고 유혹한다. 장롱에 쌓인, 한두 번 입고 던져둔 옷은 왜 이.. 더보기
식당 영업시간 한번은 군산 외곽에 짬뽕이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하여 달려갔다. 짬뽕 맛보다 놀라운 건 영업시간이었다. 오전 열한 시에 열어서 오후 세 시에 닫았다. 더러 정해놓은 그릇 수가 다 팔리면 그 전에도 닫는다. 요즘은 저녁시간에 중국집에서 ‘청요리’를 시켜놓고 술잔 기울이는 사람이 줄어서일까. 하기야 저녁시간에 문 연 중국집을 들여다보면 테이블이 텅텅 비어 있기 일쑤다. 그렇다고는 해도, 달랑 네 시간짜리 영업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세계에서 이렇게 짧게 영업하는 식당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보통 식당은 하루 열두 시간은 열어둔다. 밤샘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요리사를 파트타임으로 쓸 수 없으니 일정한 시간 동안은 문을 열어야 한다. 종일 영업은 물론이.. 더보기
졸업식의 짜장면 아침에 일어나니 신문에 전단이 많이 곁들여 왔다. 늘 보던 식당 개업 소식, 학원 소개뿐 아니라 좀 특별한 내용도 있었다. ‘졸업장을 제시하시면 할인해 드립니다.’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왔다. 제법 감각 있는 식당 업주라고나 할까. 마침 내 아이도 졸업을 한다. 어디로 갈까 물으니, 스시 뷔페란다. 스시도 뷔페가 있어? 아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시종 화기애애하고 따사로웠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는 녀석은 하나도 없네.” 그럴 것이다. 가난과 설움 따위는 없으니, 눈물도 없어진 것일까. 헤어져도 언제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하고, 지구 끝까지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나는 별로 의아해하지 않았다. 저 친구들은 우리 세대와 다른 것이다. 고통이라면 수학 문제가 안 풀리는 .. 더보기
계란찜이 측은하다 학교에서 돌아와 까무룩 잠이 들 때가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면 엄마가 저녁을 짓고 있었다. 달그르르르, ‘스뎅’ 대접이 요란하게 떨었다. 곤로(풍로) 심지를 높여서 중탕으로 계란찜을 하는 것이었다. 물을 두어 사발 붓고, 사기그릇을 엎은 곳에 계란을 풀어 저은 대접을 살포시 얹어놓는다. 간은 소금으로 하는데, 더러 청장(조선간장)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오래된 심지가 타는 냄새에 계란찜 바닥 부분이 타는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부엌은 그야말로 냄새의 곳간이 되었다. 엄마가 행주로 조심조심 꺼낸 계란찜 대접을 상에 올리면 다른 반찬은 별로 소용없었다. 빨갛게 고춧가루를 뿌린 부분은 아버지가 푹 떠가고, 나는 흰자가 엉켜 부드럽게 요리된 부분을 떴다. 계란찜 바닥의 타서 눌어붙은 걸 박박 긁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