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라면에 대한 이중잣대 라면은 원래 ‘늘여서(拉)’ 뽑는 면이라는 뜻이다. 납(拉)의 중국어 발음이 ‘라’이다. 원래는 난징, 란저우 등의 중국 내륙의 면이다. 수타면이라고 하여, 탕탕 두들기며 뽑는 중국집 면이 바로 라면의 원형이다. 라면은 일제의 개항기와 중국 침략기를 거쳐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이제 우동보다 라면이 더 잘 팔린다. 우동의 본고장에서도 라면 가게가 성업한다. 일본은 중국의 라면에 일본식의 색채를 입혀 독창적인 라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뿌리는 중국식이라는 걸 감추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파는 ‘주카소바’라는 광고는 바로 라면이다. 주카(中華)식 국수라는 뜻이다. 그런 일본이 먹기에 간편한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개발했다. 근원은 중국에 있지만 인스턴트 라면은 독자적인 하나의 스타일.. 더보기
조선간장 우리 고어(古語) 연구자들은 지역 사투리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곤 한다. 일부러 학생들이 시골 노인을 모시고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 사투리는 표준어가 내다버린 우리말의 오랜 유전자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 고향에서는 벌써라는 뜻으로 ‘하마’, 늘이라는 뜻으로는 ‘맹’을 쓴다. 이런 사투리를 고문을 다루던 국어시간에 가사문학과 시조에서 발견하곤 나도 모르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경남지역에서 쓰는 여러 말에 ‘ㅂ’이 부드럽게 순화되는 언어 관습-추워가 추버, 더워가 더버가 되는 식의-은 곧 고어와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요리도 그런 경우를 보게 된다. 부모님 고향에선 일상 음식에서 맛을 내기 위해 왜간장이나 현대적인 조미료를 섞어 쓰면서도 제사나 상(喪)에 쓸 때는 딱 하나만 부엌에.. 더보기
‘나는 요리사’ 언제부터인가 날더러 ‘셰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의 음식 문화가 들어오면서 셰프가 요리사 내지는 주방장이라는 오랜 호칭을 밀어내버린 형국이다. 내가 쓰고 있는 한글프로그램은 셰프라는 글자를 치면 붉은색으로 경고를 한다. 아직 우리말에 섞이지 않은 외래종이란 뜻이다. 여기서 우리말을 쓰자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셰프라는 말이 소매 긴 양복처럼 우리에게 너무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셰프(chef)란 원래 치프(chief)란 뜻의 불어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부서의 장을 셰프라고 흔히 부른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프랑스요리를 받아들이면서 주방장 내지는 요리사를 셰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배경을 두고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마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상륙한 영국인과 캥거루의 일화와 흡사.. 더보기
먹거리, 종의 다양성 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은 지금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광포한 소비사회의 저편에서 나름대로 삶을 꾸리고 있는 여러 부족들이 기억난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사람들은 아마도 “지구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각기 생김새며 피부 색깔이며 언어가 다른 인종과 민족이 지구에 산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그럭저럭 이 별에서 어울리고 있다. 이걸 어떤 이는 공존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오직 백인만 사는 별이 아니듯, 우리 식탁에 오르는 종자도 제각기 다 소용이 있다. 서양의 밀이 대세이지만 앉은뱅이밀이라는 토종이 그 이름이 풍기듯 끈질기게 씨를 품고 있다. 이 밀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입에 쩍쩍 붙는 맛은 아닐지 몰라도, 제법 구수하다. .. 더보기
‘곱빼기’의 추억 옛날에 누나랑 걸어서 통학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까지 4㎞는 좋이 되는 꽤 먼 거리였다. 엄마는 차비를 주었지만 초등학생이던 그때 이미 워낙 알뜰한 누나는 나를 꼬드겨 한 시간을 걸어 통학했다. 나는 걷기가 싫어서 투정을 부렸고, 그때 누나가 내게 내민 미끼(?)는 빵이었다. 이름 하여 곱빼기! 보통 빵보다 훨씬 두툼한 빵이었다. 그 빵을 씹으며 나는 길고 긴 통학길을 걸었다. 그 덕에 지금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누나에게 감사하고, 곱빼기란 빵을 만들어 팔았던 제빵회사에 감사한다. 곱빼기란 말은 외국에서도 자주 쓰인다. 이탈리아에도 있다. 돈을 조금 더 내면 넉넉하게 스파게티를 준다. 대개는 그램(g) 수를 지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1인분에 100g이 보통인데, 200g을 달라거나 150g을.. 더보기
여름, 냉면의 추억 예전에는 이맘때면 거리에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냉면’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냥 페인트나 먹으로 ‘냉면 개시’라고 쓴 부적 같은 종이를 붙인 것도 있었다. 붉은 깃발이 나른하게 햇볕에 졸고, 흙길은 바싹 말라서 먼지를 풀풀 일으켰다. 삼베 적삼을 입은 동네 아저씨들은 부채질을 하면서 진땀을 식혔다. 흔한 서울 변두리의 여름 풍경이었다. 요즘처럼 시내 냉면집 순례를 가는 일도 쉽지 않았으니, 그저 동네의 밥집에서 냉면을 먹었다. 육수를 어떻게 냈는지 몰라도 새콤한 맛으로 먹었던 것 같다. 토마토가 한 쪽 올라 있고, 오이채와 얼음 덩어리를 곁들여 주는 게 흔한 동네 냉면의 스타일이었다. 이런 냉면은 대개 미리 만들어진 면을 삶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공급되는 냉면가락이 서로 붙어.. 더보기
대중식당 점령한 재벌의 양념 미국 요리가 세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 비판적이며 자존심 도도한 유럽에서도 미국식 스테이크점이나 햄버거 가게가 성업한다. 신문에서는 연일 미국을 비판하고 각을 세우지만 현실로 내려가면 상황이 다르다. 청바지에 미국 팝을 즐기고 ‘빅맥’을 먹는 건 비판의 여지조차 없는 자연스러운 대중문화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카페테리아와 피체리아(피자집)에서 바게트와 피자에 콜라를 곁들이는 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미국식 식품산업이 식당의 선반까지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바쁜 가정의 찬장에 다국적기업의 제품들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식당에서는 손수 만든 재료를 많이 쓴다. 지역에서 나온 올리브유와 소박한 토마토소스, 수공업으로 만든 치즈로 요리를 한다. 필자가 .. 더보기
절망을 튀기는 치킨집 치킨이 어린 닭을 뜻하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에서 팔리는 튀긴 닭의 별칭이라는 건 다 아는 얘기다. 게다가 요새는 ‘치맥’이란 말을 모르는 시민도 거의 없을 것 같다. 대구에선 그런 이름을 걸고 국제축제도 연다고 한다. 치맥은 치킨에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노고를 풀고 친교하는 가난한 시민들의 대표 술자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에서 시작한 우리의 닭고기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2마리 정도 되고, 나라 전체로 보면 6억마리 남짓 한 해에 도살된다. 닭 산업이 5조 얼마를 왔다갔다 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간혹 사오던 닭은 종이봉투에 싸인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기름이 쪽 빠져서 담백하고 고소하던 그 닭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식 튀긴 닭에 밀려.. 더보기
밥이 ‘갑’이다 요리사들은 밤늦게 집에서 식사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사기 주발에 담겨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잠자던 아버지의 밥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서 그 밥뚜껑을 열면 구수하고 푸근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밥에도 향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국 음식은 밥이 ‘갑’이다. 밥을 중심으로 놓고 모든 음식의 배열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예 밥이란 곧 식사를 의미한다. 부자들이 백만원짜리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그저 ‘어이, 밥 한 끼 합시다’라고 말한다. 힘들 때 우리는 친구에게 밥 사면서 ‘밥심으로 버티자’고 어깨를 툭 친다(이거 어디서 본 표현이다). 직업도 밥벌이라고 부르고, 영양과잉 시대인 요즘도 ‘식사하셨느냐’가 인사다. 밥은 우리 민족에겐 생존의 시종일관이었고, 몸이고 정신이었다. 오죽하면.. 더보기
농축된 석유를 먹는 사람들 덴마크에 노마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다. 권위 있는 레스토랑 비평지에서 매년 수위권을 차지한다. 맛도 맛이지만 이 식당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가 있다. 있는 그대로, 될 수 있으면 손을 덜 거친 수수한 음식을 낸다. 날 당근과 순무가 그대로 식탁에 오르고, 별거 아닌 것 같은 견과류 몇 쪽이 주요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몇 달 치 예약 리스트는 꽉 차 있고 전 세계 언론의 인터뷰가 밀려든다. 최근 식중독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그 명성은 여전하다. 남다른 노력으로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들의 철학은 좀 남다르다. 이른바 자연주의다. 덴마크는 사실 미식이라거나 ‘오트 퀴진’(고급스럽고 화려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추운 지역이고, 산물이 다양하지 않아 맛의 변별점이 복합적이지 않다... 더보기
식당의 감정노동자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사태로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다. 예상되는 일이겠지만, 사태는 해당 승객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요는 우리가 감정노동(자)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의 감정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그래도 되는 건지 돌아보게 된다. 러셀 혹실드 교수에 의해 개념이 정리되었다는 감정노동은 ‘감정도 상품’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먹고살자니 내 본래 감정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고 이미지화된 감정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접객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요리사라 친근하고 따스하게 보이도록 감정을 조절한다. 튀김 기름이 튀어 얼굴을 지지고 수챗구멍을 청소하다가도 주방 밖에서 손님을 보면.. 더보기
‘맛집’이란 미명의 사기 “이 근처에 어디 맛집 없나?” 이미 일상어가 되어버린 ‘맛집’이란 말이 나온 건 오래 되지 않았다. 최초의 미각 칼럼니스트를 자처했던 언론인 백파 홍성유도 그저 별미집이라고 불렀다. 맛집이란 표현이 제법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식상하고 말았다. 맛집은 그곳에 가든 가지 않든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버렸다. 지자체에서 나눠주는 홍보자료에도, 일상의 블로그에도, 여러 언론 매체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길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에도 맛집이 압정 찍듯이 콕콕 찍어서 나온다. 한때 뜻있는 프로듀서에 의해 심각한 폭로와 비판을 받아 잠깐 주춤했을 뿐, 텔레비전은 손쉽게 시청률을 확보하고 인기가 좋다고 하여 맛집을 다루는 방송을 적극적으로 띄운다. 소소한 아침저녁의 종합 프로그램에도 맛집 코너가 최고.. 더보기